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홍콩 시대혁명’ vs ‘홍콩은 중국의 일부’

홍대 걷고싶은 거리 레논벽에 쓰인 문구들 [사진=황기현 기자]
홍대 걷고싶은 거리 레논벽에 쓰인 문구들 [사진=황기현 기자]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송환법 개정 반대에서 시작돼 어느새 반년을 향해 달리고 있는 홍콩 시위가 점차 독립을 부르짖는 목소리로 변하며 혼란이 커지고 있다. 친중파 입법회 의원이 괴한의 흉기 공격을 받은 것은 물론 한 대학생은 경찰이 쏜 최루탄을 피하려다 주차장에서 추락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생은 현재 두 차례에 걸친 수술에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뇌사 증상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더군다나 경찰이 학생을 후송하려는 구급차의 진입을 막았다는 증언이 나오며 홍콩 시위를 둘러싼 논란은 점점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 홍대 거리에서 홍콩과 중국의 대리전이 벌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홍대 설치된 ‘레논벽’서 홍콩인들 독립 요구
중국인 관광객들 “한국은 왜 홍콩 편 드냐”

지난 6일 방문한 홍대입구역 인근 ‘걷고 싶은 거리’. 낮 시간임에도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이 곳에는 최근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의 이름을 딴 ‘레논벽(Lennon Wall)’이 생겼다. 레논벽이란 1980년대 공산국가였던 체코의 젊은이들이 존 레논의 반전(反戰)과 평화를 담은 가사를 벽에 낙서하며 탄생했다. 시위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홍콩에도 시민들이 포스트잇을 통해, 혹은 직접 낙서를 적은 레논벽이 존재하는데, 홍콩 시위의 바람이 서울 홍대까지 불어온 것이다.
홍대에 설치된 레논벽에도 여러 젊은이들의 염원이 새겨졌다. ‘光復香港 時代革命(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한자어 옆으로 서툰 글씨의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한글 낙서가 쓰여 있었다. ‘Fight for freedom!(자유를 위해 싸우자)’, ‘Stand with Hongkong(홍콩과 함께 서자)’라는 영어 응원 문구도 보였다. 한국 국민들의 응원 글귀도 눈에 띄었다. ‘Free H.K(자유 홍콩)’이나 ‘香港人加油!(샹강런짜요·홍콩 사람들 파이팅!)’ 등의 내용이었다. 홍콩 시위 진압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내용의 대자보 역시 벽 한 켠을 장식했다.

‘레논벽’에 찾아온 위기

그런데 평화적으로 조성되고 있던 레논벽에 위기가 닥쳤다. 홍대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레논벽을 발견하면서부터다. 이들은 벽에 전시된 대자보를 훼손하며 항의의 뜻을 표현했다. 또 종이에 ‘홍콩은 중국 땅’, ‘하나의 홍콩’ 등의 글을 적어 벽에 붙이며 맞서기도 했다.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든 어떤 사람들이 분열을 기도하더라도 몸이 가루가 돼 죽는 결과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언을 담은 게시물까지 붙이기도 했다. 이 같은 게시물들은 누군가에 의해 또다시 떼어졌다. 기자가 홍대를 찾은 이날 레논벽에는 펜으로 된 낙서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지나가던 중국인 관광객 A씨에게 레논벽을 보여준 뒤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A씨는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고 단호히 대답했다. 홍콩인들의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허용될 수 없는 수준”이라며 “경찰을 폭행하고 도시를 파괴하고 있다. 강경 진압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집회서 ‘물리적 충돌’

중국인들의 생각이 강경한 탓에 서울에서의 집회는 물리적 충돌을 겪은 적도 있다. 지난 2일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홍콩 민주화지지 모임’ 주최로 열린 ‘홍콩 시민을 위한 연대집회’에서는 중국인 관광객 20~30명이 집회 참가자를 에워싸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들은 휴대전화에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를 띄운 채 참가자들을 위협했다. 사태는 결국 경찰이 출동해 “법으로 보장된 집회나 시위를 방해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 뒤에야 멈췄다.
또 지난달에는 연세대 학생들이 교내에 내건 홍콩시위 지지 현수막이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했다. ‘홍콩을 지지하는 연세대학교 한국인 대학생들’은 지난달 24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 ‘Free Hong Kong, revolution of our times(광복홍콩 시대혁명)’, ‘Liberate Hong Kong(홍콩을 해방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런데 이 현수막들은 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25일 모두 사라졌다. 학생들은 4일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한 번 더 내걸었지만 이 또한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졌다.
두 번째 현수막이 사라진 지 사흘째 되던 6일, 베일에 싸여있던 ‘연세대 현수막 실종 사건’이 중국인들의 소행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이날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관계자에 따르면 이 모임 학생들은 한 일행이 현수막을 가위로 자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남성 2명과 여성 3명으로 구성된 일행이 현수막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가위를 꺼내 현수막을 잘라 가져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행에게 “왜 남의 현수막을 가져가느냐”고 따졌지만 남성들은 “One China(하나의 중국)”를 외쳤고, 여성들은 “남의 나라 일에 신경 쓰지 마라”고 응대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여성들은 “한국인이 이(홍콩) 일에 개입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거나 “이렇게 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발언을 덧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치정’ 문제서 시작된 홍콩 시위

이처럼 홍콩에서 시작된 자유·독립 시위는 주변국인 대한민국까지 전파됐다. 홀로 중국을 상대하기 버거운 홍콩 시민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세계 각지에서도 홍콩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 홍콩-중국 국민들의 충돌이 본격적으로 일어날 경우 외교적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당국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편 홍콩 시위는 ‘치정’ 문제에서 촉발됐다. 지난해 2월 17일 20세 홍콩인 남성 찬퉁카이가 대만 타이베이시(市)에 위치한 숙박 업소에서 여자친구 펀샤오밍을 살해했다. 찬퉁카이는 범행 직후 홍콩으로 도망쳤는데, 홍콩과 대만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아 강제 송환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홍콩 의회는 올해 3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입법 예고하고, 4월 본 회의에서 1차 심의를 거쳤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반발했다. 범죄인 인도 법안이 통과될 경우 중국 당국이 사상범 등을 마구잡이로 강제 송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홍콩 시민들은 6월 범죄인 인도 법안 입법에 반대해 빅토리아 공원 등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또 송환법 완전 철폐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후 계속된 시위에서 중국이 강경 진압을 선택하자 홍콩 시민들은 독립을 요구하는 등 맞서며 긴장은 계속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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