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소정당 “국회의원 수 10% 늘리자” vs 거대정당 “현행 300명 유지”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여의도에 또다시 패스트트랙(안건신속처리 제도) 여파가 몰려온다. 선거법 개정안은 이달 27일 본회의에 부의될 방침이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선거법 개정안은 ‘지역구 225-비례대표 75’ 형태다. 현행 선거법과 비교했을 때 의원정수 300명은 유지되나 지역구 의원이 감소한 대신 비례대표 의원이 늘어났다. 정의당을 비롯한 평화당, 대안신당 등 군소정당은 ‘의원정수 10% 확대’를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과 한국당 거대 양당은 의원정수 확대는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과연 선거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어 내년 4월 총선의 최대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심상정 정의당 대표 [뉴시스]
심상정 정의당 대표 [뉴시스]

-野, “선거법 막으면 汎與 분열…공수처까지 저지 가능” 
-민주-정의 ‘검찰개혁’ 한목소리였는데…선거법 ‘엇박자’

“패스트트랙을 완수하는 남은 시간은 정의당의 시간이 될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의당은 이번 정기국회 안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검찰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완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심 대표는 이날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 ‘국회의원 정수 10% 확대’를 띄우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지난해 12월 자유한국당까지 여야 5당이 합의한, 현행 300석에서 10% 범위 내에서 확대하는 합의가 이뤄진다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수를 뒀다.

深, ‘의원정수 10%↑’…군소정당 결집 포석

현재 패스트트랙에는 심 대표가 지난 4월24일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선거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당시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의 합의를 거쳐 어렵사리 패스트트랙 열차에 탈 수 있었다.

개정안은 지역구 국회의원 의석을 현행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현행 47석에서 75석으로 확대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역시 지역구 의원 의석에서 감소한 28석이 비례대표 의석에 보태진 것에 그쳐 현재 국회의원 정수인 ‘300명’은 유지된다.

만일 이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현재 지역구를 보유한 의원들은 내년 4월 총선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지역구가 사라지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대 국회에서 각 정당의 의원 의석수 현황을 살펴보면 ▲민주 지역구115-비례대표13(총 128) ▲한국 지역구92-비례대표17(총 109) ▲바른미래당 지역구15-비례대표13(총 28) ▲정의 지역2-비례대표4(총 6) ▲민주평화 지역구4 ▲우리공화 지역구2 ▲민중 지역구1 ▲무소속 지역구9 ▲대안신당 지역구9 등이다. 다만 박선숙 의원과 장정숙 의원은 바른미래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이나 각각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심 대표가 ‘의원정수 10% 확대론’을 다시 꺼내든 것 역시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의원 정수를 30명가량 증가시켜 330석이 되면, 지역구 의석수를 보전하는 동시에 비례대표 의석도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구 의원들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어 통과가 원만히 이뤄질 공산이 크다.

평화당이나 대안신당의 경우 지역구 의원만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역 가운데서도 호남에서 강세를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호남 지역 의석수가 감소될 것을 우려해 의원정수 확대 요구에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당은 심 대표의 제안에 거세게 반발하며 ‘의원정수 확대 절대 불가’로 맞서고 있다. 나아가 의원정수 확대와 관련해 합의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및 지도부가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회의실에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및 지도부가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회의실에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당, ‘결사 반대’…“합의 아닌 ‘검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여야 5당이 합의했다’는 심 대표의 주장에 대해 전면 부인하며 “오늘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강경히 맞섰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대변인을 통해 전날(지난달 29일)까지 사과하라고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없는 합의를 운운하는 게 벌써 두 번째”라면서 “(심 대표의 주장은) 정치인으로서 도를 넘는 발언”이라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민주당, 한국당, 바른미래당, 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15일 ‘선거제도 개편 관련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석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해서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합의에 따른다 ▲석패율제 등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도입을 적극 검토한다 등 6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당과 정의당 간 이견은 두 번째 항목의 “의석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부분에서 빚어졌다. 이를 두고 한국당은 ‘검토’이지 ‘합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반면, 정의당은 ‘합의문서에 서명한 것이니 합의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브리핑을 통해 “2018년 12월15일 나 원내대표는 친히 자필사인을 하며 선거제 개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한국당, 바른미래당, 평화당, 정의당 원내대표가 6개 조항에 합의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은 국회의원 의석수 확대가 국민 눈높이에 어긋난다며 당 차원에서 제동 작업을 펼치고 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당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지금 의석수가 모자라 국회가 안 돌아가나”라며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이 정치개혁과 무슨 상관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오히려 의석수를 줄이자는 국민 목소리가 안 들리나”라고 질타했다.

