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든 싫든 어차피 내손에 피를 묻혀야만 하는 자리다. 잘해도 그만이고 못하면 욕먹는 자리아닌가.” 한나라당 김문수(52·부천 소사)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장에 내정됐을 때 고민했던 부분은 역력했다.생수회사 ‘장수천’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 의혹을 제기했던 김 의원은 “현직 스타급 장관이름이 (장수천) 주주명단에 거론되고 있다”며 “특검에서 조만간 놀랄만한 (장수천 관련) 정치 인사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의원은 또 “용인땅 매매 의혹에 확신을 가진 것은 강금원씨가 대표로 있는 창신섬유 전직원의 제보가 가장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5일 오전 한나라당 8층 소회의실에서 김의원을 만나 요즘 그의 고민과 계획을 들어봤다.

-한나라당 공천개혁의 중심 축에 섰는데.▲공천심사위원장직을 맡으라고 했을 때 고민이 많았다. 좋든 싫든 어차피 내손에 피를 묻혀야만 하는 자리다. 잘해도 그만이고 못하면 욕먹는 자리 아닌가. 어쨌든 정치는 ‘김문수’ 이름 석자 걸고 하는 거다. 존경하는 오세응 전 국회부의장도 7선의 다선 중진이지만 거의 무명정치인이다. 중도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나도 묵묵히 일할 따름이다.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에는 잡음이 없었나.▲공천위원회가 출범도 하기 전에 심사위원에 임명된 모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사의를 표명했다. 그래서 그 분께 싫은 소리를 했다. 위원회를 꾸리기도 전에 그만둔다면 당신은 구태한 정치인으로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물러가도 심사과정에서 절차의 문제가 있을 때 사의를 표명하는게 떳떳하지 않겠냐고. 지금은 사의를 철회했다.

-당무감사 문건 파동으로 후유증이 심각한 것 같다. 비주류 중진 의원들은 공천 신청 거부까지 선언했는데. ▲3일부터 시작된 후보자 공모에 응하지 않으면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다. 공천을 원하는 사람들은 줄을 서 있고 현역의원들을 물갈이 해 달라는 요구가 대단히 높다. 화끈하게 바꾸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다. 스스로 안 나와 준다면 더 고마운 일이다. 지금의 당내 갈등은 개혁 공천의 큰 흐름 속에서 비리와 부패 혐의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반발에 불과하다.

-일부 소장파 의원들까지 공천심사위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다.▲운영위에서 독립적 기구인 공천심사위를 어떻게 하라고 할 수 있느냐. 자기들이 구성해 놓고 지금 바꾸라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향후 공천일정은 어떻게 되나. ▲내년 총선에 출마할 후보자 공모를 지난 3일부터 시작해 오는 11일까지 9일간 실시키로 했다. 다음달 12일부터는 공천심사에 착수해 단수 또는 복수 후보자를 선정하고 경선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노대통령이 운영했던 생수회사 ‘장수천’의 특혜대출 의혹이 검찰수사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나도 의혹를 제기할 때는 사실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다. 당시 ‘장수천을 제대로 파면 대통령은 위험해질수 있다’는 식의 제보전화가 하루 수십통씩 걸려왔고, 신빙성있는 제보를 중심으로 모자이크처럼 조사를 해나갔다. 그러면서 하나 둘씩 사실로 드러났다. 강금원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할 때도 전 창신섬유 직원인 A씨의 도움이 컸다. 자금당담을 맡고 있었는데 노 대통령 측근들에게 송금한 내역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강씨가 검찰에서 송금부분을 부인하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대통령 측근비리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만족하는가. ▲빙산의 일각이다. 강금원씨의 모포군납비리에 연루된 국방부 직원 문명희씨는 장수천 명함을 갖고 있었고 안희정씨와 아는 사이였다.그래서 장수천 주주 명단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검찰은 (명단을 )대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았지만 정보접근이 차단돼 있었다.첩보수준이지만 그 명단에는 전현직 장관들 이름이 거론되고, 현직 장관중에는 스타급인 L, K씨가 끼여있어 놀랐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로부터 피소를 당한 규모는.▲그동안 장수천, 용인 땅 매매 의혹, 대통령 친인척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을 잇달아 제기했고 그 때문에 노 대통령으로부터 10억원,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으로부터 8억원,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씨로부터 4억원 등 총 22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상태다.이번 수사발표를 통해 자신들의 범법행위에 대해 최소한의 부끄러움과 수치도 갖지 못한 권력집단의 비열한 행태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불법 부분이 지적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부끄러워하는데, 이들은 걸핏하면 수십억대의 소송을 걸어 상대를 파산지경으로 몰아갔다

