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황교안 단식은 무엇에 맞서는 투쟁인가? 단식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극단적인 정치행위다. 설득이나 협상으로 안 될 때 사용하는 최후의 투쟁방법이다. 보통 무엇을 얻거나 막고자 할 때 사용한다. 주로 약자의 전유물이다. 

YS(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1983년 전두환 군부정권에 맞서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이 조건이었다.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지만 훗날 민주화로 이어졌다. DJ(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1990년 민자당에 맞서 13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내각제 개헌 반대와 지방자치 실시를 요구했다. DJ는 두 가지를 모두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YS와 DJ의 단식투쟁이 성공한 이유는 두 가지다. 미래가치 요구와 국민들의 공감이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지소미아 종료 철회, 공수처 포기, 선거제 개편 철회 세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황 대표는 죽음까지 각오하며 지켜야 할 가치라고 말했다.

지소미아 종료는 많은 논란을 안고 있지만 근본적인 책임은 일본에 있다. 일본은 과거사 오리발, 독도 도발, 군비 증강, 경제보복까지 우릴 위협하고 있다. 일본을 경계하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핵심 이익이다. 지소미아 종료는 최소한의 견제수단이다. 게다가 국민 지지율도 높다. 22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종료 찬성이 51%로 반대(29%)를 앞섰다.

검찰개혁은 촛불의 요구이자 시대적 요청이다. 2016년 12월 내일신문-현대정치연구소 여론조사에서 국정논단 원인으로 재벌-관료-검찰 비리 유착이 30.5%를 나타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비정상적 통치행위(42.5%),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23.6%)과 견줘 만만치 않은 비중이다.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주요 방안으로 거론되어 왔다. 권한남용과 같은 부작용은 국회 협상과정에서 제거하면 된다.

승자독식 양당제는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로막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우리 정치는 정쟁과 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했다. 합의나 타협이 아닌 제로섬(zero-sum)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안으로 다당제 기반 확충과 민의의 정확한 반영이 제시됐다. 국회에 올라있는 선거제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황 대표의 세 가지 조건은 미래 대신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과 진배없다. 한국은 탄핵이란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여기까지 왔다. 개략적인 미래 방향에 국민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다. 황 대표의 단식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황 대표의 단식은 보수 통합과 총선 승리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황 대표는 통합, 혁신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현역의원 30% 컷오프, 물갈이 50% 이상 목표도 내놨다. 이는 국민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황 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지도부, 한국당의 주류, 당의 정체성과 이념좌표, 국정 현안에 대한 입장 모두가 혁신 대상이다. 사람만 교체하는 셀프 혁신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황 대표는 2월 대표 취임 이후 오랜 장외투쟁, 9월 삭발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당 장악력을 높인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성찰, 혁신은커녕 퇴행적 보수화를 거듭했다. 이번 단식도 마찬가지다. 총선을 앞두고 있어 극심한 줄서기도 예상된다. 황 대표가 여러 차례 공언했던 것처럼 통합·혁신은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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