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경제→안보…‘출구’ 없는 한일 갈등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한·미·일 사이 가장 뜨거운 현안은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문제다. 이에 대해 세 나라가 각자 다른 셈법을 내놓으면서 지소미아 종료 여부가 주목된다. 지난 2016년 11월23일 체결한 지소미아는 다른 협정과 달리 유효기간이 1년에 불과하다. 이에 지소미아 존속 여부는 이달 23일 가려지므로 한미일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요서울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불거진 한일 관계의 현재 상황을 살피고, 지소미아 종료 여부가 향후 한일 외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대해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와 문재인 대통령(오) [뉴시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와 문재인 대통령(오) [뉴시스]

-호사카 교수 “日, 소극적 협상 ‘기브 앤 테이크’ 하고 싶지 않아서”
-이성권 전 의원 “‘지소미아 종료’ 해결 안 되면 韓日 강대강 국면”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한·미·일 모두 본격적인 협상의 물꼬를 트는 모양새다.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지난 15일 도쿄에서 다키자키 시게키(滝崎成樹)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한일 국장급 협의를 개최하고 최근 한일 관계 현안을 다뤘다.

앞서 양측은 지난달 16일 서울에서 국장급 협의를 가졌으나 당시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한 의견 교환은 전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명분 없는 철회 안 돼” vs “한미 동맹 관계 염두에 둬야”

청와대는 당초 밝혔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밀고 나간다는 입장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우리도 피치 못하게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했기 때문에, 수출규제 문제라든지 한일 간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 지금 와서 무작정 지소미아 종료를 번복하는 것은 당시 결정이 신중하지 않았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이 방위비 부담금과 더불어 지소미아 연장에 대해 압박하고 있지만 이와 무관하게 일본의 태도가 없는 이상 입장을 달리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치권에서도 정부가 첫 입장을 그대로 견지할 것이라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입장의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며 “우리 정부가 한번 천명한 입장을 명분 없이 섣불리 철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면서 당분간 ‘버티기’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김 의원은 “가해자(일본)가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섣불리 해법을 제시한다면 자칫 말려들 우려가 있고, 온당하지도 않다”며 “일본 정부가 과거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 수준 정도의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는 단호하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달리 주(州)고베대한민국총영사관 총영사와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낸 이성권 전 의원은 “지소미아는 군사기술적으로 본다면 한일 양국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종료되면) 서로가 반쪽자리 정보만 갖게 돼 북한의 미사일에 대해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한국은 발사 지점과 항로의 초반 부분 포착은 용이한 반면 낙하지점은 포착이 어렵다. 반면 일본은 발사 지점 포착은 어렵지만 항로 진행 과정과 낙하지점을 포착할 수 있다. 그러니 양국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 북한 미사일의 발사 지점과 비행 과정, 낙하지점 등 모든 경로를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전 의원은 “이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한미 동맹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처음 지소미아가 체결된 계기는 한일의 요청이었다기보다 미국의 요청에 의해 맺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니 지금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한국 정부와 접촉해 지소미아를 연장하라고 요구하는 것 아니냐”며 “미국 측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인데, 한일 간의 역사 문제나 무역 전쟁 등 경제 문제를 지소미아까지 연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지소미아 종료, 일본 수출 규제 해결책 아냐”

일본은 지소미아 연장과 관련,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보다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우려한다’ 또는 ‘지소미아 연장을 희망한다’ 수준의 원론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지난 14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 미국 측에서 매우 강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는 “지소미아가 필요한 것은 일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몇 번이나 감지하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지소미아가 제일 필요한 국가는 일본이고, 그 다음에는 미일 군사동맹을 중요시하는 미국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일본이 ‘관망자’ 태도로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 것인지 묻자 호사카 교수는 “일본이 지속적으로 (지소미아 연장을) 해 달라고 할 경우 (일본 역시) 한국에게 무언가 해 줘야 한다”며 “일본은 지금 ‘기브 앤 테이크(Give&Take)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인 거다. 미국을 등에 업고 한국에 압력만 가해 지소미아를 연장하고 싶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소미아가 종료된다면) 일본이 받을 타격은 아주 클 것이다. 일본은 상당히 당황할 것”이라며 “일본 측은 지금 ‘한국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제스처를 우회적으로 취하고 있다”고 관측했다.

이와 달리 이 전 의원은 오히려 ‘일본이 여유 있는 상황’이라고 바라봤다. 그는 “일본은 지소미아 종료 부분에 있어 관망하고 있다”며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입장인 반면, 한국은 미국이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해 답답한 상황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이 전 의원은 우리나라가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한 이유로 첫 번째는 이것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수출규제 조치 번복을 끌어내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미국에게 일본을 압박하는 ‘중재자’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 전 의원은 “지소미아 종료 문제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해결하는 데 크게 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강대강 대결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 “한일 관계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그러나 지소미아 종료는) 돌아갈 수 있는 배를 없애는 꼴”이라며 “서로 간에 다시 한 번 대화할 수 있는 계기 자체를 없애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일 관계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다만 아직까지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의견이다. 이 전 의원은 “현 정부의 대북·대외·외교 정책 등을 살펴보면 지소미아가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그런데 미국 측의 (지소미아 연장) 압박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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