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도로에 경운기를 타고 등장한 시민들. [사진=독자 제공]
서울 이태원 도로에 경운기를 타고 등장한 시민들. [사진=독자 제공]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오는 31일 핼러윈(Halloween) 데이를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시민들은 괴기한 분장을 해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특수한 코스튬(costume)으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이태원 도로에서는 소품으로 경운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에 대한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다.

핼러윈 데이는 만성절(萬聖節) 바로 전날인 10월 31일로 고대 켈트인의 전통 축제 ‘삼하인(Samhain)’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켈트 족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음식을 마련하고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리는 등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며 악령을 쫓았다. 이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기괴한 모습으로 꾸며,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하는 풍습이 핼러윈 분장 문화의 원형이 됐다.

켈트 족의 풍습을 간직하고 있던 스코틀랜드‧아일랜드인들이 치르는 소규모 지역 축제는 이민자들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현재는 미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핼러윈 데이가 되면 각 가정에서는 호박을 파서 전등을 만들고, 검은 고양이나 거미 같이 핼러윈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장식물로 집을 꾸민다. 또 밤에는 도깨비‧마녀‧해적 등으로 분장을 한 어린이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으름장을 놓고 사탕을 얻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축제 문화가 국내에도 유입되면서 이색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기업들은 핼러윈 데이 맞이 마케팅을 구상하느라 분주하고, 시민들은 핼러윈 데이 축제용 코스튬과 특수 소품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 이상 서양만의 축제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어느 샌가부터 ‘핼러윈 데이’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악령 분장을 넘어, 지나치게 선정적인 복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이색 음주 파티로 전락해 축제에 의미를 두지 않는 시민들에게까지 불편을 끼친다는 것이다.

특히 직업군 희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는 영화 ‘조커’가 흥행하면서 조커 분장을 하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조커 분장을 하고 핼러윈 데이 축제를 즐기겠다는 게시물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핼러윈 데이 코스튬이 직업의 전문성을 무시하거나 특정 직업 근무자를 성적 대상화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간호사의 경우 매년 성적 대상화 리스트에 오르고 있다. 핼러윈 데이 기간 동안 간호사 복장에는 가터벨트, 꽉 끼는 의상, 망사스타킹까지 동원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직 간호사들은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간호사를 성적인 대상으로 코스프레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굳이 가슴 푹 파인 옷, 짧은 치마, 몸에 달라붙어 움직이기도 불편해 보이는 옷을 입고 코스프레를 하는 겁니까. 도대체 왜 그러는가”라며 “우리가 야동에서 환자에게 성적 행위를 하는 간호사, 원나잇을 즐기는 간호사, 이런 일부 시선을 무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라고 지적했다.

간호사 복장 외에도 여학생 교복을 변형한 코스튬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성년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이는 것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어린이집‧유치원에서는 부모들에게 아이의 핼러윈 데이 분장을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이때 부모들 사이의 팽팽한 ‘기싸움’이 펼쳐진다고 한다. 비교적 더 자극적인 분장을 하고 큰 비용을 들인 부모가 ‘우위’에 있다는 일종의 경쟁심리인 셈이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이러한 비공식(?) 경쟁에서 지게 되면 아이가 비웃음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외국 문화에만 눈길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는 등 국경일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는 현 시대에서 외국 문화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젊은 층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형국이다.

결국 건전한 축제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정확한 유래를 알고 문화를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핼러윈 데이는 ‘구색만 맞추면 무엇을 해도 용납되는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핼러윈 데이가 건전하고 성숙한 축제 문화로 자리잡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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