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국비 투입해 군수 소유지 정비

[사진=주민 B씨 제공]
[사진=주민 B씨 제공]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봉화군은 경상북도에 위치해 영주, 울진과 접하고 있다. 지난달을 기준으로 인구가 약 3만2300명 정도인 작은 군이다. 몇 년 전에는 영화 ‘워낭소리’가 촬영돼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봉화군의 군민들은 적지 않은 숫자가 농업에 종사한다. 이 정도의 설명이면 독자 대부분은 봉화군을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전형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봉화군은 내부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취임한 엄태항 군수가 세금으로 자신의 사업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엄 군수는 취임 당시 지역 주민들이 이익을 일부 공유하는 주민 참여형 태양광발전 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천명한 태양광발전 전도사다.

“혈세가 쌈짓돈이냐” 비판 나와
군 “응급복구 공사 시행한 것”

논란이 불거진 것은 지난 9월 초 태풍으로 산사태가 발생한 엄 군수 일가족 소유의 태양광발전단지 복구에 군 예산이 투입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봉화군 등에 따르면 군은 지난 9월 5일과 6일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링링’으로 산사태가 발생했던 명호면 관창리 야산의 태양광발전단지를 1억9000여 만 원의 예산을 들여 복구했다. 이곳에는 얼마 전까지 엄 군수가 대표이사로 올라 있던 S사와 엄 군수 아들 등 개인 명의로 된 8개 태양광발전소가 위치해 있다. 엄 군수 가족은 지난 2016년부터 해당 위치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해 왔고, 지금도 추가 공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태풍으로 태양광발전을 위해 깎아낸 절개지에서 토사와 바위 등이 산 아래 35번 국토를 덮쳤다. 도로는 국토관리청이 응급 복구했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사유지인 만큼 소유주가 사비로 복구하는 게 원칙이지만 봉화군은 원인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1억9000만 원을 투입해 길이 170m, 높이 4~5m에 달하는 옹벽을 설치했다.
예산 집행도 빨랐다. 산사태 발생 15일 만에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발주, 마무리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태양광발전단지를 만든다고 산림을 훼손해 산사태가 발생했는데, 군비로 복구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공사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엄 군수 측근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논란까지 발생했다. 총 공사비 1억9000만 원 중 군이 자재를 매입해 제공하는 관급자재를 제외한 순수 공사비는 7100만 원 수준이었다. 지방자치단체 수의계약 운영요령에는 2000만 원 이상의 공사비가 투입될 경우 입찰을 통해 시공사를 선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군은 공사 구간을 4개로 나눠 공사비를 500~3000만 원씩 쪼개는 방법을 사용했다. 3000만 원짜리 공사에는 ‘여성우대’ 조항이 적용됐다.

