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습격 사건의 피의자 지충호(50)씨를 둘러싸고 여러 의혹들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그의 실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지씨와 관련해 정·재계에서는 많은 의혹들이 있었다. 신분에 걸맞지 않은 지씨의 씀씀이, 당초 습격 대상이 박 대표가 아닌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였다는 것, 지씨의 공범과 배후세력에 대한 추측 등이 그것.

검경 수사가 진행될수록 지씨의 헤픈 씀씀이의 출처가 속속 확인되고 있지만, 지씨의 범행동기, 배후세력과 공범여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지씨의 실체 역시 오리무중인 상태다. 이와 관련, 본지는 어려서부터 그와 함께 지냈다는 A씨를 만나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범행이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시각과 달리 A씨는 “지씨는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쳐 사회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일 뿐”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놨다. 그간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부분도 많고, 현재 의혹이 일고 있는 부분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어 관심을 끈다.





영화‘올드보이’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던 오대수가 술에 취해 집에 돌아가던 길에 존재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납치되어 언뜻 보면 싸구려 호텔방을 연상케 하는 사설 감금방에 15년 갇혔다가 풀려난다.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 동안 갇혔던 수수께끼와 같은 비밀을 풀어 나간다. 이것이 영화‘올드 보이’의 스토리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청년은 한 유부녀를 사랑한 것이 죄가 돼서 감옥에서 18년을 보내게 된다. 18년간 처절하게 갇혀 살다 세상 밖으로 나온 지충호가 바로 영화 속‘올드보이’가 아닌 현실 속 ‘올드 보이’인 셈이다.그의 삶은 처참하다 못해 참혹하다. 언론에선 고아원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지씨는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못 낳던 집에 핏덩어리 때 입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씨가 살았던 주소는 인천광역시 남구 학익동 482번지. 지씨의 양부모는 이곳에서 업소를 운영했으며, 때문에 그의 집에는 늘 성매매 여성들이 붐볐다고 한다. 당시 학익동은 미군부대가 소재한 유명한 집장촌으로 밤마다 술 취한 미군과 뱃사람들로 흥청거리던 유흥가였다.

입양사실 알고 ‘방황’

지씨의 성격이 변한 것은 무엇보다 그의 주위환경 때문이라고 A씨는 말하고 있다A씨는 “당시 학익동은 인천에서 가장 큰 유흥 지역이었다. 집장촌을 중심으로 양쪽에 미군부대와 도살장이 있었다. 미군부대를 지나야만 학교를 갔다. 밤마다 술에 취한 미군들과 뱃사람들로 넘쳐났다. 한마디로 소돔과 고모라성이었다. 술과 여자, 그리고 섹스가 난무했다. 어려서부터 성매매 여성들의 문란하고 질펀한 모습만 보고 자랐는데 성격이 온전할 리 있겠는가. 정상적인 아이들보다 빨리 사회를 알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씨의 양부는 업소를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때문에 입양한 자식을 금지옥엽 키우며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달라는 대로 주는 부모 덕분(?)에 지씨는 돈을 ‘물 쓰듯’쓰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급기야 돈에 대한 개념마저 없어졌다고 한다.지씨는 중학교 입학 이전부터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양부가 업소를 운영했기 때문에 여자들과 접촉할 시간이 많았다. 술 취한 남자들과의 섹스에 지친 여자들이 낮 시간의 무료감을 달래기 위해 어린 지씨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성에 눈뜬 지씨의 학교생활이 온전할 수 없었다. 학익초등학교를 나와 선인중학교를 1년을 다니다 학교를 중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씨가 학교를 그만 둔 이유는 자신의 출생 비밀이 알려지면서부터. 그는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때문에 자신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당시 사춘기 학생이었던 지씨가 받아들이기에는 힘에 부치기도 했을 터다. 그의 상처는 성격적 결함과 가출로 이어졌다.

지씨는 가출해서도 윤락가에서 전전했다. 또 아는 형들이랑 대마초를 피우기도 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구두방 점원, 공사장 막일 등 닥치는 대로 일도 했다.A씨는 “지씨는 가출을 해도 이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눈에 띄곤 했다”며 “게다가 친구도 별로 없어 나에게 종종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지씨는 한 곳에 마음 둘 곳 없이 방황하며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냈다.

20대 후반에 이른 지씨는 1981년 카바레에서 자신보다 8살 연상인 여성 B(58)씨를 만났다. B씨는 가정이 있는 유부녀였다. 그녀의 남편(63)은 잘나가는 세무 공무원이었다. 한 번도 여자를 제대로 만나 사랑을 해본 경험이 없던 지씨에겐 B씨는 천사와도 같은 존재였다. 지씨에게 B씨가 유부녀라는 배경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있어 행복했다. 두 사람은 영화‘바람의 전설’에서처럼 춤과 사랑이 있어 좋았던 시절이었다. 낮에는 사랑을 하고 밤에는 카바레를 돌아다니며 춤을 췄다고 한다.

