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복과 길리 트라왕안

[편집=김정아 기자/사진=Go-On 제공]
[편집=김정아 기자/사진=Go-On 제공]

 

[일요서울 |  프리랜서 함희선 기자] ‘섬’이라는 한 글자가 내어주는 소외된 공간의 기운. 롬복과 길리 트라왕안. 두 섬에서 단 이틀 밤을 보내면서도 여행의 기쁨을 손에 쥘 수 있게 했다. 발리를 벗어나 보낸 적요의 시간. 해안가 리조트에 머물며 새파란 바다를 눈에 담고, 자전거에 올라타 바닷가를 달리며 열대 섬의 매력을 탐했다.요즘 여행 트렌드는 '한 달 살기', 여행도 일상처럼 소소하고 느긋하게 즐기는 게 유행이다. 개인적으로도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소원하며 고된 일상을 달래곤 한다. 마음속으로는 한 달이 아닌 1년쯤 진득하게 질릴 때쯤 돌아오는 게 낫다는 유혹도 일렁인다. 그런 의미에서 목적지가 발리도 아니고 겨우 2박 3일이라니. 롬복 섬에서의 하루, 그리고 그 이웃 섬 길리 트라왕안에서의 하룻밤을 보내러 간 이야기는 설득력이 사뭇 떨어진다. 거기까지 가는 수고로움은 차치하고, 어찌 그 짧은 시간에 뭔가 보고 느낄 틈이 있었겠는가 싶을 테다. 누군가는 비행기 삯이 아깝다고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자연에서 누리는 호사 

발리의 꾸따와 헷갈리거나 비슷할 거라고 짐작하기 십상이다. 푸른 인도양과 새하얀 모래밭은 발리의 것과 다를 바 없이 아름다우나 롬복 남부의 꾸따 비치는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 자체. 꾸따 주변으로 세렌팅 비치, 안 케이프, 켈리우 비치, 게루뿍 비치 등 예쁘기로 소문난 해변들이 줄줄이 모여 있다.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이 서부 해안의 승기기로 향하는데, 롬복에서 가장 먼저 발전을 시작한 지역이라 대형 고급리조트며 레스토랑, 바, 상점, 은행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머무르기 편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섬에 에메랄드 빛 바다만 있는 건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 3,726미터로 솟아있는 활화산 린자니가 있다. 롬복 섬 여행의 목적이 오로지 린자니 트레킹이 차지하기도 한다. 정상에 오르면 눈부시게 새파란 칼데라 호가 눈앞에 펼쳐진다. 절로 경건해지는 웅장한 산세에 현지 힌두교도인들은 발리의 아궁산과 자바의 브로모산과 함께 신성한 곳으로 여겨 성지처럼 즐겨 찾는다. 단, 3일을 꼬박 걸어야 하는 트레킹인 데다가 길이 험난해 초보자는 도전하기 어렵다.

길리 트라왕안, 자유의 섬 

<윤식당>의 그 섬. 롬복과 이웃하고 있는 길리 트라왕안은 스피드보트를 타면 15분 만에 닿는다. 많은 이들이 롬복 옆에 있는 작은 섬인 줄도 모르고, 심지어는 인도네시아인 줄도 모른 채 TV 속 그 섬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놀랍지 않게도 방송 이후 한국인 여행자들은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가로 3킬로미터, 세로 2킬로미터. 이렇게 작은 섬에 한국 사람들이 찾아갈까 싶겠지만, 여기저기에서 한국어가 들린다. 우리들이야 예능 프로그램을 본 후 길리 트라왕안을 알게 됐지만, 겨우 3시간이면 걸어서 섬 한 바퀴를 돌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섬은 1980년대부터 발리 못지않게 배낭여행자들의 애정을 듬뿍 받아 왔다. ‘지상낙원’이라는 단어가 찰떡같이 어울리는 맑고 깨끗한 바다, 정리되지 않은 정글과도 같은 야자나무숲, 다이빙과 스노클링을 즐기기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 그리고 배낭여행자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활기차고 자유로운 분위기. 모래 위에 덩그러니 놓인 빈백에 앉아 감상하는 노을이나 별빛 아래 야외극장에서 누워 보는 영화까지 이 섬에서는 모든 순간이 낭만이다. 무엇보다 롬복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발리에서 페리에 올라타면 쉽게 갈 수 있기에 롬복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인기다. 

길리 트라왕안에는 없는 게 참 많지만, 그중 대표는 자동차다. 울퉁불퉁한 흙길로 다니는 건 사람들의 두 발, 자전거와 마차뿐이다. 불편함은 그리 오래 속썩이지 않는다. 우선, 무거운 가방을 숙소에 던지고 난 후엔 자유다. 선택은 없다고 봐야 한다. 거의 모두가 자전거에 올라타 열대의 섬을 누빈다. 뜨거운 바람이 어느새 땀을 식혀 줄 때의 기쁨을 맛보고 나면 안장에서 내려오기도 싫다. 처음엔 어색했던 치모도라 불리는 마차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마저도 파도 소리와 함께 잔잔히 마음을 달래준다. 지금 가만히 떠올려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자동차가 없는 삶이 이토록 아름다웠나 하는 것이다.  

사실 길리 트라왕안은 혼자가 아니다. 마치 롬복의 부속 섬처럼 옆에 나란히 길리 트라왕안, 길리 메노, 길리 아이르가 붙어 있다. 이 세 개의 섬을 합쳐 ‘길리 아일랜드’라고 부른다. 길리가 사삭 사람들의 언어로 ‘섬’이라는 뜻이라 정확히 말하면 틀린 표현이지만 말이다. 그중 길리 트라왕안이 가장 크고 가장 발달했다. 길리 메노 앞바다는 실제 사람 사이즈로 제작된 동상 48개가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이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수중미술관으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영국 출신의 조각가 제이슨 디케리스 테일러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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