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라는 격언은 정치권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선거 전략의 하나로서 회자되어 온 말이다. 경쟁하는 상대후보가 오래된 인물일 때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리거나 신인 후보가 차별화를 위해서 사용하는 말로서 정당 후보자 간 경쟁은 물론, 당내 선거에서도 전략적으로 많이 활용되어 왔다.

작년 8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도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당내 최다인 7선의 이해찬 의원이 당대표 선거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그와 경쟁했던 후보들이 그를 흘러간 물로 규정하면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나 조국 정국을 거치면서 이해찬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당내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해찬 대표의 ‘50년 집권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30년 집권론’, ‘20년 집권론’으로 하향 수정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정권 재창출은커녕 내년 총선승리마저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초선인 이철희, 표창원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해찬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는데, 정치9단에 가장 가까운 현역 정치인인 이해찬 대표는 이를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조국 사태에 대해 국민께 송구하다고 사과하면서,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표창원 두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정치를 하다 보면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정치인은 열정과 균형감각 그리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막스 베버의 구절을 언급하며 상황이 어렵더라도 이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한 자신에 대한 당대표 사퇴론에 대해서는 “일각에서 당 지도부의 사퇴를 언급하는 데 소수의견일뿐더러 총선을 다섯 달 앞두고 물러나라는 것은 선거를 치르지 말자는 것”이라며 “이번 총선에서 이기지 못하면 나라 전체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며 지도부 책임론도 일축했다. ‘버럭 이해찬’이라는 별명이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 기자간담회였다.

그런데 “총선을 다섯 달 앞두고 물러나라는 것은 선거를 치르지 말자는 것”이라는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맞는 말일까? 그리 멀리 예를 찾을 것도 없이 지난 20대 총선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였던 문재인 현 대통령은 안철수계의 집단 탈당으로 리더십이 흔들렸고, 결국 스스로 당대표직을 내려놓았다. 총선이 불과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2016년 1월27일의 일이었다.

문재인 대표는 총선을 망치기 위해 당대표직을 내려놓았을까? 아니면 총선에서 지는 게 두려워 책임을 회피한 것일까? 혹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통해 총선을 승리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 기인한 것일까? 어쨌든 문재인 대표는 당대표직을 내려놓음으로써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었고, 여소야대 정국에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파헤쳤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 그리고 스스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역사적 성공을 이루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정치 역량이 뛰어난 정치인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을 겸손한 정치인으로 평가하는 시각은 꽤 많이 있다. 이해찬 대표가 갖지 못한 리더십이고, 결국 그 차이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이해찬을 만년 2인자의 길에 만족하게 했다.

이해찬 대표가 대선 출마라는 큰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면 당대표직에 미련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불어민주당의 100년 정당을 위해 지금이라도 당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당에 대한 애정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년여 동안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이해찬 당대표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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