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재 납품 사업까지 눈독” 연일 폭로전

2018 미쉐린 가이드 서울 발간 시상식 [뉴시스]
2018 미쉐린 가이드 서울 발간 시상식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유명 한식당 ‘윤가명가’의 전 대표 윤경숙씨의 미쉐린 관련 폭로가 점입가경을 향해 치닫고 있다. 윤씨는 앞서 미쉐린 가이드 측이 자신의 식당에 ‘별’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금전 등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윤씨에 따르면 당시 미쉐린 가이드가 요구한 금액은 컨설팅비와 평가원의 체류비 등을 합쳐 매년 약 2억 원에 달하는 액수였다. 윤씨는 이를 거절하자 미쉐린 가이드에서 윤가명가가 사라졌다고도 했다. 미쉐린 가이드 측은 이같은 주장을 즉시 반박했지만, 윤씨의 추가 폭로와 내부 관계자 등의 증언이 맞물리며 의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유명 한식당 전 대표 작심 비판
‘검은 커넥션’ 드러난다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 사(社)에서 발간하는 여행 안내서다. 100년이 넘는 역사만큼 엄격한 심사 기준과 신뢰도 있는 정보로 명성을 얻었다. ‘미식가들의 성서’로 불릴 만큼 인기가 많아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식당은 언제나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요식업계에서는 감히 대항할 자가 없던 미쉐린 가이드의 명성에 금이 간 것은 지난 14일이다. 이날 한식 레스토랑 ‘윤가명가’의 윤경숙 대표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난 2013년 미쉐린 가이드 측으로부터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에 입성할 예정이고, 거기에 맞는 3스타급 레스토랑을 오픈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윤 대표는 미쉐린 가이드의 제안에 맞춰 2014년 연말 전 매장을 오픈했다고 덧붙였다.
윤 대표는 “미쉐린의 고위급인 인스펙터 분들이 두 번 정도 오셨다”면서 “아시아 총괄과 관련 정보를 중간에서 전달해주시던 ‘싱어’라는 이름을 가진 분까지 1년에 평균 6번 정도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윤 대표에 따르면 미쉐린이 돈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후였다. 그는 “(미쉐린 가이드 측이) 신라호텔 라연, 광주요그룹의 가온이라는 곳이 컨설팅을 의뢰 받았고, 그들도 ‘스폰’을 해 줄 의사가 있다면서 아주 달콤한 제안을 받았다”면서 “너희들이 이런 식으로 하면 3스타를 받을 수 있겠지만, 다양성 있는 식당이 나오도록 컨설팅을 받으면 어떻겠느냐 라고 얘기했다”고 폭로했다. 윤 대표는 “미쉐린 가이드 측이 1년에 4만 달러(약 4660만 원)가 조금 넘는 컨설팅비에 더해 인스펙터들과 심사위원들이 올 때마다 그들의 체류비와 항공권, 숙박, 음식 먹는 값을 세 곳(라연, 가온, 윤가명가)이 나눠 지불해야 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예상 비용을 모두 합하면 매년 2억 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고 윤 대표는 덧붙였다.
윤 대표는 어니스트 싱어가 제안한 컨설팅을 거절했다. 그러자 지난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에서 윤가명가의 이름은 등재되지 않았다. 그는 “미쉐린 가이드에는 1스타와 2스타, 3스타 외에도 ‘그 지역에 가볼 만한 레스토랑’의 이름이 들어간다”면서 “미쉐린 가이드에 윤가명가라는 레스토랑은 없는 존재가 됐다”고 토로했다.
미쉐린 측은 최초 폭로 이후 즉시 반박에 나섰다. 같은 날 미쉐린 글로벌 디렉터 그웬달 뿔레넥은 ‘미쉐린 가이드 2020’ 발표와 함께 “최근 미쉐린 별점을 위한 컨설팅 목적으로 돈을 받았다는 어니스트 싱어와 미쉐린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뿔레넥은 “(싱어는) 절대 우리 직원이 아니고, 그와 계약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며 “저희는 평가를 내릴 때 한 명의 평가원이 결정하지 않는다. 평가원은 돈을 내고 식사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가원은 익명으로 가서 여러 번 식사를 한다”면서 “미쉐린 가이드의 최고 자산은 신뢰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다만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어니스트 싱어에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미쉐린 브랜드와 관련해 명확하지 않은 메시지가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며 “그 사람에 대해서는 법적조치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고 지켜보는 중”이라고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싱어, 미쉐린 고위층에 영향력 있다”

KBS 보도에 따르면 윤가명가는 일본 도쿄에 위치한 고급 한식당 ‘윤가’의 분점 격이다. ‘윤가’는 지난 2013년부터 6년 연속 미쉐린 2스타를 받고 있는 유명 식당이다. 윤 전 대표의 언니 윤미월씨가 오너 셰프로 근무하고 있다. 윤 셰프의 아들 주 모씨에 따르면 그는 미쉐린 서울이 2016년 발간될 것을 2년 반 전인 2014년 5월 싱어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고. 주씨는 ‘윤가’ 개업 3달 뒤인 2013년 8월 알랭 프레미오라는 프랑스 남성이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윤가’는 그해 도쿄 미쉐린 가이드에서 2스타에 깜짝 선정됐다. 개업 7달 만이었다. 알랭 프레미오가 아시아 지역 미쉐린 평가 총괄 책임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프레미오는 이후 싱어를 포함한 일행과 함께 ‘윤가’를 재방문했다. 이후 싱어는 주씨에게 서울에 분점을 열면 미쉐린 스타 획득을 위한 컨설팅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주씨는 “프레미오가 싱어를 친구로서 데리고 왔고 저는 그를 믿었다”고 설명했다. 미쉐린 측은 “프레미오가 아시아 총괄 책임자였던 것은 맞다”면서도 “이미 퇴사해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윤 전 대표 “미쉐린의 진짜 목표는…”

윤 전 대표는 미쉐린의 목표가 대기업과 손을 잡고 한국 식자재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식자재 시장을 손에 넣어 큰 수익을 얻는 것이 미쉐린의 진짜 목표라는 것이다. 윤 전 대표는 지난 19일 tbs FM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미쉐린 가이드가 선택한 식자재’라는 프라이드를 대기업과 함께 앞세워 수출 시장을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 요식업에서 이미 심각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또 “미쉐린이 와인과 푸아그라, 캐비어, 한방 향신료, 조미료들을 한국에서 셰프들을 앞장세워 활성화시키고, 대기업들과 (시장을) 장악해나가는 과정”이라며 “국내 소비가 적은 식재료들을 공신력 있는 미쉐린 가이드와 유명 셰프들이 소개해 수입량을 늘리고 그 과정에서 국내 대기업과 미쉐린 측이 이익을 챙기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표는 싱어의 경우에도 “일본에서 와인, 사케 거점상으로 미쉐린과 결탁이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폭로의 이유에 대해 “후배 셰프들과 업계를 농락하는 그들의 범죄에 입을 다무는 공범이 된다고 생각했다”며 “대한민국 한식 문화뿐 아니라 소비자들을 농락했다. 이걸 입 다물었다면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살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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