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하 여연)은 황 대표의 지시로 실시한 국회의원 정수 등 선거제도 개편 관련 자체조사 결과를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여연에 따르면 현재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 조정에 대해 ‘정수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과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는 ‘정수 축소’ 응답의 비율이 57.7%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현행 유지(22.2%)’, ‘정수 확대(13.2%)’ 의견이 잇따랐다.

이와 관련해 여연은 연령별로는 30대와 50대, 권역별로는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직업별로는 사무·관리·전문직에서 국회의원 정수 축소 여론이 높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심 대표의 ‘국회의원 정수 10% 확대론’ 제안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73.2%로 집계돼 부정적 여론이 매우 높았다고 덧붙였다.

여연의 자체여론조사는 지난달 28일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 남녀 1503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RDD(유선 20%, 무선 80%)를 사용한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치러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3p이다.

한국당은 의원정수 확대를 막고자 또다시 ‘국회 밖’으로 향한다. 이들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법과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막기 위해 권역별 순회 투쟁에 돌입한다.

한국당은 지난 1일 기존 광화문 장외집회 대신 ‘친문독재 공수처법 저지 및 국회의원 정수 축소 촉구 결의대회’를 매주 토요일 수도권을 제외한 10개 지역에서 열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강 건너 불구경’…정의-민주 ‘공조’ 적신호

일각에서는 한국당의 강경 대응 배경에 대해 이들을 제외한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를 막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바라봤다. 

현재 민주당은 패스트트랙에 묶인 검찰개혁의 의결을 위해선 정의당의 지원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다. 이에 정의당이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막아 민주당이 총력을 기울이는 공수처법까지 잡겠다는 속내다.

실제 황 대표는 지난달 30일 “심 대표가 ‘330석 증원론’을 꺼내자마자 군소 여권 정당들이 일제히 찬성하고 나섰다”면서 “민주당 의원들이 나서서 애드벌룬을 띄운다”고 범여권 전체를 겨냥했다.

그는 이튿날인 31일에도 “지금 범여권은 준(準)연동형 비례제와 의석수 늘리기가 정치개혁이라 강변하지만 국민들은 이것이 정치개혁과 전혀 무관한 ‘밥그릇 챙기기’란 점을 명확히 안다”면서 “이런 선거법을 좌파 독재 연장용 공수처법과 묶어서 법안을 뒷거래하는게 참으로 파렴치한 정치 야합”이라고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유승민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이하 변혁) 대표 역시 “변혁은 의원정수 확대에 분명히 반대한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법을 통과시키고 또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민주당과 정의당, 평화당, 심지어 바른미래당의 일부까지 (의원)정수를 300명에서 330명으로 확대하는 야합을 시도하는 정황이 여러 군데서 포착됐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야권이 ‘의원 정수 확대 불가’라는 기치 아래 결집하는 모양새를 띠는 반면, 민주당 역시 ‘의원정수 330명은 어렵다’며 정의당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당론으로 이미 300석 고정을 확정했다”며 “국민들은 일종의 특권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반대한다”고 ‘의원정수 확대론’에 거리를 뒀다.

민주당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의당과 연대해 검찰개혁 법안 처리의 추진동력을 얻음과 동시에 범여권 등과 소연정을 통해 여소야대 정국이 가능하고, 반대로 통과되지 않아 현행 선거구제로 총선을 치른다 해도 ‘一與多野’ 구도이니 당 입장에서는 나쁠 것 없지 않느냐는 풀이를 내놨다.

이에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작년 12월, 5당 대표 합의에서 의원정수 논의를 명시한 것은 지역구 의석 축소에 대한 현역 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해찬 대표가 이를 모를 리 없다”며 “의원정수 확대에 반대할 수는 있다. 그런데 동시에 국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되돌아볼 것을 주문하고 싶다”고 여당을 압박했다.

선거법 개정안 의결 여부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최대 변수’로 작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여의도의 시계는 내년 4월 총선에 맞춰져 있다. 이에 각 정당은 저마다 이해관계에 따른 다양한 셈법을 내놓을 수밖에 없어 향후 선거법 개정안 통과에 따른 총선 흐름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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