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를 하면서 상대방의 동의를 받았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가 있나요?”

수사관의 질문에 의뢰인은 잠깐 머뭇거리다 옆에 앉아있는 필자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입을 연다. “그 상황 자체를 입증할 증거는 없는데⋯ 그날 아무 문제없이 성관계가 있었고, 그 뒤로도 계속 만났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변호사를 통해서 자료를 제출하겠습니다.”

성범죄 사건들을 맡다 보면, 가끔 억울하게 고소되어 피의자로 특정된 의뢰인들이 있다.

예를 들면 과거 연인 사이로 지내며 문제없이 성관계를 가졌던 상대방이, 헤어진 후 갑자기 여태까지 있었던 성관계 전부 또는 일부가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고소를 하는 경우나, 혹은 사귀던 당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관계를 한 적이 있는데, 심신상실 상태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고소하는 경우들이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고소를 당한 의뢰인들은 과거에 형사사건으로 조사를 받아본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필자는 미리 의뢰인들에게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질문들이 예상되는지 알려주는데,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해서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답하라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당시 있었던 일을 진술하다가 갑자기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내가 직접 증거를 찾아 제출해야하나?’, ‘성관계를 어떻게 했는지 증거가 없는데, 그럼 처벌을 받게 되는건가’ 하는 걱정에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연인들이 둘만의 은밀한 시간을 보내면서 그때 상황을 녹음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고, 이를 목격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더더욱 상정하기 힘들다. 그래서 만약 당시의 정상적인 성관계에 대해 강간이나 준강간 범죄가 있었다는 내용으로 고소를 당하게 되면, 직접적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찾기 힘들고 이 점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 억지로 성관계를 한 것도 아니니까 내가 증거를 내지 않더라도 수사기관에서 진실을 잘 판단해 주겠지’ 생각하며, 어떠한 자료도 확보하지 않은 채 그저 손 놓고 있는 것도 위험하다. 범죄혐의에 대한 입증은 수사기관의 몫이라 하더라도 성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 상황에서 고소인의 진술이 쉽게 배척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변호사다. 변호사는 당시 상황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자료들을 수집하여 검토하고, 이를 종합해 두 사람 사이의 성관계가 서로의 동의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꼼꼼하게 주장한다. 의뢰인 혼자서 진행했다면 막연하게만 보일 수 있는 진술에다 근거를 제시하며 보강하고 실제 사실관계가 더욱 명확하게 보여질 수 있도록 하여 의뢰인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조사를 마치면 필자는 의뢰인에게 진술을 잘 마쳤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달랜 후, 몇 가지 필요한 자료들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변호사가 자료들을 검토하고 의견을 정리하여 제출할 것이라고 말한다.

억울하게 고소되었다 할지라도 성범죄 사건에서 실제 사실관계를 밝혀내 혐의를 벗는 것은 쉽지 않다. 사건 특성상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되면 어떤 자료를 수집하여 제출하고, 어떻게 주장을 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 역시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억울하게 고소된 상황일수록 변호사의 도움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