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법정 선 이재용…판사 훈계 배경에도 관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이 지난 25일부터 시작됐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유죄는 인정하되 집행유예로 실형만은 피하자는 취지의 전략을 짤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70억 원의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 유예 4년을 확정받은 것에 비춰 판결 형평성을 주장할 것을 보인다.

이런 가운데 심리를 맡은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에게 `신경영 선언`을 당부하면서 그 의미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원 차원의 `삼성 봐주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가 하면 이 부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궁금해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재판장의 이례적 훈수에 갑론을박…삼성 이재용 봐주기 판 짜는 건가 반응도
경제개혁연대 "훈계를 넘어 양형 가이드라인 제시한 것…오해 살 언행 자제"


지난달 25일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8년 2월 5일 항소심 선고 이후 627일 만에 법원 출석이다.

이날 이 부회장은 재판에 앞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죄송하다"고만 말했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유무죄 판단을 달리 다투지 않겠다"며 "양형에 대해 변명할 생각이고 사안 전체와 양형에 관련된 인물 3명 정도의 증인을 신청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판사 "총수 역할 성실히" 이례적 당부

이런 가운데 재판 말미 심리를 맡은 정준영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에게 한 당부 메시지가 강한 울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 부장판사는 1993년 이건희 전 회장이 발표한 프랑크푸르트선언, 즉 신경영 선언을 언급했다. 그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삼성 신경영 선언`을 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느냐"고 주문했다.

이어 정 부장판사는 삼성 내부의 준법 감시 제도나 미국 대기업의 실효적 감시제도, 이스라엘 기업의 혁신 경험 등까지 언급하며 삼성이 혁신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재판에서까지 이런 문제가 제기되자 재계의 관심은 삼성전자가 내놓은 새로운 전략과 비전에 쏠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비전 2020의 마감 일자가 다가오는 만큼 이 부회장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비전 2020을 통해 2020년까지 ▲매출액 4000억 달러(약 468조 원) 달성 ▲글로벌 10대 기업 도약 ▲브랜드가치 세계 5위 ▲존경받는 기업 순위 10위 등의 핵심 과제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하지만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 내년까지의 목표 성취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발표된 결과와 예상치를 종합하면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약 2100억 달러, 글로벌 15위 정도다. 브랜드가치는 세계 6위로 목표에 근접했지만 존경받는 기업 순위는 50위로 2009년보다 오히려 하락했다.

업계는 이 부회장이 재판으로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새로운 경제 방향을 제시하기는 역부족일 것이란 전망을 하기도 한다.

재판장의 충고 두고 해석 분분

재계 일각에선 재판부의 강도 높은 꾸짖음에도 `기업 총수로서 할 일을 해달라`는 당부는 `집행유예` 판결의 무게를 싣는 분위기로 해석된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반면 정 부장판사의 훈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밝히는 곳들도 많다.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는 “재판의 공정성 시비로 이어질 수 있는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본격적 심리에 앞서 재판장이 기업인 출신 피고인에게 경제·경영에 대한 구체적 조언과 당부를 한 것은 향후 재판의 공정성 시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단순 훈계를 넘어 사실상 ‘양형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재판장의 발언은) 사건의 본질은 준법감시 제도의 부재에 따른 것이며 향후 삼성의 내부 통제 장치가 강화된다면 양형에서 고려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벌 봐주기’ 판결 전례가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공정성에 불필요한 오해를 살 만한 언행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성명을 통해 “재판장의 발언은 재벌총수 봐주기를 위한 포석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면서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입각한 사법정의와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공정한 재판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은 이날 1심 공판을 시작으로 다음 달 2차 공판, 12월 5일 선고 공판이 이뤄지게 되며 최종 판결은 1월초로 예상된다.

[박스] 이재용 훈계…정준영 부장판사는 누구

정준영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20기)는 서울 청량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4년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사법정책실 정책 3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대표적 엘리트 판사로 꼽힌다.

1997년 서울중앙지법 민사부 수석부장판사 배석 시절 한보그룹과 웅진홀딩스 등 파산 사건의 주심을 맡아 처리했고, 초대 서울 회생 법원 수석부장판사를 지냈을 만큼 법원 내 회생·파산전문가로 통한다.

정 부장판사는 아울러 법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법원 내 `아이디어 뱅크`로 유명하다. 최근 형벌보다는 재발방지나 치료를 중심에 둔 `사법치료` 재판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정 부장판사는 또 선고기일 날 피고인에게 조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8월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중 자녀와 동반자살을 시도해 재판에 넘겨진 부부의 선고기일에서는 "출소 후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다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아달라. 급하게 모든 것을 이루려 하지 말고,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모범적인 가족이 되길 바란다"며 조언을 하기도 했다.

현재 정 부장판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항소심과 `PC방 살인사건` 김성수씨 항소심 재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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