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일요서울] 지난 9월16일 삭발을 감행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두 달이 지난 20일부터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하면서 정치권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다른 야당의 지도부나 의원들이 단식투쟁에 나선 전례는 있었지만 제1야당의 당대표가 감행하는 것과는 무게감이 다른 만큼 파장도 만만찮다.  

황 대표는 이날 오후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을 선언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더 이상 무너지는 대한민국의 안보, 민생, 자유민주주의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절체절명의 국가위기를 막기 위해 저는 이 순간 국민 속으로 들어가 무기한 단식 투쟁을 시작하겠다. 죽기를 각오하겠다"고 천명했다.

표면상으로 황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한 건 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수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등 세 가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당 지도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사실 목숨 거는 거다. 건강상 치명상이 올 수 있잖느냐"며 "절대 정치공학적으로 해석하지 말라. 누군가는 나서서 이 시기에 온 몸 던져 투쟁해야 하지 않나. 야당 책임자로서 늘 책임을 느끼는 것"이라고 전했다.

황 대표의 단식 투쟁을 놓고 당에서는 "정치공학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총체적 리더십 위기로 코너에 몰린 황 대표의 정치공학적 행보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패스트트랙·총선 정국과 맞물려 황 대표의 리더십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잇단 악재와 자충수가 겹치면서 리더십 논란을 덮기 위해 황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황 대표가 단식 투쟁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 내에서 당대표 단식농성은 2003년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에 이어 16년 만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황 대표는 지난 2월 말 당대표로 정치권에 화려하게 등장, 9월에는 삭발투쟁에 나선 적 있다. 불과 두 달만에 다시 제1야당 대표 초유의 무기한 단식투쟁을 감행했다. 이는 대여(對與)투쟁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한편 당 내는 물론 반문(反文)투쟁을 위한 범야권의 느스해진 결집 효과도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불법'이라는 이유로 철회했으나 당초 단식농성 장소로 국회 대신 청와대 앞으로 정한 것도 문 대통령에게 국정실패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묻고 국정대전환을 강력하게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단식 농성의 배경으로는 일차적으로는 원내 현안과 관련된 돌파구를 찾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우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안 등의 패스트트랙 강행에 저항하는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선거법 개정안은 오는 27일, 공수처법은 12월3일 각각 본회의에 부의될 예정으로 여야 협상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의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 한국당을 제외한 범여권이 의결을 강행할 수 있다.


범여권의 이러한 의지를 꺾기 쉽지 않자 나름 돌파구로 단식농성을 택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설사 단식 농성으로도 황 대표의 요구안이 여권에 관철되지 않더라도 당대표로서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무기력한 제1야당이라는 비판을 피할 명분을 쌓으려는 포석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황 대표는 청와대 앞에서 읽어내려간 호소문에서 "지소미아는 대한민국 안보에 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일본과의 경제 갈등을 지소미아 폐기라는 안보 갈등으로 뒤바꾼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미국까지 가세한 더 큰 안보전쟁, 더 큰 경제전쟁의 불구덩이로 대한민국을 밀어넣었다"고 비판했다.

공수처법에 대해선 "힘있는 자, 고위직을 법에 따라 벌주자는 선의의 법이 결코 아니다. 문재인 시대의 반대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반대자들은 모조리 사법정의라는 이름으로 처단하겠다는 법"이라며 바로 공수처법"이라며 '좌파 독재법'으로 비유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선 "국민의 표를 도둑질해서 문재인 시대, 혹은 문재인 시대보다 더 못한 시대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의 이합집산법"이라며 "이 정권과 그에 야합한 세력들의 연합으로 국회를 장악하고 개헌선까지 넘어서는 것을 어떻게 양심을 가진 정치인으로서 두고 볼 수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그럼에도 황 대표의 단식투쟁을 놓고 총체적 리더십 위기라는 비판을 의식한 초강수로 보는 해석이 적지 않다. 패스트트랙 정국이 물러가면 곧바로 들이닥칠 총선 정국에서 황 대표의 전략 부재를 당 안팎에서 의심하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황 대표가 단식 투쟁을 공개 선언하면서 인적 쇄신과 보수통합을 언급한 점도 이같은 해석에 힘이 실린다.

총선 승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인적 쇄신, 보수 통합, 인재 영입이 대두되고 있지만, 이 세 가지 모두 황 대표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3선 김세연 의원이 영남 중진으로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지만 이러한 희생이 한국당의 인적쇄신의 동력이 되기보다는 당 내 해묵은 계파 갈등 조짐이 일면서 '분란의 씨앗'만 되고 있다. 황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에서 인적 쇄신에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당 내에서 흘러 나온다.


인재영입에서도 성과가 부진한 편이다. '공관병 갑질' 논란으로 배우자가 기소된 박찬주 예비역 대장을 '1호 인재'로 영입하려다가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 안팎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황 대표는 1차 인재 영입 효과가 시원치 않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곧바로 2차 인재영입 명단을 발표하려 했지만 당 지도부의 만류로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야권의 보수통합 역시 서울·수도권은 물론 전 지역에서 한국당이 흥행을 일으키며 총선 정국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재료'가 될 수 있지만 황 대표가 보수대통합 선언을 한 후 큰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한국당에서 보수통합 우선 순위인 바른미래당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과의 통합과 관련해선 황 대표 측에서 유승민 의원 쪽과 지속적으로 물밑 접촉을 해오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변혁 쪽에서는 한국당의 협상파트너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황 대표가 보수통합을 둘러싼 진정성을 의심받으면서 잡음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황 대표는 인적쇄신을 "국민의 명령"이라고 부르며 "혁신이 멈추는 순간 당의 운명도 멈춘다는 각오로 뼈를 깎는 혁신에 임하겠다'고 약속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뉴시스]

 

특히 "당을 쇄신하라는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받들기 위해 저에게 부여된 칼을 들겠다. 국민의 눈높이 이상으로 처절하게 혁신하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평소 신중하고 정제된 표현을 즐겨쓰는 황 대표의 언행을 감안하면 이날 발언 수위는 상당히 센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통합과 관련해선 "문재인 정권의 망국(亡國) 정치를 분쇄하려면 반드시 대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대통합 외에는 어떤 대안도, 어떤 우회로도 없다. 저는 이제 무기한 단식을 통해 소아의 마지막 자취까지 버리려고 한다"며 보수통합에 동참해줄 것을 당부헀다.

황 대표의 단식투쟁의 성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강하게 밀어 붙이는 것도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야당과의 협치 노력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황 대표가 거절당한 영수회담을 다시 극적으로 추진할 경우 꽉 막힌 정국의 돌파구를 찾고 국면 전환도 가능하다.

반면 문 대통령이 황 대표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영수회담 등에 응하지 않을 경우 황 대표로서는 여론의 힘을 빌려 단식투쟁의 동력을 살려가고 문재인 정권을 압박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가 단식투쟁을 시작하면서 "저를 내려놓겠다. 모든 것을 비우겠다. 그동안 국회에서의 싸움은 어렵고 힘들었다. 야당이 기댈 곳은 오로지 국민 여러분밖에 없다"며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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