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석 위험’에도 ‘인생샷’에 목숨 거는 사람들

갯깍주상절리에 줄 서있는 관광객들 [사진=황기현 기자]
갯깍주상절리에 줄 서있는 관광객들 [사진=황기현 기자]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어느 순간 우리의 삶을 바꿔 놨다. 사진을 촬영, 인화해 가족 혹은 가까운 친구들과 나누던 예전과는 다르게, 열린 공간에 사진을 게재하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SNS를 통하면 지구 반대편 사람도 자신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소통’이 자유로워진 세상이 오며 일명 ‘인생샷’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인생샷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 나온 사진을 뜻하는 신조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인생샷 촬영에 매진한 나머지 위험을 무릅쓰거나 위법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점이다. ‘인생샷 명소’지만 낙석 위험으로 폐쇄된 제주 올레8코스 역시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폐쇄 안내문 ‘유명무실’·“관리인 상주해야” 지적도
갯깍주상절리 내부에는 안전장치 전무

지난 10일 제주도 서귀포시 색달동 인근. 한 해안가에 차량이 빽빽하게 주차돼 있었다. 특별한 관광지는 없어 보이는 해안가가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은 단 한 곳, ‘갯깍주상절리대’ 때문이었다. 주상절리는 지표로 분출한 용암이 식을 때 수축작용에 의해 수직의 돌기둥 모양으로 갈라진 틈(절리)을 뜻한다. 이 같은 주상절리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들 중 하나로, 섬 전역에 걸쳐 약 18개가 분포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갯깍주상절리는 이른바 인생샷 명소로 인기가 높다. 주상절리 내부에서 외부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면 인물의 실루엣만 절묘하게 찍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을 보정 앱 등으로 조금만 다듬으면 마치 우주로 향하는 통로인 듯 착각을 일으키는 작품이 완성된다.
이 때문에 이날도 객깟주상절리 인근은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문제는 객깟주상절리로 향하는 길이 현재 폐쇄된 상태라는 점이다. 주차장부터 갯깍주상절리까지의 길은 제주올레 제8코스에 해당하는 ‘해병대길’이다. 해병대길이라는 이름은 지난 2008년 3월 올레길 조성 당시 환경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기계나 장비의 힘없이 지역 해군 장병이 손으로 길을 내 붙여졌다. 서귀포시 월평마을 아왜낭목에서 대평포구까지 15.2㎞에 해당하는 코스다. 하지만 주상절리대의 낙석 위험성 등이 잇따라 지적되며 길은 지난 2010년 폐쇄됐다. 올레길을 둘러보려는 사람들과 관광 수입을 기대하는 지역민들이 꾸준히 개방을 요구해오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입장이 불가능하다.
길 입구에는 ‘낙석위험으로 구간 폐쇄 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논짓물-예래동-중문관광단지입구-하얏트호텔정문’으로 이어지는 우회 구간 안내가 돼 있었다. 입장을 막기 위한 라인도 쳐져 있었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거리낌 없이 라인을 넘어 갯깍주상절리대로 향했다.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얼핏 봐도 수십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고 있었고, 이미 사진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기자 역시 갯깍주상절리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은 돌을 얼기설기 쌓아 만들어 전진하기 쉽지 않았다. 길옆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우뚝 솟아있었다. 낙석 위험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1시간’ 기다려야 겨우 촬영

길을 따라 10여분을 걷자 갯깍주상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상절리에는 사진 촬영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50여명 안팎이었다. 촬영하는 데 걸린 시간을 묻자 관광객 A(22·여)씨는 “50분 정도는 기다린 것 같다”고 대답했다. 사진이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는 “SNS에서 본 것처럼 예쁘진 않은 것 같다”면서도 “SNS 사진은 촬영하고 보정까지 한 사진이라고 해서 아직 기대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줄의 맨 끝에 서 있던 관광객 B(27·남)씨와 C(25·여)씨는 “제주 여행 계획을 세우던 중 SNS에서 이 곳을 발견했다”고 갯깍주상절리를 찾아오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커플 사진을 찍고 싶어 왔다”면서 “도착 전까지 폐쇄된 길이라는 건 몰랐다. 사람들이 다 들어 가길래 따라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갯깍주상절리에는 한국인 뿐 아니라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도 있었다. 이들 역시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위를 올려다본 순간 낙석 위험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갯깍주상절리의 천장에 붙어있는 돌 조각들이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더욱이 갯깍주상절리 천장부터 관광객들이 줄 서있는 바닥 사이에는 그물 등 안전장치가 전무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별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한 번의 사고가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사진을 촬영하고 돌아온 D(26·여)씨도 “사진을 찍고 싶어 오긴 했는데 솔직히 위험하긴 한 것 같다”며 “울퉁불퉁한 길도 그렇고, 주상절리 안에서 기다릴 때는 조금 불안했다”고 전했다.

제주시 “맨 처음에는 통행 아예 막았었는데…”

제주시 측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제주시 관광진흥과 관계자는 갯깍주상절리를 포함한 제주올레 제8코스의 통제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SNS에서 핫 하다고 하면 그(갯깍주상절리) 안쪽으로 들어가시는 분들이 많은 거냐”고 반문했다. 기자가 40분 안팎의 대기 시간을 감수하고도 관광객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고 설명하자 “저희가 그쪽은 맨 처음에 통행이 안 되게 막았었다”면서 “마을회 쪽에서 통행을 아예 안 되게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안내문을 다시 부착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낙석 위험이 있어서 우회하도록 (안내) 하고 있다”며 “따로 아예 폐쇄조치 하거나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 부서, 마을회 쪽과 의견을 나눈 뒤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 당장은 답변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SNS 파급력’으로 늘어날 관광객들…“대책 마련해야”

갯깍주상절리를 포함한 제주올레 제8코스는 꾸준히 여행 관련 SNS 페이지 등에 소개되고 있다.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이 점점 늘어날 것은 자명한 상황이다. 언제까지 낙석 위험 구간을 ‘비공식적’ 개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전 점검을 통해 현재 상황을 파악한 뒤 안전 장치를 마련해 관광객들이 드나들 수 있게 조치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아예 폐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안전에 ‘적당히’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최고의 ‘핫플’로 떠오른 갯깍주상절리에 대해 제주도가 결정을 내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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