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한식당 대표 “돈 요구했다” 폭로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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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프랑스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 사에서 발간하는 여행안내서 미쉐린 가이드는 ‘미식가들의 성서’로 불린다. 발간 초기 프랑스를 여행하는 운전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자는 취지로 무료 배포되던 미쉐린 가이드는 차츰 인기를 얻으며 1922년 유료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엄격한 심사 기준과 신뢰도 있는 정보로 명성을 쌓아 그 자체로 세계 최고의 식당을 지칭하는 책자가 됐다. 미쉐린 가이드는 음식의 맛과 가격, 분위기, 서비스 등을 바탕으로 일정 숫자의 식당을 고른 뒤 뛰어난 식당에 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등급을 매긴다. 별을 세 개 받으면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식당’이라는 뜻이며, 별 두 개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이다. 별 하나의 경우에는 ‘요리가 특별히 훌륭한 식당’으로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곳은 언제나 손님으로 붐빈다.

‘컨설팅’ 명목으로 1년에 2억 가까이 요구했다”
미쉐린 “별점 돈 거래 의혹, 사실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던 미쉐린 가이드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주장이 나왔다. 미쉐린 가이드 측이 국내 한 한식당에 ‘별’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금전 등을 요구했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지난 14일 한식 레스토랑 ‘윤가명가’의 윤경숙 대표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난 2013년 미쉐린 가이드 측으로부터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에 입성할 예정이고, 거기에 맞는 3스타급 레스토랑을 오픈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윤 대표는 미쉐린 가이드의 제안에 맞춰 2014년 연말 전 매장을 오픈했다고 덧붙였다.
윤 대표는 “미쉐린의 고위급인 인스펙터 분들이 두 번 정도 오셨다”면서 “아시아 총괄과 관련 정보를 중간에서 전달해주시던 ‘싱어’라는 이름을 가진 분까지 1년에 평균 6번 정도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윤 대표에 따르면 미쉐린이 돈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후였다. 그는 “(미쉐린 가이드 측이) 신라호텔 라연, 광주요그룹의 가온이라는 곳이 컨설팅을 의뢰 받았고, 그들도 ‘스폰’을 해 줄 의사가 있다면서 아주 달콤한 제안을 받았다”면서 “너희들이 이런 식으로 하면 3스타를 받을 수 있겠지만, 다양성 있는 식당이 나오도록 컨설팅을 받으면 어떻겠느냐 라고 얘기했다”고 폭로했다.
전날 KBS 보도에 따르면 신라호텔의 라연과 광주요그룹의 가온, 비채나 등 3곳의 식당은 1년에 수천만 원 이상이 드는 미쉐린 측의 컨설팅을 받은 뒤 미쉐린 스타를 받았다고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윤 대표는 “미쉐린 가이드 측이 1년에 4만 달러(약 4660만 원)가 조금 넘는 컨설팅비에 더해 인스펙터들과 심사위원들이 올 때마다 그들의 체류비와 항공권, 숙박, 음식 먹는 값을 세 곳(라연, 가온, 윤가명가)이 나눠 지불해야 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예상 비용을 모두 합하면 매년 2억 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고 윤 대표는 덧붙였다.

“미쉐린 제안 거절하자 이름 빠져”

윤 대표는 어니스트 싱어씨가 제안한 컨설팅을 거절했다. 그러자 지난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이 처음 나올 때 윤가명가의 이름은 등재되지 않았다고 윤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미쉐린 가이드에는 1스타와 2스타, 3스타 외에도 ‘그 지역에 가볼 만한 레스토랑’의 이름이 들어간다”면서 “미쉐린 가이드에 윤가명가라는 레스토랑은 없는 존재가 됐다”고 토로했다. 당시 라연과 가온은 대한민국 식당으로는 유이(有二)하게 3스타를 받았다. 비채나 역시 1스타를 받았다.
윤 대표는 약 1년간 이번 일을 취재했다며 미쉐린 가이드의 이런 행태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윤 대표는 “동남아시아 쪽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며 “일본에서도 싱어씨의 컨설팅을 받은 곳들이 별을 달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아시아 쪽에만 미쉐린이 더 심하게 했구나, 아시아를 얼마나 우습게 보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분개했다.
또 윤 대표는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가 철저한 비밀 하에 이뤄진다는 주장도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쉐린 가이드는 신분을 숨긴 조사원이 해당 식당을 방문해 음식을 직접 먹어본 뒤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표는 “3스타급 레스토랑을 한국 입성에 맞춰 오픈해 달라고 요구한 것부터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전에 언제쯤 심사에 들어갈 것이고, 어디어디로부터 제안을 받았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윤 대표는 윤가명가 오픈 1년간 미쉐린 가이드 측에서 심사위원단 소속 사람이 언제쯤 식당에 방문한다는 정보도 사전에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된장과 고추장 등 한국 향신료가 주력이 되는 음식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폭로했다. 윤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미쉐린 가이드가 가진 권위에 흠이 가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쉐린 “우리의 최고 자산은 신뢰” 의혹 부인

미쉐린 측은 재빠르게 반박에 나섰다. 같은 날 미쉐린 글로벌 디렉터 그웬달 뿔레넥은 ‘미쉐린 가이드 2020’ 발표와 함께 “최근 미쉐린 별점을 위한 컨설팅 목적으로 돈을 받았다는 어니스트 싱어와 미쉐린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뿔레넥은 “(싱어는) 절대 우리 직원이 아니고, 그와 계약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며 “저희는 평가를 내릴 때 한 명의 평가원이 결정하지 않는다. 평가원은 돈을 내고 식사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가원은 익명으로 가서 여러 번 식사를 한다”면서 “미쉐린 가이드의 최고 자산은 신뢰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뿔레넥에 따르면 미쉐린 가이드는 요리의 재료와 퀄리티, 풍미의 완벽성,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 등을 총괄적으로 평가한다고. 평가원은 한국인 뿐 아니라 프랑스와 미국, 등 15개 국적 출신의 다양한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한다고 뿔레넥은 설명했다. 평가원이 온다는 것을 식당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2018년에도 관련 보도가 있어 내사를 했다”면서도 “정보가 샜다는 내사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3스타의 영예를 안은 라연과 가온의 컨설팅 의혹에 대해서는 “평가원들은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린다. 금전적 거래가 없었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다만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어니스트 싱어에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미쉐린 브랜드와 관련해 명확하지 않은 메시지가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며 “그 사람에 대해서는 법적조치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고 지켜보는 중”이라고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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