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부장 발탁후 전·현직 정권 핵심 실세 단죄 저질연탄 사건 등 권력형비리 수사 강한 특수통 현대·SK비자금, 대선자금 등 핵뇌관진두지휘

“특검에 관계없이 철저히 진상 규명에 임할 것이다.” 지난 7일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와 관련한 특검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직후 안대희(사시 17회) 대검 중수부장이 던진 일성이다. 최근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참여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검 중수부장에 발탁된 안 부장은 나라종금, 권노갑 비자금, 현대-SK비자금, 대선자금 등 굵직굵직한 대형사건들을 진두지휘해 왔다. 특히 정치권에서 불문율로 통했던 대선자금 뇌관을 건드린 안 부장은 정치권에선 경계의 대상으로 지목받고 있지만 정치개혁을 갈망하는 국민들로부터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정치권에 뿌리박힌 ‘부패’를 도려내기 위해 꺼내든 안 부장의 메스가 `특검정국`이라는 새로운 수술대 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대선자금 수사의 실질적인 사령탑인 안 부장은 검찰내에서도 손꼽히는 ‘특수수사통’으로 통한다.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20세 약관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안 부장은 25세에 최연소 검사가 됐다. 검사 발령 6개월만에 서울지검 특수부에 배치된 안 부장은 80년대초 당시 박주선(현 민주당 의원) 검사와 함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저질연탄’ 사건을 수사했다.사시 1년 선후배 사이인 박 의원(사시 16회)과 안 부장은 81년 4월 전두환 정권 출범 초기에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이른바 ‘저질연탄’사건을 함께 수사하면서 당시 국내 3대 연탄업체가 저질 무급탄을 섞어 넣는 수법으로 1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올린 사실을 밝혀냈다.당시 연탄은 서민들의 생활필수품이었기 때문에 저질연탄 사건을 파헤친 검찰 수사는 여론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당시 석탄업자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전두환 전대통령의 처삼촌(이규광 대한광업진흥공사 이사장)이 청와대를 다녀간 뒤로 검찰총장이 전격 경질되는 등 검찰 수뇌부에 대한 인사태풍으로 비화되기도 했다.이후 안 부장은 대검 중수3, 1과장, 서울지검 특수3, 2, 1부장 등을 거치면서 특수검사로 명성을 쌓아왔다. 96년 서울 시내버스조합 비리사건과 97년 교육방송 및 대형 입시학원 비리사건, 극동건설 부당내부거래 수사 등을 무난히 처리했고, 최락도·박은태 전의원을 구속시키는 등 권력형비리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이처럼 원칙과 소신을 바탕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해 온 안 부장이지만 그는 자신의 강직함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서울지검 특수부장 시절 설계·용역 비리수사 등으로 DJ(김대중 전대통령) 정부 실력자들의 스폰서들까지 건드렸던게 화근이 돼 DJ정권 내내 한직에서 맴돌아야 했던 것. 또 검사장 승진에서도 두번이나 연거푸 물을 먹고 나서야 지난해 8월 간신히 검사장(부산고검 차장)으로 승진했다.그러나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옛말이 있듯이 안 부장은 참여정부 출범후인 지난 3월 전국 특수검사를 총 지휘하는 대검 중수부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노 대통령과 사시 동기이자 동향(경남함안)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란 평도 없지 않았지만 원칙과 소신을 고수해 온 안 부장의 자질과 특수수사통이란 명성이 작용했을 것이란 게 검찰 내부의 중론이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대검 중수부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안 부장은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을 비롯한 현대-SK비자금, 대선자금 등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는 용기와 특유의 소신 수사를 강행하고 있다.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과 관련한 재수사에 착수한 안 부장은 전·현정권 실세들을 과감하게 수사선상에 올렸다.그 결과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염동연(구속)씨와 안희정(불구속)씨가 기소됐고, DJ 정권때 실세로 통했던 한광옥 전청와대비서실장과 이용근 전금감위원장도 구속됐다. DJ의 장남 민주당 김홍일 의원은 불구속기소됐다.또 민주당 박주선·한나라당 박명환 의원 등 현역의원 2명에 대해서는 체포동의안을 국회로 보내기도 했다.

안 부장을 중심으로 한 대검 중수부의 거침없는 칼날에 정치권은 서서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라종금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대북송금 의혹사건을 비롯한 현대·SK비자금, 대선자금 등 한국 정치사에 오랜 관행처럼 굳어져온 정경유착 고리 및 ‘부패정치’를 겨냥해 메스를 꺼내들었던 것.대북송금 특검팀이 넘긴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지원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현대비자금 150억원 뇌물수수 혐의를 보강 수사해 추가로 기소했고, 현대측으로부터 200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당 권노갑 전고문도 전격 구속기소했다. 또 한나라당 박주천·임진출 의원, 민주당 박주선 의원, 박광태 광주광역시장, 김용채 전 자민련 부총재 등도 현대비자금에 연루된 혐의로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았다.현대비자금에 이은 SK비자금 사건은 정국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SK측으로부터 노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11억원을 수수했고, 한나라당도 지난해 대선 직전 100억원을 전달받은 사실이 대검 중수부 수사결과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 전비서관의 비리혐의 사실을 전해들은 노 대통령은 “재신임을 묻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안 부장의 성역없는 원칙수사가 ‘재신임 정국’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 됐던 것.안 부장의 이러한 원칙과 소신에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고 실세’라는 표현으로 그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다.하지만 안 부장에 대한 최 대표의 호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중수부 수사결과 한나라당이 SK측으로부터 100억원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검찰의 칼날은 곧바로 한나라당으로 향했다.

여론은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했고, 최 대표와 이회창 전총재는 대국민사과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돌변했다.부패정치 청산과 정치개혁이란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자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 전면 수사’라는 초강수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고, 위기를 직감한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카드로 맞서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으로 여야 정치권이 극한 대치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 물론 정치권의 이러한 극한 대치상황은 내년 총선정국을 겨냥한 주도권 장악 포석과 맞물려 있지만 ‘부패정치’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검찰의 의지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검찰발 정치개혁’이 도래할 것이란 소리가 나도는 것도 작금의 대형 정치사건에 대한 검찰의 강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또 검찰의 이러한 의지 중심에는 대검 중수부와 안 부장이 자리하고 있다. 정치지형을 뒤바꿀 수 있는 대형 정치사건을 중수부가 전담하고 있고, 그 실질적 수사지휘를 안 부장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7일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직후 안 부장은 “특검에 관계없이 철저히 진상 규명에 임할 것”이라는 각오를 피력한 바 있다.특검 등 정치권의 외압에 맞서 안 부장의 이러한 각오와 ‘부패정치’ 청산 의지가 실현될 수 있을지 그의 향후 수사 행보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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