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복과 길리 트라왕안

[편집=김정아 기자/사진=Go-On 제공]
[편집=김정아 기자/사진=Go-On 제공]

 

[일요서울 |  프리랜서 함희선 기자] 나 역시 지금껏 여행의 기쁨은 응당 시간에 비례하는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때때로 어떤 떠남은 굳이 오래 머물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우리에게 늘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창밖으로 잠깐 철썩거리는 파도를 바라보는 찰나에도 지친 마음이 씻겨나간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시간의 물리적 양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로 무장하고, 무모한 일정으로 두 섬을 누비고 왔다. 롬복과 길리 트라왕안. 목구멍까지 뜨거워지는 열대의 섬에 흠뻑 반하고 말았다.

info 가는 법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에서 인천-발리 노선 직항을 운항하고 있다. 출국 편은 오전 11시 5분 인천을 출발해 오후 5시 발리 도착, 귀국 편은 새벽 0시 15분 발리를 출발해 오전 8시 25분 인천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소요시간은 약 7시간이다. 발리의 이웃 섬인 롬복까지는 국내선을 이용해 다시 40분 이동해야 한다. 한편, 1인당 수하물 30킬로그램 이외에 서핑보드나 골프 장비 등 스포츠용품 수하물을 23킬로그램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발리에서 롬복까지는 페리도 편리하다.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발리와 길리 트라왕안을 연결하는 페리도 있다. 역시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남짓으로 비슷하다. 롬복과 길리 트리왕안은 스피드보트로 15분 거리에 위치한다.

LOMBOK
롬복, 순수의 섬

발리 동쪽의 섬. 롬복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여행자도 발리로 향하지, 단 35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롬복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비주류를 쫓는 여행자나 황홀한 파도를 쫓는 서퍼에게만 인기다. 물론, 매년 롬복을 찾는 방문자수는 증가하고 있다. 발리 근교 섬 여행이 아닌, 롬복 그 자체를 목적지로 삼는 이들도 꽤 있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하는 말은 전부 동일하다. 때 묻지 않은 발리를 마주하는 기분이라고. “순수한 매력이 넘쳐나죠. 롬복은 마치 발리의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에요!” 롬복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하자 발리에서 10년 넘게 거주한 어느 한국인이 내게 했던 말도 그러했다. 여행자들이 점령하기 전의 발리를 경험할 수 있다면서, 진짜 롬복을 보고 싶다면 늦지 않게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롬복은 현재 정부 차원의 철저한 계획 아래 개발이 이뤄지는 중이다. 섬 남부의 만달리카 관광단지는 7.5킬로미터의 아름다운 해안을 끼고 있는 1200헥타르 규모의 부지를 정부가 나서서 도로, 상수도, 전기 등의 시스템을 구축한 뒤 대형 호텔과 리조트를 유치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 건설 중인 리조트만 해도 로열튤립, 풀만, 알로프트바이메리어트, 클럽메드 등 여럿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리와 비교하면 롬복은 여전히 때 묻지 않은 순수의 땅이다. 호텔 밀집 지역을 벗어나면 정글이고, 물가에선 버펄로 떼가 풀을 뜯는다.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은 편.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투덜댈 게 분명한 섬이다. 부쩍 인기도 많아지고, 개발도 급격히 빨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주류는 아니다. 아마도 20년은 지나야 지금의 발리 같은 모습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롬복이 발리와 차별화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섬의 원주민인 사삭 사람들이다. 3백 6천만 남짓한 총인구 중 85퍼센트를 차지하는 민족으로 이들은 힌두교가 아닌 이슬람교를 믿으며, 남자가 여자를 결혼식 전날 납치하는 풍습을 따르고, 아이를 다섯 이상 낳는다. 또 알록달록 직물을 짜는 손재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집 지붕을 지푸라기로 마치 탑처럼 높게 쌓는다. ‘또 다른 발리’라는 이름 대신 롬복 그 자체에 특별함을 더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노보텔 롬복 리조트 앤 빌라 바로 사삭의 전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삭 여인들이 손으로 직접 만든 공예품 등도 판매한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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