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딸의 친구가 목동으로 이사를 갔다. 지난해인 5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애가 공부도 잘하고 집도 잘사는 편이라 목동 학군에 편입되는 과감한 결정이 가능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딸 친구 애는 주말에도 학원 다니느라 바쁜 틈을 내서 옛 친구들 찾아와 시간을 보내고 가고, 애 엄마도 자주 놀러와 수다를 떨며 쉬고 간다고 한다. 

그 집 식구들이 다녀가면 동네에는 ‘목동 학부모 모임은 출석률이 99%’이고 ‘엄마들이 서로 밥값, 찻값을 내려 한다’거나, ‘목동에 있는 학원은 목동 아닌 곳의 이름 없는 학교 다니는 애는 수강을 거절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얘기들을 듣게 된다. 서민 동네에서 살다 건너간 목동이 이럴진대 기웃거릴 엄두도 안 나는 강남이 어떨지는 상상도 가지 않는 게 강남 밖 사람들, 목동 밖 사람들 심정일 것이다.

요즘은 강남, 목동에 거주하지 않아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시를 염두에 두고 공부를 시킨다. 서민 동네에서도 초등학교 성적은 입시에 직접 반영이 되지는 않지만 중학교 진학 전에 수학과 영어를 잡아놔야 좋은 대학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서민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학부모들도 곧잘 목동 학원가에서 열리는 입시설명회에 원정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밤늦게까지 동네 호프집에서 신세 한탄이 끊이지 않는 술자리가 이어진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아들과 딸을 대학에 보낸 방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유별난 일은 아니다. 잘살든 못살든 부모라면 누구라도 자식 좋은 대학 보낼 수 있다면 그 정도 유난은 떨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다. 우리 사회가 입시에 목을 매는 이유는 단순하다. 없는 사람은 고단한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누리는 풍족함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욕망이 우리나라만 유별난 것도 아니다. 인도에서는 학부모들이 시험을 보는 자식들에게 커닝페이퍼를 전달하려고 건물 외벽을 기어오르고, 시험 부정을 막아보겠다고 벌거벗겨 시험을 보게 하는 일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인도의 사회 시스템이 우리보다 공정하지 못해서 일어난 극단적인 사례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낙마 과정에서 목격한 우리의 입시제도도 그리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껴 화가 났던 것이다.

과열된 입시경쟁은 이웃나라 중국도 우리나라 못지않다. 중국은 매년 6월이면 이틀간 대학 입시 시험을 치른다. 이때가 되면 시험장 밖에서 지쳐서 쓰러지거나 과로와 심리적 충격으로 졸도하는 수험생들을 구급차가 실어 나르는 풍경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시험이 방해가 될까 봐 공안의 순찰차가 자동차 경적이나 소음 유발행위를 단속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능 일이면 온 사회가 숨죽이며 중국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입시에 목매는 것은 국회의원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국회의원들도 부모라 자식이라면 애지중지하고 잘되기 바라고 좋은 대학 가기를 원한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국회의원들이 조국 전 장관보다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야 뒤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자녀 입시 문제에 대해 전수조사를 한다고 했을 때, 일부 젊은 의원들 말고는 입을 다문 데는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대통령이 정시를 확대한다고 했을 때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 때 이라크 파병과 같은 지지층 이반을 겪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있었다. 일부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방향으로 흐를 것 같지는 않다. 

현재의 교육 제도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크고, 사회 양극화와 같은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입시 방법을 바꾼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는 것을 다들 안다. 사회가 공정하지 않은데 입시가 공정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화난 국민을 달래기에는 정시 확대로 부족하긴 해도 일단 그 길밖에는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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