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은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이 시장의 대선 레이스 최대 걸림돌로 예견돼 온 ‘김경준’씨가 6월 중순께 송환될 것이라는 무성한 소문 때문이다. 김씨의 소환설은 사정·정보기관을 중심으로 지난달부터 흘러나왔다. 현지에 파견된 검찰 한 관계자 역시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씨의 송환이 임박했음을 밝혔다.

김씨는 500억원대의 사기 및 횡령 혐의로 현재 LA연방법원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인물이다. 또 이 시장과 관련된 사건 등 세 건의 민사소송에도 연루돼 있다. 언뜻 보기에 이 시장은 피해자인 듯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한 때 ‘동업자’였다는 점에서 김씨의 소환은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 정치권에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김씨가 송환되면 검찰의 수사도 재개될 전망이다. 김씨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계류 중이다.






현재 미 LA민사법원에는 김씨를 상대로 한 세 건의 민사소송이 진행중이다. 2003년 5월30일 (주)다스사가 제기한 140억원대 투자금 반환소송과 2004년 2월27일 이 시장의 법정 대리인 김백준씨가 제기한 100억원대 투자금 반환 및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소송, 그리고 2004년 6월1일 옵셔널캐피털(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후신)의 횡령 등으로 인한 380억원대 회사자금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이 그것이다. 무려 550억원대에 달하는 세 건의 소송.

김씨의 ‘입’에 정치권 긴장

하지만 LA연방법원의 재판과정에서 김씨는 “이 시장의 정치게임에 놀아났다”고 자신의 혐의를 부인해 왔다. 때문에 수 백억원대의 횡령사건에 등장하는 이 시장과 김씨, 또 몇몇 회사들과의 얽힌 관계가 김씨의 송환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검찰 주변의 관측이다. 또 ‘김경준 사건’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세 건의 소송이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 시장이 김씨의 소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데서 연유한다.서울시장 퇴임을 앞두고 막바지 정리에 들어간 이 시장은 내달을 기해 한나라당 유력 대권주자로서 긴 항해에 나서게 된다. 이와 동시에 검찰은 김시를 상대로 500억원대 사기사건에 얽힌 실타래를 풀어 헤칠 것이다. 그런데 2000~2001년 당시 김씨와 이 시장 사이에 고구마 덩굴처럼 얽혀 있는 행적엔 여전히 의혹이 남아 있다. 혹시, 이 시장이 김씨와의 법정싸움에서 승소하더라도, ‘구설수’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 정치권에서 김씨의 ‘입’에 주목하는 이유다. 그

렇다면 유력 대권주자인 이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김씨는 누구일까. 김씨는 재미교포 이민 1.5 세대로 알려져 있다. 코넬-시카고-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 이어지는 학력, 모건 스탠리 등 증권사 경력만으로도 그가 엘리트임이 한 눈에 들어온다. 김씨가 이 시장과 인연을 맺은 시기는 2000년 2월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 시장은 선거법 위반에 걸려,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 시장측에선 “미 명문대와 해외 주류 증권사 경력이라는 화려한 이력만으로도 김씨는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 시장이 김씨를 영입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부분과 관련, 일각에선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박스 기사 참조)

이명박 100억대 소송 진행중

두 사람은 사이버뱅크 투자증권회사 LKe-뱅크를 설립, 2000년 2월18일 공동대표로 취임했다. 이 때 두 번째 소송 법정 대리인인 전 현대종금 대표이사 김백준씨가 이사로 등재된다. 회사 설립 초기자본 30억원은 이 시장이 부담했다. 김씨는 2000년 6월15일 1차증자 과정에서 30억원을 부담했고, 하나은행이 ‘외부감사를 선임하고, 회계장부를 남겨놓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5억원을 투자했다. 두 차례의 증자를 거친 LKe-뱅크의 자본금은 6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여기서 두 번째 소송 사건이 발생한다. 이 시장과 동업을 시작할 무렵 김씨는 BBK캐피탈파트너스코리아(이하 BBK)의 대표이사였는데, 2001년 3월 금감원으로부터 김씨가 조사를 받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결별 수순을 밟게 된다. 금감원은 김씨가 BBK 대표 시절 역외펀드 운용보고서 허위기재, 자금유용 등의 혐의로 대표이사 해임권고 및 등록취소 처분을 내렸다.

이 시장과 김씨는 2001년 4월18일 LKe-뱅크 대표이사직에서 동시 사임했다. 이 시장은 하나은행측이 2001년 9월경 투자금 반환을 요청하자 이듬해 5월 5억원을 반환키로 했다. 따라서 자신의 투자금 30억원에 하나은행건 발생 피해액 5억원, 김씨가 LKe-뱅크 계좌를 자금세탁에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액 65억원 등을 포함해 100억원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김씨가 불러올 파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첫 번째 사건에 등장하는 (주)다스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대부기공의 후신인 다스는 이 시장의 친형인 이상은씨가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고, 최대주주는 이 시장의 처남 김재정씨다.

이명박 친형도 거액 투자

당시 자본금 29억8,000만원이었던 다스는 2000년 3월부터 12월까지 김씨가 대표이사로 근무하고 있었던 BBK와 무려 190억원의 ‘장기투자 일임계약’을 체결했다. LKe-뱅크가 설립된 지 한달이 지나서다. 이후 BBK는 김씨를 해임시켰고, 다스는 투자금 190억원 가운데 50억원만 회수하게 된다. 이 사건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다스가 김씨에게 투자할 당시 이 시장과 김씨가 LKe-뱅크를 매개로 한 동업자 관계였다는 데 있다.

