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왜?” 다들 허를 찔린 표정이었습니다. 속보로 뜰 때까지 아무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을 결행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황대표가 단식을 한다는 소식은 한창 정부예산 심의와 선거법, 공수처법 처리에 관심이 쏠려 있던 정치권에 큰 물음표를 던져 줬습니다. 도대체 황대표는 왜 이 시점에서 단식에 나선 것일까요?

단식은 보통 특별한 계기와 명분이 필요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 독재시절 5.18광주민주화 운동 3주년에 맞춰 민주화를 위한 5개항을 요구하면서 단식을 결행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에 맞서 내각제 포기와 지방자치제 실시를 단식의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역사가 기억하는 단식은 계기와 명분이 있었고 목숨을 건 만큼의 성과도 얻으며 마무리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대표 시절 단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문 대표는 세월호특별법 처리와 관련해서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광화문 단식농성장을 찾았다가 단식을 말리려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보수 언론이나 당시 여권에서는 부적절한 단식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는 “갈등을 조정해야 할 당사자가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칼럼을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황 대표는 단식을 하면서 3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정부여당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철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선거법을 철회하지 않으면 단식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황 대표의 주장은 야당이 요구할 법한 것들이지만, 현 정국이나 여야 관계가 단식이라는 극한 수단을 들고 나와야 할 정도의 수위는 아닙니다.

황 대표가 단식을 하면서 내건 주장은 국회를 건너뛰는 것입니다. 황대표는 단식 전에 나온 단독 영수회담 주장에서 보듯 문 대통령을 직접 상대하고 싶어 합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뺀 공수처법이나 선거법 개정 문제는 여야가 원내에서 협상을 통해 접점을 찾아야 하는 사안입니다. 황 대표 주장은 나경원 원내대표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황 대표는 그 동안 협상을 도맡아 온 나 원내대표를 견제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2월로 만료되는 나원내대표의 임기를 더 이상 연장하고 싶지 않아 보입니다. 황 대표의 느닷없는 단식은 방위비 분담 문제로 여야원내대표단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탄 나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한반도에서 날아 온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맞은 기분일 겁니다. 

곧 일정을 마치고 돌아올 나 원내대표가 어떤 입장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임기 연장을 원하는 나 원내대표 입장에서 황 대표가 던진 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임기 연장 여부가 결론 날 것으로 보입니다. 황 대표의 천막농성장을 찾아가서 충성 맹세를 하지 않는 한 나 원내대표는 12월에 임기를 마칠 것으로 보입니다. 황대표는 구미에 맞는 원내대표를 얻을 수 있겠지요.

황 대표는 나 원내대표에게 ICBM을 쏘더니 당 깊숙한 곳에는 벙커버스터를 터뜨렸습니다. 한국당이 내년 총선 전에 현역 의원 30명을 컷오프시키기로 한 겁니다. 이제 공천 문제가 걸린 현역의원들은 줄줄이 천막 농성장을 찾아 황 대표의 단식을 엄호하고 충성맹세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잇단 실책과 실기로 무너지던 리더십을 부여잡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황 대표의 단식은 실무를 모르는 측근 국회의원들이 모여 짜낸 기획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 앞에서 천막을 못 치고 국회로 돌아오는 해프닝이 일어나고, 전광훈 목사가 집회장을 우발적으로 찾아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김문수, 차명진과 같이 현실정치에서 밀려난 비호감 인사들과 한 프레임 안에서 찍은 사진이 보도됩니다. 황 대표가 어떤 명분으로 단식을 마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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