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이라크 이슬람 무장세력 통합 추구

미군에 쫓기다 자살폭발로 사망한 이슬람국가(IS) 수괴 알 바그다디의 생전 모습. 사진은 지난 4월 29일 IS 동영상에서 캡처. [뉴시스]
미군에 쫓기다 자살폭발로 사망한 이슬람국가(IS) 수괴 알 바그다디의 생전 모습. 사진은 지난 4월 29일 IS 동영상에서 캡처.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이슬람국가'(IS)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사망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사망이 발표된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이라크 내 평범한 무장조직을 전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로 발돋움시켰다. 그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무장세력을 통합, 알카에다마저 위협하며 이슬람 단일국가 창설을 꾀했다.

알자지라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지난 1971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북쪽 사마라 인근의 가난한 마을 토비치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본명은 이브라힘 아와드 알사마라이. 그의 가정은 수니파 이슬람교 극단적 보수주의 운동인 살라피파 전도사 집안이었다.

1997년 바그다드대를 졸업하고 2년 뒤인 1999년 사담 후세인의 이름을 딴 사담대에서 이슬람학으로 코란 암송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결혼식장에서 남녀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보고 화를 낼 정도의 보수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지난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 그는 32세의 나이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었지만, 종교적인 의무를 명분으로 무장세력 운동에 가담했다. 그는 이듬해인 2004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체포돼 미군이 관리하던 부카 수용소에 수감됐다.

그는 당시 극단주의자들과 온건파가 섞여 있던 수용소에서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이끌던 자마트 알타우히드 왈지하드 구성원들과 친분을 쌓았으며, 석방된 이후 자르카위의 제자가 됐다.

2006년 자르카위가 미군 공습으로 사망하고 이후 그 후계자인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도 사망하면서 알바그다디는 2010년 IS 전신 '이라크이슬람국가'의 1인자가 됐다. 당시만 해도 이라크이슬람국가는 쇠퇴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조직의 재건을 위해 붕괴한 사담 후세인 정권 출신 바트당 군사·정보장교들을 대거 영입하고 이라크 수니파 중심으로 조직을 정비했다. 이는 2011년 이라크 미군 철수 이후 촉발된 시아파-수니파 종파 갈등 및 시리아 내전 국면에서 이라크이슬람국가에 무장세력을 집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힘을 얻어가기 시작한 그는 2013년엔 시리아 내 알카에다 조직이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저항하던 누스라전선을 통합,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라는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알카에다 수장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통합을 부정하면서 알카에다와 결별하는 계기가 된다.

알카에다는 이듬해인 2014년 ISIL을 파문시켰지만, 알바그다디는 같은 해 6월 마침내 국경을 초월한 칼리프(신의 대리인) 국가 IS 수립을 선포하고 스스로를 '칼리프 이브라힘'으로 칭했다. 소멸해가던 무장조직이 이라크 영토 3분의 1을 장악하고 부동산, 유전, 군기지 등을 보유한 거대 조직 IS로 세상에 공표된 순간이다.

알바그다디의 IS는 이후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 동시다발 테러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으며,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와 영국 맨체스터 등에서도 IS 추종자들의 테러가 꾸준히 발생했다.

최대 전성기였던 2015년 기준 IS는 영국 크기만한 시리아와 이라크 전역에서 4만명의 외국인 전사들을 거느리며 위세를 떨쳤다. 알바그다디의 목에는 2500만달러(약 292억원)의 현상금이 걸렸다. 오사마 빈 라덴, 자와히리와 같은 액수다.

그러나 지난 2015년 이라크 서부에서 미군 주도 연합군에 의해 패배한 이래 2017~2018년 시리아 락까와 이라크 모술에서 연이어 패배하며 알바그다디의 세력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지난 3월에는 미군 전투기와 쿠르드족 지상군이 IS 최후 거점으로 여겨지던 시리아 동부 바구즈를 탈환하고, 쿠르드민병대 인민수비대(YPG)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이 'IS 소멸'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알바그다디는 SDF의 'IS 소멸' 선언 이후 신분을 숨기고 일반 차량을 타고 다니거나 농장 소형트럭을 타고 소규모 경호원들만 대동한 채 은신 생활을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26일 미국의 급습 작전으로 군견에게 쫓기며 자녀들로 추정되는 어린이들을 방패 삼아 도망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알바그다디는 결국 48세의 나이에 자살폭발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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