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僧家)에서 유래된 말씀 중에 비승비속(非僧非俗)이라는 표현이 있다. 똑 부러지게 살아가질 못하고 승려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어중간한 삶을 사는 얼치기 출가승을 빗대어 비하하는 말이다.

어디 승가에서만 그렇겠는가,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도도 아니고 개도 아닌 삶’과 동의어라 할 수 있다. ‘비승비속’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대개 ‘결정 장애’를 겪는 등 처신을 똑바로 하지 못해 양쪽 모두로부터 배척당하기 십상이다.

특히 정치판에 이런 경향이 짙다. 과거정치나 현실정치나 시대적 어젠다(agenda)만 다를 뿐 정치판에 어중간한 입장이나 논리는 대중에 먹혀들지 않았다. 박정희 시대 독재적 유신통치에 맞선 당시 제1야당 신민당의 대응논리가 강경 노선과 유화노선으로 나뉜 결과는 두고두고 교훈적이다.

당시 40대기수론으로 일약 야권지도자 반열에 오른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세 사람 가운데 사실상 ‘스펙’이 가장 강해 보인 쪽은 이철승계였다. 비록 대권후보 지명에 실패했지만, 이후 당권경쟁에서 그 세를 과시해 당대표를 역임하면서 야당사에 김영삼계와 필생의 숙적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그러나 그 짱짱했던 이철승 이름 석 자는 양김(김영삼, 김대중)과 너무 동떨어지게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 버렸다. 이럴 때 ‘사필귀정’이란 말이 좀 과할지 모르나 만약 그가 유신체제에 대한 참여 속 개혁론이란 어정쩡한 ‘스탠스(stance)’를 취하지 않고 두 김 씨와 같이 선명야당의 기치를 함께 들었다면 우리 헌정사는 엄청나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야당의 소임은 언제나 민심을 똑바로 알아 그 민심이 원하는 바를 위해 여권과의 협상과 투쟁을 망설임 없이 해나가는 것이다. 그 역할이 정곡에서 벗어나면 민심의 호응이 멀어지고 리더십 부재 현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어느 때나 정권의 실정이 높아지면 야당의 존재감이 더욱 강화되고 민심의 기대가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같은 이반된 민심이 제1야당 자유한국당 지지를 안 하거나 망설이는 이유가 뭘까? 그동안 자유한국당이 보여준 대여투쟁 방식은 ‘선명’ 그 이상이었다. 단식, 삭발, 광장의 군중몰이, 물리적 국회투쟁 등 과거 군사독재 시절을 연상케 하는 강경 투쟁의 방식이 총동원됐다. 모처럼 국민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이처럼 국민호응을 받았으면 당연하게 여권 지지율이 폭락하고 자유한국당이 지지율 대폭상승의 반사이익을 취해야 했는데, 그런 반사적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죽을힘으로 9부 능선을 넘고도 전리품을 얻지 못하면 전선을 지휘한 장수의 문제가 크다. 자유한국당의 대국민 호소에 귀 기울인 국민들은 분명히 현 시국을 개탄하는 보수 쪽이었다. 보수가 2년 반 만에 한목소리를 냈다는 의미다.

아주 오랜만에 한목소리를 내고도 자유한국당을 지지할 수 없는 이유는 따질 것 없이 보수분열의 시작점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문제에 기인한다. 탄핵이 불가피했다는 쪽과 탄핵을 배신으로 보는 쪽의 갈등은 이 정권의 실정이 두드러질수록 결이 다르게 굳어지는 양상이다. 화두는 반박근혜계가 탄핵에 앞장서서 나선 결과가 오늘 나라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자유한국당이 이걸 무시한 채  ‘3선 이상 물갈이론’을 띄우고 인재영입에 나서는 모습 보여도 분란만 더 키울 수 있다. 썩은 부위를 바로 짚어 다스리지 못하면 생살을 째는 돌팔이 짓을 거듭해야 하는 게다. 최소한 탄핵의 중심에 섰던 세상이 다 아는 얼굴들, 또 박근혜 오른팔 왼팔을 자처하며 호가호위했던 세상이 지목한 얼굴들, 이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죽도 밥도 아닌 자유한국당 발 보수통합론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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