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가 끝나고 며칠 한산하던 국회가 다시 붐비고 있습니다. 은혜로운 의원을 모신 의원실은 며칠 휴가도 다녀왔다는 풍문도 들리지만, 대부분은 국감의 피로가 풀리기도 전에 예산 국회를 준비해야 합니다. 국정감사에서 날카로운 지적으로 신문, 방송에 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구에 예산을 따가는 일은 열배, 백배 중요한 일입니다. 연말에 실릴 의정보고서에도 크게 실을 수 있고, 요즘은 거리마다, 동네마다 현수막으로 도배하듯 홍보도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내년 4월 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다시 찍어 달라고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깁니다.

정기국회가 9월에 개회하면 우선 국정감사가 열리고, 정부예산 심의와 국회 계류 법안에 대한 심사가 이어집니다. 정부는 국가재정법에 따라 9월3일까지 국회에 정부예산안을 제출하는데요, 그전에 각 부처별로는 연초부터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각 부처는 1월31일까지 기획재정부에 부처별 중기사업계획을 제출하고 기재부는 제출한 계획을 바탕으로 부처별 지출한도를 설정합니다. 기재부는 3월31일까지 각 부처에 예산안을 작성하는 가이드라인이 되는 예산안편성지침을 통보하고, 각 부처는 5월31일까지 기재부에 부처별 예산요구안을 제출합니다.

발 빠른 지자체, 일할 줄 아는 지자체는 연초부터 의원실 문을 두드리고, 사업의 담당이 되는 부처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예산 확보에 열을 올립니다. 연 초에 각 부처 예산에 지역 사업예산이 담겨 기재부와 협의를 마치고 국회에 넘어오면 어지간해서는 잘리는 일이 없습니다. 국회에서 정부예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예산을 추가로 담기는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세 의원이나 기재부 예산실장, 차관, 장관을 설득하기 위해 소위 ‘쪽지’가 활용됩니다.

지금 국회는 정부예산에 담기지 않은 지역사업 예산을 밀어 넣어 보려는 지자체 공무원들, 내년도 사업예산을 삭감하려는 야당의 칼날을 막아야 하는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각 상임위별로 예산 심사가 한창인데 야당에서는 정부예산에 삭감 의견을 내고, 여당은 이에 맞서 증액 또는 유지의견을 가지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이 과정에서 슬쩍 지역구 예산을 몇 개씩 끼워 넣습니다. 이렇게 각 부처별 예산이 상임위 단계를 거쳐 내년도 예산을 둘러 싼 진검승부가 벌어지는 예결위로 보내집니다.

정부예산을 심의하는 예산결산위원회는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결위원장은 야당 몫인데 김재원 의원이 나경원 원내대표의 측면 지원 속에 황영철 전 예결위원장과 경선을 벌여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여당의 예결위 간사는 전해철 의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3철’ 중 1인으로 정권 실세라서 ‘본인이 원하면 장관도 할 수 있다’는 위세를 떨치고 있어서 간사로 선임되었을 때 다들 그런가 보다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보통은 지역별, 선수별로 배치하는데 두 번, 세 번 하는 의원은 그만의 특별한 이유가 다 있습니다.

각 상임위별로 심사를 거친 예산은 예결위로 상정되면서 본격적인 예산 심사를 하게 됩니다. 이  시점부터는 본격적으로 각종 로비와 쪽지와 난무합니다. 예산 심사를 하는 예결위원들도 급이 나뉩니다. 5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이 예산심사를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서 집중적으로 심사하기 위해서 각 당 별로 15명으로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를 구성해서 따로 심사를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관심을 갖는 예산 증액에 대해서는 ‘기재부, 예결위원장, 각 당 예결위 간사’만 모여 밀실에서 결정합니다. 멤버가 아니면 어디서, 언제 열리는 지도 모릅니다. 내년 예산안이 ‘슈퍼예산’이라는 말들이 많은데, 규모만 커서 슈퍼예산이 아니라, 경제를 살리는 슈퍼히어로와 같은 활약을 하는 ‘슈퍼 예산’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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