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한때 수도권·중도·개혁을 대표했다. 관심을 받았던 많은 정치인들이 탈당, 낙선으로 이탈했다. 탄핵 이후 보수는 초토화됐다. 나 원내대표는 살아남았다. 게다가 풍부한 경험과 외모까지 갖췄다. 포스트 보수의 기대주로 손색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 원내대표가 차기 정치인으로 성장하길 기대했다.

나 원내대표는 변했다. 수도권·중도·개혁 이미지는 사라지고 강경·막말·억지가 남았다. 나 원내대표의 말은 지난해 말 원내대표 선거 출마를 즈음부터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념좌표도 자꾸 오른쪽으로 옮아갔다. 나 원내대표의 보수화는 황교안 당 대표 당선 이후 더 빨라졌다. 보수화를 놓고 마치 황 대표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낙마 기념 표창장 논란이 정점이다. 조 전 장관 사퇴로 ‘조국 정국’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조 장관의 부인과 동생은 모두 구속됐다. 조 전 장관도 검찰의 칼날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가정은 풍비박산이고 문 대통령도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조 전 장관을 지지했든, 그렇지 않든 안타까운 심정이다. 나 원내대표의 표창장은 많은 국민들을 조롱한 꼴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약자에 공감하고 동정한다(언더독, Underdog). 정치와 선거에서도 언더독은 종종 작동한다. 조 전 장관 사퇴와 모친 별세 후 문 대통령 긍정평가는 40% 중후반을 회복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공감하고 동정한 것이 반영됐다. 민주당도 덩달아 지지도가 올랐다. 반면 한국당은 조 전 장관 취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여론조사 관련 구체적인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여론조사 세부지표는 한국당에 매우 좋지 않다. 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2040의 한국당 지지율은 여전히 10% 전후에 머물고 있다. 괴멸됐던 작년 지방선거와 비교해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50대에서도 민주당에 큰 격차로 뒤지고 있다. 중도에서도 민주당 적수가 되지 못한다. 영남에서만 조금 앞서고 있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은 보나마나다. 민주당 완승이다. 영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선 당선자를 내기 어렵다. 현행 선거제도에서 영남은 65석이다. 여기서 50석 남짓 확보하고 비례대표에서 선전한다고 해도 100석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당은 ‘조국 함정’에 빠졌다. 조국 사퇴 이후 ‘나경원 함정’에 빠진 모습이다. 국민 다수는 조 전 장관에 동의하지 못했다. 여론은 악화했고 한국당은 신나게 때렸다. 표창장은 ‘죽은 놈을 한 번 더 때린 꼴’이 됐다. 국민들은 한국당을 탄핵 전의 새누리당과 구별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메신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아무리 못해도 한국당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없다. 

한국당이 조국과 나경원 함정에 빠져 있는 사이 총선은 코앞에 다가왔다. 일시 올랐던 지지율은 다시 내려갔다. 옳은 말이라도 한국당이 하면 싫다는 게 국민정서다. 이렇게 어려운 지경까지 온 데에는 나 원내대표의 책임이 작지 않다. 황 대표는 이제 막 정치에 입문했다. 아무래도 서툴 수밖에 없다. 나 원내대표의 리더십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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