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 명 참석’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 축제 현장

시먼딩 무지개 거리 [사진=황기현 기자]
시먼딩 무지개 거리 [사진=독자 이승민씨 제공]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동성애(同姓愛)나 동성결혼은 한국 사회에서 언제나 뜨거운 논쟁을 불러오는 주제다. 물론 최근에는 개인 간의 사랑을 국가가 강제할 수 없고, 동성애는 찬성과 반대의 문제 자체가 아니라는 인식이 많이 확산됐다. 그러나 결혼의 경우에는 여전히 논란이 된다. 대한민국은 연인이 결혼을 하게 되면 국가에 이를 신고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법적 부부’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동성 간 혼인신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많은 동성 커플들은 이러한 법 제도와 국민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0년 시작돼 매년 열리고 있는 서울퀴어문화축제도 이 같은 활동 중 하나다. 하지만 축제가 20회째를 맞았음에도 우리 국민들의 인식은 완전히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이처럼 동성애가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대만은 ‘동성결혼’을 법으로 인정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지난 달, 이곳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이 모이는 ‘퀴어축제’가 열렸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대만은 동성결혼 합법화된 나라
‘불편하다’는 시선보다는 ‘축제’ 자체 즐기는 사람이 많아

기자는 지난 달 25일 퇴근 후 비행기를 타고 대만 타이베이(台北)로 향했다. 개인적인 여행이 목적이었지만, 마침 주말 타이베이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호기심도 생겼던 차였다. 퀴어 퍼레이드는 토요일이었던 지난 26일 시작됐다. 한국의 시청 격인 타이베이 스정푸(市政府) 광장에서 출발한 참가자들은 ‘타이베이의 강남’ 중샤오푸싱(忠孝復興)역부터 중샤오둔화(忠孝敦化站)역을 가로지르는 중샤오둥루(忠孝東路), 런아이루(仁愛路)를 거쳐 타이베이 총통부 앞 카이다거란(凱達格蘭) 대로까지 약 6km 거리를 행진했다.
행사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퍼레이드에 참가한 인원은 약 20만 명에 달했다. 국경과 인종도 없었다. 참가자는 대만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서양인들은 물론 베트남과 한국 참가자도 있었다. 행사에서 만난 한국인 참가자 A씨는 “퀴어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여행 겸 왔다”며 “우리나라는 아직도 (퀴어 축제를)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많은데, 여기는 편하게 즐기는 분위기라 좋은 것 같다”고 전했다. 대만 참가자 쉔차이후이(沈採慧·30·여)씨는 “(대만이)동성 결혼이 합법화 된 나라라고 해도 여전히 (안 좋은) 시선이 존재한다”면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 우리를 바라봐주길 원해 이 자리에 왔다”고 설명했다. 미국 참가자 앤디 윌슨(Andy Wilson·33·남)씨는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다”라면서도 “(동성애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축제일 뿐이다. (참가자들과) 함께 놀러 왔다”고 했다. 참가자들의 말처럼 이날 퀴어 퍼레이드 현장은 갈등과 논란이 아닌 축제 그 자체로서 많은 이들에게 다가왔다.
대만 언론 연합보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이날 퍼레이드의 도착지인 카이다거란 대로에서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며 “국제 동성 결혼이 허용될 때까지 비바람에도 꿋꿋이 함께 나아가자”고 외친 것으로 전해졌다. 행사를 주최한 정즈웨이(鄭智偉) 대표는 “이번 퍼레이드의 주제는 ‘성 소수자는 좋은 이웃’이었다”며 “다원화와 민주, 존중 그리고 상호융합이라는 대만 가치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같은 날 타이베이 시정부 앞에서 대만 동성 가정 권익촉진회 주최로 열린 ‘제1회 무지개 어린이 미니 퍼레이드’에서도 동성혼인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공동입양과 국제 동성결혼문제는 아직 미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퀴어 축제란…‘스톤월 항쟁’ 기념

퀴어 축제는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을 기념하기 위해 전 세계 대도시에서 매년 개최된다. 스톤월 항쟁은 지난 1969년 6월 28일, 경찰이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술집 스톤월 인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현장을 급습한 경찰에 맞서 동성애자 집단이 항쟁을 일으켜 며칠 간 지속됐다. 당시 미국 법은 동성애자를 처벌할 수 있게 돼 있었는데 스톤월 항쟁의 당사자들은 체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성적 성향을 표출하는 등 저항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미국 전역에 동성애자 인권 조직이 설립됐고, 1970년 6월 28일 ‘게이 퍼레이드’라는 이름의 행진이 시카고와 로스엔젤레스, 뉴욕에서 열리며 현재 퀴어 퍼레이드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시발점인 셈이다.
특히 2019년은 스톤월 항쟁이 50주년을 맞는 해다. 이를 기념해 뉴욕에서는 무려 500만 명의 관중이 퍼레이드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지난 7월 독일에서도 100만 명이 퍼레이드에 참가하며 항쟁 50주년을 기념했다.

시먼딩(西門丁) 거리에는 ‘무지개’ 장식

이처럼 동성애자들이 점차 자신을 드러내며 세계 각국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추세다. 유럽에서는 20여 년 전인 2000년 네덜란드가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이후 벨기에와 캐나다,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이 잇따라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며 2019년 현재 동성 결혼이 가능한 나라는 28개국이다. 눈에 띄는 점은 28개 나라 중 아시아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한 나라는 대만뿐이라는 점이다. 태국이 지난 2013년 동성 간의 ‘시민 동반자 관계’를 맺는 것을 인정했지만 결혼은 불가능하다. 반면 대만은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집권 후 동성 결혼 합법화 법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리고 결국 지난 5월 동성혼인특별법안이 입법원(대한민국의 국회)에서 가결되고 차이 총통이 법안에 공식 서명하며 동성 결혼이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차이 총통은 이번 축제 사진을 자신의 SNS에 게재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명동과 같은 타이베이 시먼딩 거리는 무지개 색으로 장식됐다. 이 거리에서는 동성애자뿐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사진 촬영을 하며 순식간에 ‘포토 스팟’으로 떠올랐다. 이처럼 열린 정부와 국민의 생각은 대만의 퀴어 퍼레이드에 20만 명의 참가자를 동원했고, 나아가 관광객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편견 대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선물했다.
대만은 이번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한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이 대만에서 쓰고 가는 외화를 고스란히 얻게 됐다. 또 다음 번 축제 기간에도 전 세계 동성애자들은 대만을 찾을 것이다. 혐오로 점철된 퀴어 퍼레이드가 아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낸 대만이 얻을 것이 많다는 점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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