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 [뉴시스]
윤석열 검찰총장 [뉴시스]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라는 책을 쓴 개그맨 전유성 씨는 전철에서 싸우고 있는 고등학생을 나무라던 50대 남성이 학생들로부터 집단 폭행당하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말리지 않고 모른 척한 현대인을 꼬집은 기사를 보고 조금 비겁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모르는 척했던 사람들이 세상을 훨씬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당시 같이 합세해서 그 아이들을 팼다면 경찰에 가서 조서를 작성해야 하고 또 그 과정에서 다친 아이들의 부모들이 달려와 보상금을 달라고 할 것인데, 이 모든 것이 귀찮은 일들이라고 썼다.

전 씨는 심지어 학생들에게 매를 맞은 남성이 다음에도 학생들이 싸울 때 말릴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했다고 꼬집은 기사를 썼던 기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지 의문을 표했다.

이 책이 나오자 독자들은 열광했다. 마치 독자 자신의 마음을 전 씨가 대신 솔직하게 이야기해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은 출판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고 독자들은 고정관념을 깬 전 씨의 솔직함과 과감함에 탄복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장유유서가 물구나무 서는 세상이 됐다고는 하지만,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비겁한 사람들을 미화하는 책이 인기를 끌고 있으니 말세가 따로 없다.

사람이 두들겨 맞고 있는데도 이를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훨씬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은 전 씨는 아마도 지독한 현실주의자 또는 남은 죽어도 자기만 살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자일 수 있다.

그렇게 사는 건 현명한 인생이 아니라 비겁하고 바보 같은 인생이다.

전 씨의 말대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두들겨 맞고 있는데도 모두가 모른 척하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합세해서 학생들을 꾸짖어야 그게 정의로운 사회다.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많은 국민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어이가 없다. 그는 지금 검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을 찬양하다니 당치도 않다.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 각 구성원이 그동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씨처럼 비겁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사업가는 사업가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시류 따라 이 눈치 저 눈치만 보고 있다는 말이다. 교사는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망각한 채 학생들을 정치 도구로 삼는 일에만 몰두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윤 총장도 사실 전 씨가 말한 것처럼 조금만 비겁하면 즐거운 인생이 보장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는 가시밭길을 택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 이 아이러니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박수를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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