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 선거법을 손질합니다. 선거에서 선출할 의석수와 지역구 경계를 재조정하기도 하고 아예 선출방식을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서는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안이 신속처리 안건으로 올라 있습니다. 이 법안을 처리할지 말지를 두고 각 당의 계산이 복잡합니다. 연말에 또 한 차례 격렬하게 부닥칠 것으로 보입니다.

선거법을 개정해서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나면 각 당은 새 인물 찾기에 나섭니다. 선거에 누구를 내세울 것인가는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정치는 잘해도 욕을 먹고 못해도 욕을 먹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까지 말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욕을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닌데 선거 때는 욕을 먹으면 선거에서 지기 때문에 각 당은 유권자가 욕이 아닌 기대를 품을 새 인물을 찾습니다.

게임의 규칙이 만들어지고 선거에 내세울 인물도 준비가 되면 각 당과 출마 희망자들은 지역을 공략할 정책공약을 준비합니다. 사실 이런 과정은 동시에 진행이 됩니다. 그래서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는 5일장 첫 날 오후처럼 어수선합니다. 내가 출마할 지역구의 존폐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고 혹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날 수도 있어 경계를 늦출 수 없습니다. 각 당과 후보자들은 사방으로 신경을 분산한 채 유권자를 유혹할 공약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나마 당에 소속된 후보들은 조직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요 정당들은 역대 선거를 치르면서 꾸준히 지역별로 현안사업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해 놓고 있습니다. 후보들은 이런 데이터를 참고하고 지난 선거에서 다른 후보가 내세웠던 공약도 참고합니다. 출마 지역에 연고나 조직이 있는 후보는 주민들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게 더 쉽습니다. 흔히 ‘준비된 인물’이라 자처할 만한 후보들은 각 동별로 주민들의 관심사와 현안사업을 훤히 꿰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지역을 다지고 출마하는 후보들은 축적된 인맥과 경험이 활용해서 유권자를 공략할 수 있는 빈틈없는 공약을 내놓습니다. 지역을 동별로 쪼개고, 유권자를 동호회나 이해관계별로 세분해서 그물을 짜듯 공약을 짭니다. 단 한 명의 유권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욕이 충만해지다 보면 국정을 다루는 국회의원 공약이 지방의회의 시의원 공약과 구별이 안 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일단 이기고 보자는 각오로 당선되고 나서 어떻게 할지는 제쳐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 기반 없이 명망과 인기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후보는 베끼기에 충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지역공약을 충실하게 준비할 시간을 두고 낙하산을 타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의 공약을 훔치거나 형식적인 공약에 그칩니다. 여의도에서 영업하는 정치 컨설턴트들 중에는 어떤 후보를 컨설팅하면서 한 시간 만에 공약 만들어 줬다고 무용담을 자랑하는 것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후보는 공약은 신경 끄고 자신의 명성, 대중적 인기로 유권자를 공략합니다.

당선되고 나면 공약을 실행하기 위한 뒤치다꺼리에 분주해집니다. 요즘은 매니페스토 운동과 같은 유권자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공약 수행 여부에 대한 감시도 잘 이루어지는 편입니다만, 공약이 공수표가 되는 사례도 끊이지 않습니다. 공약이 실행 가능성보다 유권자의 표를 구걸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심리가 실현 가능성 없는 사업도 앞뒤 가리지 않고 공약으로 채택하게 만들고 결국 공수표로 이어집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후보자와 일면식도 없습니다. 경력만 보고 명성만 보고 정당만 보고 표를 주기에는 당선되면 차지하게 될 권한이 너무 크기 때문에 유권자는 후보자와 공약으로라도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공약은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하고 달성 가능해야 합니다. 후보자는 유권자와 계약하는 공약에 대해 책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다른 수단이 없습니다. 공약을 성실하게 달성하지 못한 사람과는 계약을 파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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