A씨는 “당시 지씨는 적당한 몸매에 귀여운 얼굴이었다. 얼굴에 곰보가 있던 걸로 기억되는 B씨도 아마 나이 어린 지씨를 보고 혹 했을 것”이라며 “B씨와 한 두차례 만나면서 남다른 감정을 느낀 것 같았다. 당시 사귀는 여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보다 행복해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이렇게 둘은 몰래 만나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지씨에게 밀애장소로 이용할 아파트도 사주고 차도 한 대 뽑아줬다고 한다. 차는 신형 노란색 포니2였다. 한마디로 아파트와 차 안은 그들의 밀애장소나 다름없었다. B씨는 지씨에게 주기적으로 용돈을 대주는가 하면, 거금을 들여 둘만의 호사스러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6개월 간 순조롭던 둘 사이는 B씨의 남편이 눈치를 채면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B씨가 지씨에게 그만 만나자고 했다. 남편이 알면 난리난다면서. 진정으로 사랑했던 지씨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B씨가 만나주지 않자 지씨는 B씨가 사는 인천 남구 주안동 집까지 찾아갔다. 초인종이 없던 시절이라 그녀를 불러내기 위해 지씨는 돌맹이를 던져 유리창을 깨서 나오면 만나곤 했다. 또한 쪽지를 써서 그녀가 볼만한 곳에 숨겨놓는 방법도 사용했다.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슨 방법이든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씨의 스토커적인 행동에 지친 B씨가 아무 말도 없이 서울로 이사를 가버렸다. 연락이 끊긴 지씨는 애가 탔다. 당시 지씨는 무척 힘들어 했으며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지씨는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서울로 이사간 B씨를 수소문 끝에 찾아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씨는 B씨가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이 설득하면 남편과 헤어지고 자신에게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돈 많고 남성 편력 좋은 사모님인 B씨에게 지씨는 그저 ‘엔조이’ 대상에 불과했다.

내연녀에 ‘끝없는 집착’

실제로 A씨는 지씨와 함께 B씨를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지씨가 ‘목숨 거는’ 것처럼 그녀는 그다지 지씨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었다고 회고한다.A씨는 “솔직히 B씨가 뭐 아쉬운 게 있다고 가정까지 버리면서 지씨와 만나겠어요. 듣자하니 남편은 국세청 과장에 남편의 가족들은 검사, 안기부 간부 등 줄줄이 ‘내로라’하는 사회기득권층이던데….

현모양처는 아니더라도 남의 이목에 상당히 신경쓰는 눈치였어요. 제가 만나는 자리에 대동한 것도 좀 불쾌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B씨에게 ‘이혼’이라는 꼬리표가 말이나 됩니까”고 말했다. A씨는 ‘그녀는 가족이 있다. 그만 잊으라’고 수차례 지씨를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집착은 나날이 심해져 갔다. A씨에 따르면 지씨는 B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묵으며 계속 그를 찾아갔고, 이 때 둘 사이에서는 몇 차례 고성과 폭언, 폭행이 오갔다.

참다못한 B씨는 그를 ‘제비’로 몰며 남편에게 이 모든 사실을 실토했다고 한다. 남편은 이에 격분, 지씨를 ‘가정파괴범’으로 몰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수차례 경고했다. 그러나 지씨는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남편을 협박했다고 한다. 공직자의 신분을 이용, ‘당신의 아내가 춤바람이 났다’ ‘젊은 총각과 바람을 피운다’는 등으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겠다며 협박했다.

그의 ‘공갈·협박’은 주효했다. 지씨는 남편으로부터 4차례에 걸쳐 모두 1,050만원을 뜯어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협박이 이어지자 남편은 끝내 그를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지씨는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감옥살이를 한다. 그 시기 양부가 감옥살이를 하는 양아들을 지켜보면서 술로 세월을 보내다 지병으로 사망한다. 만 4년만인 89년 출소한 지씨는 그때까지도 B씨를 잊지 못했다. 양모는 출소한 지씨에게 B씨를 잊고 새 삶을 살라면서 여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허사였다.

지씨는 B씨와 지낸 꿈같은 시간을 잊지 못하고 또다시 B씨를 찾아간다. 그녀의 집 앞에서 B씨를 기다리며, 만나자는 메모를 쓴 쪽지를 문틈으로 밀어 넣는다. 지씨는 B씨를 만나 먼 곳으로 도망을 쳐서 사랑을 다시 시작하자고 호소하려던 마음이었다. 그때 집밖으로 나오던 남편과 마주쳤다. 지씨는 남편을 보는 순간 4년간의 분노가 떠올랐고 4년간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보상을 해달라고 협박을 했다.

