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파상공세에 ‘혈맹(血盟)’ 균열 우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고위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고위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미국 측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장을 박차고 나간 지 하루도 안 돼서 우리 측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또다시 요구했다. 특히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입장 변화를 시사하며 약 5조8000억 원 규모의 청구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서 미국 측의 입장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1개 여단이 철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조선일보를 통해 보도됐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줄다리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측의 파상공세가 한미동맹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美 “분담금 증액 요구 부당하지 않아”···주한미군 감축설까지

軍 “에스퍼 장관, 51차 SCM서 ‘주한미군 지속 주둔’ 공약”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19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진행된 미국‧필리핀 국방장관 회담‧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가 할 수도 있거나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해 예측하거나 추측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다만 에스퍼 장관은 “국무부가 해당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면서 협상 주체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은 부자 나라다.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낼 수 있고 더 내야 한다”고 전했다. 전날 서울에서 열린 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SMA)’ 체결을 위한 3차 회의가 파행된 지 하루도 안 돼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카드를 꺼내며, 주한미군 감축설을 촉발한 것이다.

특히 에스퍼 장관의 발언이 주한미군 변화 가능성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흘 전 발언과 온도차를 보인다는 점에서 논란이 가중됐다. 한‧미 국방장관은 지난 15일 51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후 공동성명에서 “에스퍼 장관이 현 안보 상황을 반영해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방위비 협상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대사는 한미 분담금 협상이 조기 종료된 뒤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언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주한미군과 관련해서는 한 번도 논의된 바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국 등 동맹국에서 미군 철수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분담금 증액을 예고했다. 미국이 올해 연말까지 한국과 방위비 협정을 타결한 뒤 내년에 일본, 독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을 발판 삼아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는 우려가 잇따랐다.

‘50억 달러’ 20번 반복?

앞서 마크 미릴 미국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인도태평양 순방길에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평범한 미국인은 한국과 일본에 배치된 미군을 바라보며 ‘왜 저곳에 미군이 필요한가? 비용은 얼마나 드는가? 이들은 매우 부유한 나라인데 왜 우리가 방어해 줘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고 말하며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했다.

미국이 새로운 항목과 무리한 증액을 요구한 데 이어 협상장을 박차고 나간 것에 대해 한국 내 반발도 커지는 상황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대표단은 지난 18일에 이어 1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틀째 협상을 이어나갈 예정이었으나 1시간여 만에 조기 종료됐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50억 달러를 확 던져놓고 그 세부 항복에 대해 미국 행정부가 끼워 맞추기 식으로, 주입식으로 (협상)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비판하며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 7일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을 관저로 불러 방위비 분담금으로 50억 달러(약 5조8875억 원)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20번가량 반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지난 19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이 의원은 “인사를 나누는 자리로 알고 가볍게 갔는데 서론도 없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50억 달러를 내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 제 느낌에 20번은 되지 않았나 싶다”면서 “제가 무리하다고 말하면서 한일군사정보협정(GSOMIA) 얘기도 해봤지만 (해리스 대사가) 다시 방위비 얘기를 꺼냈다. 수십 년간 많은 대사를 뵀지만 (이런 경우는) 저로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리스 대사는 우리나라가 그동안 내야 할 돈의 5분의 1밖에 내지 않은 일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고 주장했다”면서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주한미군 1개 여단 철수설

조선일보도 지난 21일 워싱턴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미 측의 요구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1개 여단이 철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이날 국방부는 주한미군 감축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노재천 국방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오늘 모 매체에 보도된 (주한미군 감축) 내용은 잘 알고 있지만 미 정부 공식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양국은 한반도 동북아 안정을 위한 주한미군의 중요성과 관련해 확고한 공감대를 갖고 있다”면서 “51차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에스퍼 장관은 주한미군 지속 주둔 공약을 이야기했다. SCM 공동성명 7조에 잘 명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측도 관련 내용을 강력히 부인하며 기사 취소를 요구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조너선 호프먼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미국 국방부가 한반도에서 철군은 고려하고 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 에스퍼 장관이 관련 보도 내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호프먼 대변인은 “지난주 한국에서 에스퍼 장관은 (한국과 한국) 국민들에 대한 철통같은 헌신을 계속해서 표명한 바 있다”면서 “이런 보도는 한 익명 소식통의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결점을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조선일보에 기사를 즉시 취소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우리 외교부도 주한미군 감축설에 대해 “한마디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일 사실일 가능성을 두고 미국 전문가들은 ‘미국의 망신’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안킷 판다 미국과학자연맹(FAS) 부속선임연구원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그곳에 있는 동맹은 멋지다”며 “만약 이에 대해 어떤 일이 벌어진다면 망신”이라고 지적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트위터에서 “정말로 이 보도가 틀렸으면 좋겠다”면서 “(주한미군 일부 철수는) 미 동맹에 비극적 결과를 주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미국 측은 방위비 분담금을 놓고 위협하고 있는 게 아니라며 증액 요구가 부당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피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요구 조건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하겠다는 감축설까지 제기되는 만큼 방위비 분담금 협상 줄다리기가 한미동맹 균열이라는 결과를 낳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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