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3일 김우식 연세대 총장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는 등 4·15 총선에 출마할 예정인 청와대 일부 비서진을 교체했다. 이번 인사는 여권의 `총선 올인 전략`에 따라 총선 출마자를 정리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으나 문 전수석 사퇴로 비서실장, 정무수석, 민정수석 등 실세 참모 `3인방`이 떠나 제2기 청와대 비서실 진용 구축이라는 의미도 갖게 됐다.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김우식 전총장은 최고경영자(CEO)형 총장으로 통한다.CEO형 총장들은 대학이 더 이상 ‘학문의 전당’으로 머물 수는 없다는 관점에서 대학을 바라본다. 대학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재정난은 경영능력을 갖춘 총장들을 갈구하고 있다. 평교수 시절부터 산학연대를 강조했던 김 신임 비서실장 역시 CEO형이다.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여입학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자산 1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되는 ‘아태평화재단’을 인수하는 등 파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아태평화재단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설립한 재단이다.물론 이 같은 공격적인 대학경영으로 인해 현정부 초기부터 수차례 정부 고위직에 거론됐음에도 불구하고 잇단 고배를 마셔야 했다.지난해 초 김 신임 비서실장이 교육부장관으로 거론됐을 때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등 교육단체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교육부총리로 유력하게 거명되는 인사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에 빠지게 된다”며 “이번 조각에서 연세대 출신이 배제되어 안배 차원에서 김우식 총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학벌을 5대 차별중의 하나로 규정한 것은 선거용에 불과한 것인가. 또한 국민의 90% 이상이 열망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 또한 포기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정부를 비난했었다.

이들은 또 “김총장은 노무현 정부가 표방한 교육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인사가 아니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교육개혁을 포기할 것인가”라고 강력 반발, 결국 인선 대상자에서 제외된 것이 그 한 사례다.그러나 김 신임 비서실장은 자신이 비서실장으로 선택된 배경에 대해 “취임 초부터 인화를 바탕으로 전 구성원이 힘을 모아야 발전이 있다는 전제 아래 조용하게 발전적으로 학교를 관리해 온 점을 평가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밀알만한 힘이라도 국가 발전과 민생 안정을 위해 도움이 되도록 할 생각”이라고 의욕을 내보였다.윤태영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 13일 브리핑을 통해 “신임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이공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2000년 8월에 연세대 총장에 선임되었으며 폭넓은 경륜과 학식 및 덕망을 갖추어 교육계 내의 존경을 받아온 인물”이라며 “총장 재직시에는 평소 산학연대를 강조하는 등 효율성과 합리성에 바탕을 둔 실용주의적 성향의 CEO형 총장으로서 경영감각과 조직관리 및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평생을 원칙에 입각해 살아온 우리나라 교육계 대표적 인물로서 사회 다방면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고 교육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정치권 등 각계각층의 인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발전과 민생안정 등 국정전반에 대하여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보좌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고 김 신임 비서실장 발탁배경을 밝혔다. 실제 김 신임 비서실장은 강경상고를 졸업하고 이공계(연세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직선 대학 총장에 오른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연세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람 농사에는 김우식’으로 정평이 높은 편이라고 전한다.화학공학과 교수, 즉 이공계 인사들이 대체로 인간관계에 서툰 것과 정반대로 인맥 관리, 사람들 사이의 갈등 조정 따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는 이야기다.또한 개혁성이 두드러진 편은 아니나 매사에 합리적이고 대인관계 또한 원만하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그러나 기여입학제를 주장하는 등 교육철학면에선 보수 성향으로 분류돼, 청와대 일각에서는 현정권과의 ‘코드’가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않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노무현 대통령과 오랜 개인적 인연이 없는 것도 김 신임 비서실장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노대통령의 아들 건호(연세대 법대)씨 졸업식 직후 총장실에서 환담을 나눈 것이 첫 만남이었다고 한다. 이는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이다. 그 이후 김 신임 비서실장은 ‘이공계 우대 방안’ 등에 대해 노 후보에게 조언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해 노대통령, 김대중 전대통령 내외와 따로 환담을 나눈 것이 전부라고 전해진다.김 신임 비서실장은 지난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인사차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가의 어떤 점이 어렵다고 생각하느냐’` 는 물음에 “여러가지 갈등이 많고, 부정적 생각들을 많이 볼 수 있다”며 “경제문제, 청년실업, 이라크 파병 등 국내외 문제등을 복합적으로 볼때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성공적인 대통령을 만드는 것이 성공적인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충분히 대통령을 보좌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김 실장은 또 ‘대언론 관계`에 대해선 “언론과 청와대가 한가족처첨 실리를 바탕으로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서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이미 노 대통령에게 건의를 드린바 있다”고 밝혔다.특히 인화를 중요시한다는 김 실장은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개혁·혁신과 인화가 조화를 이룰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지난 4년간 총장을 맡으면서 인화를 강조했다. 다스리는 것의 기본은 덕이고, 덕은 인화에서 나온다”면서 “개혁과 변화는 필요하지만 반드시 인화와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한편 노대통령은 문재인 민정수석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에 박정규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임명했다.

서울 도봉을에서 출마할 계획인 유인태 정무수석의 사표도 이날 수리했으나 후임자는 발표하지 않았다. 또 정만호 의전비서관 후임에는 천호선 정무팀장이 임명됐다.이번 개편은 여권의 ‘총선 올인 전략’에 따라 총선 출마자를 정리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지만 문 전수석 사퇴로 비서실장, 정무수석, 민정수석 등 실세 참모 ‘3인방’이 물갈이됨으로써 제2기 청와대 비서실 진용이 짜였다는 의미도 갖는다.신임 박민정수석은 각계의 여론수렴,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및 사정업무 추진 등에서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보좌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윤대변인은 덧붙였다.이번 2기 비서실의 특징은, 당 출신이거나 대통령 측근 출신으로 짜여졌던 1기에 비해 ‘정치적 색채’가 상당히 옅어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2기 비서실의 방향타가 어디로 맞춰질지 현재로서는 가늠키 어려워 보인다. 노 대통령이 뭔가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이를 2기 인선에 반영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나, 총선을 건너가기 위한 과도체제 아니겠느냐는 상반된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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