이 시장이 다스가 김씨에게 투자한 ‘배경’이 아니냐는 의혹이 남는 대목이다. 이러한 의혹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이 시장과 김씨가 연관된 또 다른 사건이 다스 사건 이전 불거졌기 때문이다. 2001년 11월7일, 이 시장과 김씨가 사기혐의로 검찰에 고소된 사건이 있었다. 코스닥 등록기업인 심텍을 상대로 50억원대의 투자사기를 벌였다는 혐의다.

당시 심텍은 김씨가 BBK 대표이사 시절인 2000년 말 심텍과 일임자문 계약을 맺고 50억원의 투자자금을 유치한 뒤 2001년 4월 BBK가 등록 취소된 이후 20억원만 돌려주고 원금과 수익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12월7일 검찰에 긴급 체포됐고, 그는 이달 20일 도미했다.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당시 심텍의 주장이다. “BBK가 자금을 유치할 때 이명박 전의원과 김씨를 각각 회장과 사장으로 명기한 자료를 제시한 만큼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

이는 BBK와 법적으로 무관한 이 시장까지 고소한 이유이기도 하다. 심텍은 이 시장 소유의 서초동 부동산도 가압류했으며, 검찰은 이 시장의 혐의가 드러날 경우 소환 대상임을 밝혔다. 당시 LKe-뱅크의 실패로 모든 대외활동을 접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던 이 시장은 “돈 문제는 심텍과 BBK간의 일이며 본인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했다. 자신이 설립한 LKe-뱅크에 김씨가 지분을 출자하면서 알게 됐을 뿐이라는 것. 하지만, 심텍의 주장은 달랐다.

애초부터 이 시장을 보고 맡겼으며, 2000년 9월 자사 직원이 BBK를 방문, 투자를 결정하는 자리에도 이 시장이 동석했다고 주장했다. 200억원대 횡령 후 도미
어쨌든, 양측의 팽팽한 설전이 벌어졌음에도 ‘이명박 사기 소송건’은 더 이상 불거지지 않았다. 원금과 수익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심텍측이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다스 사건과 심텍 사건은 액수의 차이만 있을 뿐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사건이었음에도 말이다.

물론 다스 소송건과 관련, 다스측과 이 시장측은 다스 경영진의 결정이었을 뿐 이 시장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다. 한 마디로 김씨에게 속았다는 것. 반면 김씨측은 두 개의 소송과 관련 “이 시장이 은근슬쩍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반대의 주장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이 시장과 김씨. 과연 진실은 어느 쪽에 가까운 걸까.

한편, 나머지 소송건은 이 시장과 김씨의 법정 공방의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이 시장과 결별한 김씨는 2001년 4월27일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이하 옵셔널코리아)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된다. 옵셔널코리아의 모회사는 LA 소재 옵셔널벤처스. 옵셔널벤처스가 뉴비전벤처(구 광은창투)를 인수, 옵셔널코리아로 리모델링 하면서 김씨가 관여하게 된다.

당시 김씨는 ‘차익 거래의 귀재’로 통했다. 이후 옵셔널코리아는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발행주식을 늘렸고, 설립 초기 1,600만주에 불과했던 주식은 무려 1억5,000만주로 늘었다. 190억원의 자본금은 6개월만에 870억원대로 뛰었다. 여기가 세 번째 소송 사건의 발생 대목이다. 2001년 9월, 주주총회에서 김씨의 대표이사 사임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무려 190억원을 투자한 것처럼 꾸며, 자금을 빼돌린 후 2001년 12월20일 출국해 버렸다는 게 옵셔널코리아측의 주장이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김씨의 사기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시기는 2002년 3월 옵셔널코리아 소액주주 27명의 고소장이 접수된 때부터다. 이후 옵셔널코리아의 후신 옵셔널캐피털측은 김씨가 380억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LA민사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 김경준-이명박 만남에서 동업까지김씨 친누나 미모의 재미 변호사 가교역할설

동업자에서 출발해 100억원대 사기사건을 두고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김경준씨와의 관계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현대건설 CEO를 거쳐 정치권에 입문한 이 시장의 평소 까다롭기로 소문난 인사 스타일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의문점의 중심에 선 인물이 김씨의 누나 에리카 김 변호사다. 에리카 김은 2001년 4월 옵셔널벤처스의 3년 임기의 사외이사로 등재되기도 했으며, 법률자문 역할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1966년생인 김씨보다 두 살이 많은 에리카 김이 자신의 동생인 김씨를 이 시장에게 소개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시장과 김씨가 LKe-뱅크를 설립한 무렵인 2000년 2월이 아닌 그보다 훨씬 앞서 돈독한 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10여년 전 에리카 김이 국내에서 출간한 <재미 변호사 에리카 김의 라이프 스토리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자서전 격 에세이집의 출판기념회장이다. 95년 10월11일 서울 힐튼호텔, 에리카 김의 출판기념회장에선 한국의 유력 정치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 시장은 에리카 김과 함께 축하 케이크를 잘랐고, 그 장면이 TV 한 프로그램에 방영되기도 했다.

에리카 김은 초등학교 때인 지난 74년 미국으로 이민, 코넬대 정치학과, UCLA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27세의 젊은 나이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유명인사로서, 뛰어난 미모로 인해 당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인물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