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대학 시절부터 멘토로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던 선배가 불쑥 한마디 던진다. “우리 국민들은 며칠만 지나면 모든 것을 까먹는 것 같다. 바로 엊그제 일조차도. 총선은 4년 전, 8년 전 오늘을 되돌아보고, 대선은 5년 전, 10년 전 우리 정치권의 모습을 꼭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긴급기자회견 형식으로 던진 ‘보수대통합’ 논의가 여의도 정치권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다. 기존에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제시한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아가자,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자’ 등 소위 ‘보수통합 3원칙’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자는 회견을 했고, 유승민 대표도 이에 적극적인 화답을 하면서 급물살을 타는 듯이 보인다. 기자회견 다음 날 황교안 대표가 유승민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통합에 대한 의지를 ‘일사천리’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를 바라보는 양측 진영 내부 의견도 극명하게 갈리고는 있다. 친박의 친황 기득권 강화 차원으로 폄하하며 연일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홍준표 전 대표부터 ‘중진 물갈이론’의 직접 당사자들의 반발까지 자유한국당 내 시각 차도 다양하고, ‘변화와 혁신’측도 신당기획단 출범과 맞물리며 다양한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양측 모두 미처 내부 준비가 덜 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진보 여당인 민주당은 “박찬주 폭탄에 더 큰 폭탄으로 시선을 돌리기 위한 일방통행식 뚱딴지같은 제안이고 묻지 마 통합”이라며 폄훼 수준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두 바퀴쯤 돌면 제자리에 오기도 하는 것. 시계를 4년전인 2015년 11월 총선 준비 상황으로 돌려보자. 리더십 위기를 맞은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소위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 ‘사퇴’ 또는 ‘제3의 길’ 등 세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심을 하고 있었다. 급기야 문 대표는 ‘문·안·박 연대’ 당사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동참 약속을 받아내며 속도를 높여 갔다.

문과 박 두 사람이 먼저 만난 것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즉답을 피한 안철수 전 대표는 장고에 들어갔고, 당내 비주류는 문 대표의 인적 쇄신 천명과 문·안·박 연대 제안을 두고 “국면돌파용 꼼수”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문·안·박 연대의 최종 결과는 여전히 안갯속을 달리고 있었다.

자, 어떤가. 이쯤 되면 어디서 정확히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에 소름이 돋지 않는가. ‘데자뷔(deja vu)’는 최초의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을 말하는 프랑스어다. 불과 4년여 만에 정확히 일치하는 데자뷔 정치 상황이 신기하기도 하고 역사의 수레바퀴가 겉도는 것 같아 조금은 슬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기왕 ‘뫼비우스의 띠’처럼 도는 역사라면 ‘데자뷔’ 속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15년 말 당시 공천권을 둘러싼 파열음이 점점 더 커지고 호남 비주류 강경파들의 반발 기류가 더욱 강해지는 상황에 “2012년 후보 단일화의 복사판”이라는 비관적인 분석까지 나올 때, 현역의원 20% 물갈이 평가 작업을 필두로 2016년 1월,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넘기는 파격으로 마침내 20대 총선 승리를 이끌어 냈다. 그야말로 시장의 예상을 200% 뛰어넘는 파격의 연속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데자뷔! 무의식에 의한 행동이나 망각된 기억이 뇌에 저장되어 있다가 그것이 유사한 경험을 만났을 때 되살아나 아련히 똑같은 일을 한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수대통합! 진정 승리를 원한다면, 20대 총선 전 민주당의 파격을 반면교사 삼아 시장의 예상을 200% 뛰어넘는 파격적인 솔루션을 내야만 한다. 오히려 ‘데자뷔’에 충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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