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불법 대선 자금 수사결과 발표와 함께 9개월 동안의 ‘대장정’을 마친 안대희 검사장. ‘살아있는 권력’에 ‘사정’의 칼을 댄 이후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숨가쁘게 달려왔던 그는, 조만간 단행될 예정인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영전이 점쳐진다. ‘검찰의 꽃’인 서울중앙지검장뿐 아니라 법무차관, 부산고검장 자리에 이름이 유력하게 오르내리고 있는 상태.그러나 검찰주변에서는 안검사장만큼 불운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나온다. 검찰권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을 때 그는 한직을 떠돌며 울분을 삭여야 했다는 것. 20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25세에 검찰에 입문한 그가 밟아왔던 길을 돌아보자.올해 초 대통령 탄핵사태와 맞물려 헌법재판소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긴 했지만, 뭐니뭐니해도 지난해에 이어 현재까지도 세인의 주목을 받는 곳은 역시 대검 중수부.

특히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의 실질적인 사령탑인 안대희 검사장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남다르다.사상 처음으로 정치권과 기업들 간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관행에 사정의 칼날을 댄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컸고, ‘살아있는 권력’인 노무현 대통령 선거 캠프의 불법 자금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실 안검사장은 손꼽히는 ‘특수수사통’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만 20세에 사법시험에 합격, 25세에 최연소 검사가 됐다. 제17회 사법시험 합격자, 즉 사법연수원 7기인 그는 쟁쟁한 동기들 가운데 특수수사 쪽으로 실력을 발휘했다. 초임 검사이던 80년대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저질 연탄’ 사건을 수사했고, 93년 인천지검과 부산지검 특수부장을 거쳐 대검 중수부 수사과장과 서울지검 특수부장을 두루 거친 특수검사의 전형. 그러나 ‘너무 잘드는 칼’이라는 촌평도 든는다.

‘한 번 잡은 고기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대형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쳐 왔다. 오죽하면 “수사만 시작하면 부모도 몰라볼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왔을까.이 때문에 검찰주변에서는 안 중수부장만큼 불운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나온다. 검찰권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을 때 그는 한직을 떠돌며 울분을 삭여야 했다는 것. 실제 서울지검 특수부장 때 설계 용역 비리 수사 등으로 DJ 정부 실력자들의 스폰서들까지 건드려 지난 정권 내내 한직을 맴돌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가 배치 받은 곳은 서울고검. 참여정부 들어 바뀌긴 했지만 서울고검이라는 곳은 승진 탈락자들이나 좌천된 사람들의 집합소였다. 지난 2000년 당시만 하더라도 검찰 내에서 알아주는 실력자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서울고검에 배치됐다. 당시 면면을 보면 서울고검 자체를 ‘드림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 때 안 중수부장을 비롯해 유성수 대검 감찰부장, 조승식 대검 강력부장, 신건수 서울고검 공판부장 등 각 분야에서 쟁쟁한 실력자들이 한꺼번에 서울고검의 평검사로 눌러 앉아 있었다. 어떤 검사는 서울고검의 평검사로만 2년 넘는 세월을 견뎌야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옷벗기 직전까지 갔다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사회생한 사람들이다. 결국 안 중수부장 역시 참여 정부 출범과 함께 중수부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뒤 나라종금 로비 의혹 재수사에 이어 현대·SK 비자금 수사 등 정치권의 ‘살아있는 권력’과 맞서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검찰은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 직전 대기업 등에서 800억원이 넘는 불법 자금을 모금한 사실을 밝혀냈다.이회창 전총재가 검찰 조사를 받고 김영일·최돈웅 의원 등이 줄줄이 구속된 끝에 한나라당은 ‘부패당’이란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차떼기’라는 유행어가 등장하면서 총선에서 제2당으로 전락하는 데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노 캠프 주변의 불법 자금에 대한 수사도 거침없이 진행됐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필두로 안희정·여택수씨 등 최측근들이 잇따라 구속되거나 재판에 회부됐다. 정대철·이상수 의원 등 참여정부 인사들도 줄줄이 범법자로 전락했다.특히 노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내몬 탄핵안 가결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대선자금 수사였다는 분석이 많다. ‘정경유착의 고리 끊기’와 ‘돈 안 드는 선거 풍토 조성’은 이번 수사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또 이번 수사를 통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불법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이뤄진 정치자금 모금 및 사용 실태가 밝혀짐으로써 정치권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근절하려는 자정 노력이 나타났고 제도적 기틀도 어느 정도 마련됐다.지난 4·15 총선이 그 어느 때보다 돈 선거 풍조가 확연히 줄어든 데는 대선자금 수사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그래서 중수부를 ‘대한민국 구조조정본부’라고 하는 말도 나왔다.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검사장에겐 ‘송짱’, ‘안짱’이란 애칭도 붙여졌다. 수사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안 중수부장은 “아쉬운 점도 있지만 (검찰이) 일치단결해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며 “완벽한 수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비판은 달게 받겠지만 부끄러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약력>1955년 3월 31일 경남 함안 출생 ▲부인과 1남1녀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학과 ▲1975년 17회 사법시험 합격(당시 최연소 합격) ▲서울지방검철창 검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학수사과장 ▲대검찰청 중수3·1과장 ▲서울지방검찰청 특수3·2·1부장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장 ▲2002년 8월 검사장(부산고등검찰청 차장) ▲2003년 3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불법 대선자금 수사 일지>2003.8~10=손길승 SK 회장 등 조사 10.16=최도술씨 구속 12.10=서정우씨 구속 12.14=안희정씨 구속 12.15=이회창 전 총재 검찰 자진 출두 2004.1.11=김영일 의원 구속 1.12=최돈웅 의원 구속 1.27~29=서청원 의원 등 4명 구속 4.8~5.17=이중근 부영 회장 등 기업인사법처리 5.19=이인제 의원 구속 5.20=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불구속 기소 5.21=최종 수사 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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