-반소를 할 생각인가.▲정치인은 소송을 즐기면 안된다. 권력에 대한 감시를 본연의 사명으로 하는 야당의원으로서 내 역할에 만족한다.다만 입만 열면 야당의원과 언론사를 허위사실이나 유포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권력집단에는 상응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 심지어 이기명씨는 내가 용인땅을 ‘정치자금을 제공하기 위한 위장매매일 가능성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까지 허위사실 유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통령은 (이기명씨에 대해) ‘선생님을 생각하면 잠을 못 이룬다’고 편지를 쓰고, 이기명씨는 아들에게까지 편지를 쓰면서 야당의원을 허위날조자로 매도하는 일을 해 왔다.

-대통령도 사법처리를 해야 하나.▲노무현 대통령은 사법처리돼야 마땅하다. 도덕적 정치적 호소를 해봐야 먹힐 사람이 아니다.

-이제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이 시작됐는데. ▲검찰은 ‘은폐성’ 수사에 머물지 말고 각종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앞으로 특검이 밝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장수천과 관련해서는 주주 명단이 대통령 측근의 비리 리스트가 될 수 있다.차차 드러나겠지만 놀랄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밖에 거제도 국립공원 내의 별장 신축 특혜 및 매매과정, 장수천에 담보로 제공됐던 경남 진영 땅의 실소유 관계 및 노 대통령과의 연관성, 경남 김해 신용리의 임야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실소유자 논란 등이다.이런 각종 의혹거래에서 거액의 정치자금이 오고갔을 가능성이 크다. 노 대통령이 주장하는 호의적 거래는 위장된 뇌물이다.

-요즘 불안한 경제에 산적한 정치현안으로 고민이 많을 줄 안다.▲가끔 나도 요즘은 조급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야당이기는 하지만 주요 당직을 맡는 등 나름대로 정치적 영향력이 커진 게 사실이다. 그래서 빈 택시가 줄 서있거나 텅 빈 상점들을 보면 뭔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부담감을 느낀다. 하지만 야당 의원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마음만 급해진다.

-프로필에 보면 국가공인 자격증이 7개나 되던데. ▲노동운동할 때 주경야독해서 땄다. 집에 전기나 보일러가 고장나면 간단한 것은 직접 수리하기도 한다. 그런데 디지털 가전기구가 많아지면서 요즘엔 자격증도 무용지물이 다 됐다.(웃음)

-과거 급진 노동운동가 출신이라는 배경이 강하게 남아 현실정치에서 장애가 되지 않는지. ▲YS(김영삼)나 DJ(김대중)가 포지티브(긍정적인)해서 대통령이 됐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또 얼마나 네거티브하게(부정적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가. 우리 국민은 역대로 온실 속 화초보다 들판의 야생화 같은 정치인을 더 지도자로 선호한다. 어쨌든 부정과 비리를 보고도 이것저것 재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 만약 정치에서 은퇴한 후 계획이 있다면.▲노인복지사업을 하고 싶다. 내가 돈이 없으니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기금을 모을 생각이다. 그러려면 정치하는 동안 ‘김문수한테는 돈 맡겨도 믿을 만해’라는 평판을 쌓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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