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회항해도 보상 못 받는 항공 규정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뉴시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2019년 대한민국에서 항공기는 더 이상 낯선 교통수단이 아니다. 지난해와 올해를 기준으로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내국인 관광객은 연간 3000만 명에 달한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매년 해외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물론 해외여행객이 100%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크루즈 선박을 이용하는 여행객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동 시간이 짧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항공기를 이용한다. 이 같은 사실은 연휴 기간 붐비는 공항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증가하는 해외여행객들이 ‘지연 운항’ 등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항공기가 티켓에 명시된 시간에 정확히 이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많게는 몇 시간까지 지연되기도 하는데, 이 때도 항공사는 대체로 ‘보상’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

항공 규정에 적시된 ‘면책사유’가 문제
보상 받으려면 ‘소송’ 불사해야…쉽지 않아

지난달 대만 타이베이 여행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직장인 A씨는 황당한 상황을 겪었다. 예약한 아시아나 항공기가 지연에 지연을 거듭한 것이다. 결국 A씨는 5시간의 지연 끝에 새벽 1시 10분이 돼서야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행 일정에 큰 차질이 빚어졌음에도 항공사 측에서 제공한 보상은 250대만달러(약 9500원) 어치의 리프레시먼트 쿠폰 2장 뿐 이었다.
또 다른 여행객 B씨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지난 2017년 타이베이로 향하는 중화항공 여객기를 예약했던 그는 출발 예정 시각인 오후 8시 35분에서 3시간가량 지연된 11시 20분에야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타이베이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였다. 2박 3일의 짧은 휴가였던 탓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항공사 측은 빵과 음료수 외에 별다른 보상을 지급하지 않았다.
국내선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5일 김해공항을 출발한 제주항공 항공기가 이륙 후 기체 오류로 긴급 회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승객들은 40여 분간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고, “기도하라”는 안내 방송까지 이어지며 불안감이 더욱 가중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럼에도 제주항공은 문제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에게 보상금으로 ‘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지연·결항·회항 잇따라도…‘예외사항’ 인정

위와 같은 사례는 물론 최근 벌어진 제주항공 회항 사태까지 항공기들의 지연·결항·회항 문제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물론 항공기의 경우 한 번의 사고가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안전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을 때는 이륙하지 않는 게 맞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시간을 빼앗긴 승객들에게 제공되는 보상이 너무 적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이는 항공사들에게 적용되는 ‘면책사유’ 때문이다. 항공운수업 관련 규정 중 국제여객편에는 사업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운송지연은 보상받을 수 있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규정에 따르면 지연 또는 결항으로 발생하는 숙식비 등은 전부 항공사가 부담하게 돼 있다. 또 1시간에서 2시간 이내 지연된 경우에는 승객에게 운임의 10%를 돌려줘야 한다. 3시간 이내 운송이 지연되는 운임의 20%를, 3시간 이상 지연된 경우에는 30%를 돌려주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에는 ‘예외사항’이 존재한다. 기상상태나 공항사정, 항공기접속관계, 안전운항을 위한 예견하지 못한 정비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인한 경우에는 피해보상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예외사항은 항공기 지연이나 결항의 거의 대부분 이유를 차지하는 조항들이다. 이로 인해 승객들은 지연이나 결항 등으로 금전적·정신적 피해를 받아 소비자보호원 등에 진정을 하더라도 보상받기가 어렵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항공기 연착과 관련해 항공회사의 직무상 태만이나 고의, 과실을 승객이 ‘직접’ 입증해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당시 항공사의 과실을 입증할 증거를 일개 승객이 수집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제대로 된 보상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불만을 고려해 지난 2018년 1월 소비자 보상에 대한 규정이 조금 더 명확히 마련됐지만 법이 아닌 가이드라인의 형태여서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항공기 지연 시 대처법은?

조금이나마 보상 혹은 배상을 더 받기 위해서는 승객의 행동도 중요하다. 항공기 지연 시 항공사는 안내방송과 함께 승객들을 꾸준히 체크해야 한다. 항공사 직원들이 승객들을 방치하거나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경우 이 같은 상황을 기록해 놓는 것이 추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항공사에서 대체운항 편을 확보하려고 노력 중인지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 좋다. 항공기 지연 이유를 정확히 물어보고 항공사의 답변이 합리적인지 체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항공사 직원들에게는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하고, 중요한 일정이 있다면 이 역시 이야기해 두는 편이 좋다. 녹음 사실을 고지한 뒤 항공사 직원과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도 추후 소송까지 갈 경우를 대비했을 때 좋은 판단이다. 이처럼 자료를 확보했다면 첫째로는 항공사에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소비자보호원이나 법정을 찾는 방법 순으로 하면 된다.
실제 소송까지 가서 항공사로부터 보상을 받아낸 사례도 있다. 지난달 21일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 따르면 C씨는 최근 3박 4일간 중국 푸동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항공권을 예약했다. 그런데 귀국 비행기에서 항공사는 그에게 중국 국내 지역 항공 관제통제 영향 등으로 인해 출발 시간이 2시간 9분가량 미뤄졌다고 통보했다. C씨는 항공사에 손해배상을 요구했지만 거절하자 한국소비자원에 진정을 냈다. 소비자원 측은 C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항공정보포탈시스템 ‘에어포탈’의 실시간 운항정보를 살펴보면 당시 푸동-인천 구간을 운항한 항공기는 총 18편이고, 그 중 11편이 정시에 도착했다. 해당 귀국편 항공기를 포함한 7편의 운항이 지연된 사실만으로는 푸동공항의 관제통제 영향으로 지연 도착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C씨가 받은 배상금은 1만1000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철옹성’ 같은 항공사의 ‘면책 사유’에 대한 개인의 승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항공기 지연이나 결항은 즐거운 여행에 큰 스트레스를 주는 사고다. 물론 항공기의 안전은 중요시돼야 하지만, 면책 사유를 믿고 승객에게 보상해 주지 않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항공사의 관행도 개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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