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검사로 김진흥(61) 변호사가 임명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김진흥 변호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한치의 의혹도 없이 수사에 임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특검은 전북 임실 출신으로 전주사범학교-전북대 법대를 졸업 군법무관으로 재직하다 90년 대령(육군 법무차감)으로 예편,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두 번째 특검으로 임명된 김 특검은 ‘필요에 따라선 대통령도 수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어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6일 최도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썬앤문 문병욱 회장 등 자신의 측근비리를 수사할 특별검사로 김진흥 변호사를 임명했다.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김 변호사는 20여년 동안 군 법무관으로 재직하면서, 합리적이고 공평무사한 업무 처리와 원만한 성품으로 상하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며 “변호사 개업이후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며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이고 강직한 태도로 주위의 존경을 받아왔다”고 임명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윤 대변인은 또 “김 변호사와 함께 대한변협으로부터 특검후보로 추천받은 다른 1명인 박인환 변호사도 업무처리 능력이나 성품면에서 손색이 없으나 상대적으로 연륜이 풍부한 김 변호사가 더욱 적임이라고 판단해 임명했다”고 덧붙였다.

옷로비 사건,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이용호 비리 사건, 대북송금 사건에 이은 다섯 번째 특별검사로 임명된 김 특검은 법조 생활을 대부분 군에서 보냈다. 김 특검은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전북대 법대에 진학한 뒤 67년 처음 시행된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해 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3년 동안 육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며 국방부 송무과장, 육군본부 고등검찰부장, 법무차감 등을 지냈다. 김 특검은 군 법무관 시절인 지난 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항소심 공판에 배석판사로 참여했고, 암살에 가담한 김 부장의 부하 박흥주 대령의 주심을 맡았다.

김 특검은 이 사건을 “군법무관 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며 “김재규씨와 함께 기소된 김씨의 부하 박흥주 대령에 대한 심리를 담당하면서 ‘내가 저 사람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대령으로 예편한 9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 특검은 법조계에서 정치색이 없고 배움을 중요시하는 학구파 변호사로 통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매주 수요일 열리는 판례연구모임에 한 차례도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열성적인 분”이라며 “60이 넘은 나이에도 항상 연구하는 모습은 젊은 변호사들이 본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김 특검은 실제 군 법무관 시절부터 틈틈이 써온 학술논문이 15편이나 되며 2000년에는 ‘일반인을 위한 하도급거래 생활법률의 기본지식’이란 책도 펴냈다. 법조계에선 “심리불속행 상고기각 판결의 문제점”이란 판례연구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런 열정으로 서울지방 변호사회 ‘변호사 안내 사업회’ 운영위원장, 법제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또 현재 단국대 법대와 행정법무대학원의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며 한국경영법률학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 특검은 특히 국선변호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다. 이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과 변호사’2001년 10월호에 실린 그의 글에 잘 드러나 있다. 김 특검은 ‘국선변호 단상(短想)’이란 기고문을 통해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을 위하여 열변을 토하는 변호사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문학가는 나의 소년 시절의 희망이었다”며 “40대를 마감하던 해에 변호사 간판을 걸었다. 그 다음해 깊은 호수 바닥에 묻혀 있던 금광석 같은 것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마음속 깊이 묻혀 있던, 소년 시절의 다짐이 나의 등을 밀어 국선변호, 무료법률상담 등을 지망하라고 하였다”고 국선변호에 집착하게 된 동기를 말했다.

그는 또 “누가 인권변호사라고 불러 주지 않더라도, 시민단체를 통한 사회 기여를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묵묵히 국선변호에 열정을 바치고 있는 변호사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국선변호는 이러한 사람들을 통하여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훈김을 불어넣고 있다고 생각된다”고 적었다. 이처럼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이고 정치색이 없고 합리적인 성향의 법조인이라는 법조계 내 평가 덕에 그는 대한변협 상임이사들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특검 후보에 올랐고 마침내 특별검사로 임명됐다. 후보 추천 당시 법조계 일각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박재승 변협회장은 “가능한 한 여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사안을 다룰 수 있는 정치색이 없는 법조인 중에 신망이 두터운 인물을 기준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특검에 대해 ‘정치색이 없고 노력하는 인물이지만, 큰 사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김 특검은 기자회견에서 “혼자서 수사하는 것 아니다. 특검보도 있고 수사관들도 있어 함께 협력하는 것인 만큼 큰 어려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특검의 앞날에는 난관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조로 특검의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단식투쟁’, 국회 재의결을 거친 매우 민감하고 정치적인 사안이다. 경우에 따라선 현직 대통령을 수사해야 하는, 자칫 헌정사상 전례가 없었던 일을 담당해야 한다. 노 대통령도 임명장을 수여하며 “저도 담담하게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기는 기분으로 가고 있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또 검찰의 수사가 의혹을 증폭시켜 특검으로 넘겨졌던 다른 일련의 특검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미 검찰수사가 상당히 진행돼 있고, 이번 특검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 ‘헌법소원’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로 반대기류가 심했다.

게다가 특검팀의 수사가 1개월 연장될 경우 내년에 치러질 4·15 총선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이번 특검은 변협 내부에서조차 막판까지 후보선정에 진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특검은 원칙을 강조하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김 특검은 기자회견을 통해 “누가 하느냐가 문제이지, 안할 수는 없는 것이다”며 “대통령 주변 일이라서 꺼려지는 것은 없다. 원칙에 입각해 처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또 “사범학교와 군에서 생활하면서 옳은 것을 배우고 가르치려 했다”며 “변호사 일도 그렇게 해 왔고 이번 사건도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개인적인 손익을 떠나서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원칙은 ‘최고 권력자’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강조하는 김 특검.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이 관련된 특검을 지휘하게 될 그의 행보에 정치권과 국민들은 벌써부터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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