태양광발전단지 개발도 ‘편법’ 의혹

사태의 발단이 된 태양광발전단지 조성에도 편법이 사용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엄 군수 가족은 지난 2016년부터 약 7만5000㎡ 부지에 태양광발전 시설을 개발하고 있다. 개발 구역이 1만㎡ 이상일 경우 환경영향평가 계획 등을 수립해 상위 지자체인 경상북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엄 군수 가족은 발전소를 8개로 쪼개 1만㎡를 넘지 않도록 함으로써 이 같은 규정을 피해갔다. 불법은 아니더라도 ‘편법을 사용했다’는 논란은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농로정비공사 설계용역 건에 대한 특혜논란도 일고 있다. 봉화군이 공고한 제2019-892호 견적서 제출 안내 공고 용역명에 따르면 기초금액 4697만 원의 늘뱅이 농로정비공사 외 2건 실시설계용역 건은 공사 시점이 기존 농로를 따라 명호면 관창리 434-2번지에서 시작, 관창리 늘뱅이 까지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군은 공사 진행 사항에 따라 종착점이 달라질 수 있다고 적시했다.
도로 확장 시작구간인 남애마을 위쪽에서 태양광발전단지 사이는 너비가 2~3m 정도인 급경사 산길이다. 승용차 한 대 정도가 지나다닐 수 있는 정도에 차량 교행을 위한 여유 공간이 마련돼 있다. 길이 좁긴 하지만 인근에 민가가 없고, 태양광발전단지를 제외하면 인삼밭뿐이어서 군민들이 겪는 불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군은 이 도로에 군 예산을 투입해 길이 3000m, 너비 5m의 도로를 만들 계획이다. 군은 또 청량산집단시설지구에서 늘뱅이를 잇는 광석도로확포장공사도 추진 중이다. 무려 10억 원의 예산이 책정된 이 공사는 도로의 심한 경사도와 산림청의 반대로 현재 멈춰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금액이 4697만 원인 경우 총 공사비용은 약 5억 원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군민이 거주하지도 않는 데다 대규모 농지도 없는 늘뱅이 일원 농로정비공사에 억대의 군민 혈세가 투입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엄 군수 가족의 태양광발전단지가 늘뱅이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늘뱅이 일대는 엄 군수가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S사와 가족 명의의 태양광 회사, 업체의 감사를 맡고 있는 A씨 소유의 땅이 대부분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농로정비공사 사업 역시 군수 가족을 위한 특혜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실제로 3m가량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농로가 공사를 거치면 인근 토지 가격이 상승할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봉화군 주민 “토목 공사 전부 자기 땅 근처로 몰아줘”

기자가 15일 만난 봉화군 주민 B씨는 “군수가 ‘햇살 정책’이라고 해 태양광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군수가 여러 가지 편법, 위법성 행위를 저질렀다고 성토했다. A씨는 “(산사태 당시) 터진 것은 불과 10여m 정도다”라면서 “여태 단 한 건도 군에서 산사태 복구공사를 해준 적이 없다. 그런데 군수는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군수 가족이 운영하는 발전 단지 규모를 보면 너비 4m 이상의 도로가 필요하다”며 “원래 도로가 없으면 사업자가 땅을 사고 도로를 닦아야 한다. 거기에 세금이 투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런 토목 공사를 전부 자기 땅 근처로 (몰아주고 있다). 말리지도 못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공무원법에는 대표 이사 겸직 금지 규정이 있지만, 처벌 규정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법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방공무원법 56조와 복무규정 10조 등에 따르면 공무원은 상업·공업·금융업 또는 그 밖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의 이사·감사업무를 집행하는 무한책임사원·지배인·발기인 또는 그 밖의 임원이 되는 것을 할 수 없다고 적시돼 있다. A씨는 “S사 대표 이사는 군수지만, 이사는 아들이다. 감사는 부인이다”라며 “그건 왜 안 바꿨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그는 엄 군수 가족의 산지 개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임의적인 산지 개발은 불법이다”라며 “임 군수는 나무를 마음대로 베었다. 허가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엄 군수 “각종 의혹에 사과 드린다”

논란이 커지자 임 군수는 지난 11일 군청 브리핑룸을 방문해 해명에 나섰다. 엄 군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혹시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지난해 6월 대표이사직 사퇴서를 내고 서류를 만들어 놓았는데 등기 절차를 밟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면서 “당시 제출해 놓은 서류로 최근 과태료를 물고 해임 등기서류를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정 여하를 떠나 각종 의혹에 휩싸여 군민 여러분에게 사과 드린다”며 “앞으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모든 일에 더욱 신중히 처리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봉화군 측은 이번 사안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담당 직원들이 부재 중”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기자는 연락처와 메시지를 남긴 뒤 연락을 부탁했지만 봉화군청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들은 타 매체에 “산 정상 부근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차량이나 인명피해가 우려돼 응급복구 공사를 시행한 것이지 특혜는 아니다”며 “영주 국도유지에서 복구방안을 수립해 이른 시일 내에 조치하라는 통보를 받고 응급복구공사를 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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