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사태’ 이후 ‘정치인 출신’ 발목···변덕스러운 대입 개편 발언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시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해 102일 취임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고 유치원 3(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여론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또 유 부총리는 기세를 몰아 다른 국정과제들에 대해서도 당청 간 협의를 주도해 적절한 균형감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국사태이후부터 정치인 출신이라는 이력이 유 부총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입 불공정성 논란이 거셌던 조국사태가 번지고 유 부총리가 여러 차례 대입 개편 관련 발언을 수정하면서 체면을 구긴 것이다. 그동안 정부여당과 호흡을 맞춰온 진보 교육감들마저 교육부 패싱(배제)’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면서 한 지붕 두 목소리가 나오는 형국이다.

한 지붕 두 목소리교육부···유은혜, 교육수장 자질론대두

1년 전인 지난해 1012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은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유치원비로 성인용품이나 명품 가방을 구매했다는 등의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폭로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을 접한 국민들은 분노했으며,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에 대한 엄단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시 전국 사립유치원 80%가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한유총은 국민의 분노에 사과를 하며 잠시 머리를 숙이는 듯 했으나, 곧바로 개학 연기, 집단 폐원 등을 내세워 정부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20여 년간 지속해 왔듯이 당시에도 아이들을 볼모로 정부에 타협을 요구한 셈이다.

그러나 같은 해 102일 취임한 유 부총리는 한유총의 요구를 거절했다. 지난 20여 년간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교육부가 한유총과 대화에 나섰던 것과 달리 단호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한유총과 대화 대신 일선 시도 교육청과 손을 잡고 감사고발에 나섰다. 심지어 한유총의 개학 연기와 집단 폐업을 담합으로 규정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지원군으로 끌여들였다.

이미지 추락 배경은?

이후 청와대와 민주당의 지원사격을 받아 유치원 3법 제정을 추진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이 되자 유아교육법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을 개정,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을 모든 사립유치원에 적용하도록 했다.

이 같은 교육부의 전방위적 압박으로 한유총은 결국 6개월여 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이 때문에 교육계 안팎에서는 유 부총리에 대해 정치인 출신 장관이라 확실히 다르다. 기존 교육부 관료들의 생각경향이나 문법으로는 한유총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유 부총리는 기세를 몰아 다른 국정과제들에 대해서도 당청 간 협의를 주도했다. 대표 격은 고교무상교육 조기 시행이다. 당초 내년 1학기 시행 예정이었으나, 올해 2학기로 한 학기 앞당겼다. 최근 국회에서도 고교무상교육 근거를 마련하는 법이 통과됐다.

유 부총리는 지난 8월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 재지정평가와 관련해서도 균형감각을 보였다. 기준점수에 미달했던 11개교 중 논란이 컸던 전북 상산고만 부동의 결정을 하면서 정책 추진방향, 여론 모두 만족시키는 결과를 도출해 낸 것이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의 대학입시 특혜 의혹이 제기된 후부터 정치인 출신이라는 이력이 유 부총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조국사태로 인해 대입 불공정성 논란이 거셌던 지난 9~10월 유 부총리는 여러 차례 대입 개편과 관련한 발언을 수정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이 때문에 교육계 안팎에서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찬반 논란이 가장 첨예한 대입정책을 수립하면서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철학이나 소신 없이 단순히 대통령 요구에 따라 바꾸는 것은 교육부 수장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 전 장관 임명 전인 지난 91일 대입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했을 때만 해도 유 부총리는 정치 확대는 대단한 오해라며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개선으로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을 임명하고 대입개편과 자사고특목고 폐지 등 고교서열화 해소를 주문하자 학종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비교과 영역 폐지, 자사고특목고를 일괄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교육부장관은 대통령 아바타

지난달 14일 조 전 장관 사퇴이후에도 대입개편 관련 발언은 변덕스러웠다. 유 부총리는 지난달 21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정시 확대는 없다고 말했으나, 다음 날인 22일 문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정시 확대를 언급하자 서울 주요 대학 위주로 정시를 확대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한 국립대 교수는 정치적으로 생존해 내년도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려면 문 대통령 발언을 따르는 게 최선이었을 것이라면서도 고도의 전문성과 신념, 조정 능력을 필요로 하는 대입정책에서 결국은 대통령을 설득해 내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양상은 이전 교육부장관과 청와대의 관계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지난해 교육행정학연구에 게재한 대통령 내각운영 유형과 장관 임명 배경에 따른 교육부장관 리더십 사례 연구자료를 통해 역대 한국 대통령들이 교육부장관은 아바타처럼 여긴다고 일갈했다.

그는 또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는 한국의 대통령들은 교육부장관을 자신의 아바타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직을 유지하고자 하는 아바타는 자율조정시스템을 중지시키고 조정에 응해야 한다. 아바타가 조정에 따르지 않으면 폐기 경고가 들어오게 되고, 그러다가 순간 스위치가 꺼진다고 했다.그러면서 국민들은 교육부장관이 대통령 아바타가 아니라 자율적인 존재로 착각해 아바타를 공격하면서 교체를 요구하고, 대통령은 그를 희생제물로 활용하면서 위기를 넘겨 왔다고 강조했다.

이런 비판은 교육부 폐지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전 정부 당시 중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교육부 무용론폐지론이 제기됐다. 그러나 교육부 입장에서는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에 나오고 있는 교육부 무용론폐지론은 그때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큰 문제다. 정치적 영향력 차단을 위해 중장기 교육거버넌스인 국가교육위원회설립을 공약했던 문 대통령과 교육부가 오히려 교육과정 전체를 뒤흔들 대입개편을 추진하는 모습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여당과 호흡을 맞춰 왔던 진보 교육감들마저 교육부 패싱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상태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소속 대입제도개선연구단은 지난 4일 정기총회에서 자체 대입개선안을 발표하며 향후 정책연구에서 정치적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 교육부를 배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신 4년제 대학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파트너십을 맺을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교육부 안팎에서는 유 부총리가 문 대통령의 뜻대로 대입개편을 결정하면 과실과 역사적 평가 등을 유 부총리가 떠안게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교육부 수장으로서 유 부총리의 용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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