‘버튼’ ARS vs 조사원 통화…‘방법’ 따라 답변 달라져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퇴 이후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와 한국갤럽이 상이한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리얼미터는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45%라고 밝힌 반면, 한국갤럽은 39%라고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적 진영 논리까지 거론되는 형국이다. 서로 다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게 된 배경을 추적해 보자.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법무부장관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법무부장관 [뉴시스]

-조국 사퇴 후 지지율 널뛰기 대체 무슨 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와 한국갤럽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사퇴한 이후인 10월 3주 차 국정 지지도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에 대해 서로 정반대의 조사 결과를 발표해 도마에 올랐다. 리얼미터는 전주 대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했다고 한 반면, 한국갤럽은 하락했다는 결과를 내놨다.

리얼미터는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전주 대비 3.6%p 오른 45.0%로, 부정 평가는 3.8%p 하락한 52.3%으로 나타났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이와 달리 한국갤럽은 지난 18일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전주 대비 4%p 감소한 39%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보수 성향 유선·진보 성향 무선 비율이 핵심…정치적 진영논리

세간에서는 서로 다른 조사 결과가 나온 배경으로 조사 방식과 답변 보기 개수(척도) 차이를 제시했다.

리얼미터는 자동응답 조사(ARS·90%)와 전화면접 조사(10%)를 혼용한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한다. 이와 달리 한국갤럽은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표본을 무작위 추출(집전화 RDD 15% 포함)해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시행됐다. 즉, 100% 전화 면접 조사로 치러진 것이다.

이에 관해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응답자들에게 ‘침묵의 나선 이론’이 작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침묵의 나선 이론이란 독일의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이 제시한 것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이 다수와 다를 경우 남에게 나쁜 평가를 받거나 고립되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엄 소장에 따르면 전화 면접 조사 방식의 경우 응답자가 직접 답변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변 분위기를 살필 수밖에 없지만 ARS 조사는 버튼을 누르면 돼 주변 분위기와 관계 없이 답변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또 전화 면접 조사의 경우 ARS 조사에 비해 높은 응답률을 보인다는 변별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두 조사 방식의 가장 큰 차이는 전화 응답자의 성향 차이”라면서 “전화면접 방식보다는 ARS 방식 응답자 가운데 정치에 관심이 많은 고관여층이 많다”고 말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ARS는 옳고 그름 또는 특정 정당 지지와 관련해 정확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고관심층이 응답하다 보니 ‘잘 모름’ 응답이 없는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 리얼미터 조사에서 모름/무응답은 전체의 2.7%로 집계됐다.

반면 전화 면접은 유보층이 응답자로 많이 선정돼 응답을 피하거나 말하지 않는 등 ‘잘 모름’의 응답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조사 결과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풀이다.

曺 자녀 ‘논문 제1저자 논란’…文 국정지지율 ‘직격타’

10월 3주차 여론조사 결과가 주목받는 것은, 각 여론조사기관이 서로 다른 결과를 내놨을 뿐만 아니라 조 전 장관 사퇴 이후 치러진 조사라는 데 있다. 조 전 장관의 사퇴가 문 대통령의 지지율에 변곡점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이은영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여론조사는 이슈나 사건에 대해 자신이 기본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가졌을 때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며 “조 전 장관 사건은 기본적으로 국민이 보기에 정확한 사실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전 소장은 “사건의 실제 내용이 무엇인지 수사기관 외에는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면서 “이 때문에 자신의 기본적인 정치 성향에 근거해 여론조사에 답변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 전 장관 사퇴가 문 대통령 지지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부분은 있다”며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보다는 조 전 장관이 후보 당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가진 문제 때문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 전 소장에 따르면 리얼미터와 한국갤럽 모두 8월 3주차부터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하락세를 띠는 양상을 보였다. 조 전 장관 자녀의 ‘논문 제1저자 논란’이 있을 당시였다. 이러한 논란이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에 영향을 끼친 측면이 있다.

이 전 소장은 “이번에 조 전 장관이 사퇴하면서 지지층에서는 (이 문제가) 정리됐으니 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여론이 만들어진 것 같다”며 “리얼미터 조사결과에는 이런 부분이 반영된 것 같다”고 관측했다.

일각에서는 두 기관의 상이한 결과를 두고 ‘여론조사기관이 정치 편향성을 띠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통상 리얼미터는 진보적인 성향을, 한국갤럽은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일제히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소장은 “조사 결과에서 응답자 편향은 나타날 수 있다”며 “조사기관이 편향성을 띠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회사의 이미지가 응답자 편향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갤럽의 경우 이전에 보수 색채를 띤 매체와 정기조사를 많이 진행해 왔다. 이에 보수 성향을 지닌 이들은 한국갤럽 여론조사 응답에 우호적이고,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응답을 기피하는 현상이 빚어진다는 해석이다. 이 전 소장에 따르면 이러한 응답자 편향 현상이 조사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세간에서 ‘도대체 어떤 결과가 맞는 것이냐’는 지적이 대두되면서 여론조사의 신빙성 문제도 불거졌다.

엄 소장은 “여론조사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수치로 계량화돼 나오니 마치 이것이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이는 데이터나 사실이 될 수 없다”며 “여론조사 결과를 읽을 때는 일종의 맥락이나 흐름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완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차원의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박 의원은 “선관위가 표본추출방식만이라도 기본 방향과 기준을 마련하고 꾸준하게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며 “표본추출을 포함한 조사방식을 여론조사기관의 자율적인 선택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선관위 차원에서 검토 및 심의 제도를 보다 꼼꼼하게 마련하거나 필요하다면 별도의 기구를 설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리얼미터는 YTN의 의뢰로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2505명을 대상으로 10월 3주 차 조사를 진행했다. 응답률은 5.6%,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이다.

한국갤럽의 10월 3주차 조사는 지난 15~17일 동안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치러졌다. 응답률은 15%,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