생각지 못한 그의 출현은 남편에게 가히 충격으로 다가왔을 터였다. 이후 지씨는 걸핏하면 남편을 찾아가 돈을 타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B씨에 대한 증오만 더 커졌다고 한다. A씨는 “지씨가 돈이 떨어지면 남편을 찾아가 협박한 것 같다”면서 “그는 평소 ‘억울하다’, ‘어떻게든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지씨의 끊임없는 협박에 견디다 못한 B씨의 남편도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20년간 옥살이

A씨에 따르면 남편은 지씨를 인천 올림포스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한 다음 그를 강도 및 강간, 공갈 폭행 등으로 남동경찰서에 고소했다. 이렇게 해서 지씨는 징역 7년과 보호감호를 선고받아 14년 4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전과 8범의 지씨는 결국 여자 때문에 20여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해 온 셈이다. 2005년 8월. 지씨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기간 수감돼 있던 지씨는 분노, 원망, 억울함으로 들끓고 있었다. B씨와 남편 때문인 것도 있었지만, 보호감호 때문에 7년을 더 살아야만 했던 당시 현실 또한 억울했다. 실제로 지씨는 옥중에서 수차례 탄원서를 넣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이때부터 지씨가 보호감호제를 만든 전두환 정권을 원망하게 됐다는 게 A씨의 설명. 또 설상가상으로 당시 구타와 고문 등으로 인해 지씨는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한나라당 박 대표 얼굴을 칼로 그었을까.

“박대표는 희생양”

보호감호법을 만든 전두환 정권의 당시 ‘민정당’이 그 후 ‘한나라당’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A씨에 따르면 “지씨는 어떻게 하든세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했었다”며 “그러기 위해선 뭔가 큰 건을 터뜨려야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그는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박 대표는 철저한 희생양”이라며 “지씨는 실제로 한나라당과 아무 연관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A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씨의 범행 동기는 ‘한나라당의 뿌리가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이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또 그의 범행 계획은 우발이 아닌 이미 14년여 전부터 계획해왔던 치밀한 시나리오인 셈이 된다. 지씨 사건은 세상에 불운하게 태어난 한 남자의 빗나간 애증이 빚어낸 한편의 드라마인 셈이다.



# 지충호 재판기록에 무엇이 담겼나내연녀에게 가정파괴범으로 ‘피소’… 4년 옥살이

사회에서 소외된 한 남자의 외침이 칼날이 되어 세상에 돌아왔다.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피습 사건의 주범인 지충호는 징역7년과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아 14년 4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던 사회생활에 어두운 인물이었다.불우한 어린 시절을 살았던 지충호는 8년 연상의 유부녀를 만나 1년 6개월간 빗나간 사랑을 나누었다.

마음이 변한 여자가 지씨를 상대로 돈과 몸을 빼앗으며 폭행을 했다며 ‘가정파괴범’으로 고소하여 4년형을 산다. 이후 형을 마친 지충호가 그들 부부를 찾자 이번에는 폭행혐의로 고소하여 징역 7년과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았다. 실제 지씨는 옥중에서 수차례 탄원서를 넣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이때부터 지씨가 보호감호제를 만든 전두환 정권을 원망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구타와 고문 등으로 인해 지씨는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고 한다. 지씨는 보호감호법을 만든 전두환 정권의 당시 민정당이 한나라당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미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14년 동안 사회를 향해 갈아온 칼날을 휘두르며 그가 그토록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한 여자와 빗나간 사랑에서 빚어진 장기 옥살이와 보호감호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친구 C씨는 “B씨와 그녀의 남편이 지충호를 악질범으로 몰아 감옥에 넣었다. 지충호는 경찰조서에서나 재판과정에서 일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 바로잡기를 호소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며 억울해 했다”고 말했다.지충호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친구들은 B씨 남편 친인척들이 당시 안기부와 판사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당시 재판기록엔 지충호에 대해 어떤 모습으로 다루고 있을까.지씨의 재판기록에 따르면 그는 22년 전인 1984년에도 미리 준비한 면도칼로 서울 강남구에 사는 한 여성의 얼굴을 2차례, 왼쪽 다리를 1차례 그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여성은 얼굴을 크게 베이는 등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기록에는 ‘지씨가 82년 9월 한 카바레에서 이 여성과 만난 뒤 성관계를 맺어 오다가 83년 이 여성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폭행·협박하는 과정에서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나와 있다. 지씨는 83년 4월에도 인천시 남구에 사는 이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발로 걷어차는 등 폭언과 폭행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해 12월에는 인천시 중구의 한 호텔에서 전화 수화기로 이 여성의 머리를 여러 차례 때리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지충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든 간에 법이 만인 앞에 존재하는 한 그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시 조작에 의해 잘못된 재판이었다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이래야만 제 2의 지충호가 이 사회에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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