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흥왕사(興王寺)의 변(김용의 난), 
최유의 난을 진압하다
 

전후 2차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궁궐은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시가지는 빈터가 되었으며, 백골이 언덕을 이룰 정도로 참담한 형편이었다. 정궁인 본궐(만월대)은 홍건적의 침입으로 완전히 전소(全燒)되어 잿더미가 되고 말았으며, 끝내 중창이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고려 조정에 대규모 궁궐을 중창할 정도의 여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개경 환도 이후 본궐에 대한 거리낌이 많았기 때문이다. 
1362년 8월 22일. 상주를 출발한 어가행렬은 청주에 도착했다. 공민왕은 여기서 충남 연산에 있는 개태사(開泰寺)에 두 번이나 사람을 보내 점을 치게 했다. 한 번은 그해 8월 말에 첨의평리 이인복(李仁復)에게 명령하여 개태사의 태조 진전(眞殿, 영정을 모셔놓은 사원)에 가서 수도를 강화로 옮기는 것에 대하여 점을 치게 하였는데 불길한 괘를 얻었으므로 중지하였다. 또 한 번은 이듬해 정월 초에 이인복을 개태사의 태조 진전에 보내 환도할 날짜를 점쳤다.

해가 바뀌어 계묘년(1363, 공민왕12) 1월 9일.

한겨울이건만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눈도 오지 않았다. 겨울 날씨 답지 않게 따스한 날씨가 이어졌다. 정궁인 본궐이 복구되지 않았고, 훼손된 이궁(離宮)도 수축 중이었기 때문에 공민왕은 한동안 청주에서 행궁(行宮)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재추(宰樞)와 원로들이 공민왕에게 환도(還都)를 상주했다.
“개경은 종묘가 있는 곳이며 나라의 근본이니 전하께서 빨리 돌아가 백성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옵니다.”
그러나 천변지이(天變地異)를 관측, 기록하는 서운관(書雲觀)에서 음양상 금기할 바가 있다 하여 공민왕에게 주달(奏達)했다.
“먼저 성 남쪽의 흥왕사(興王寺, 개경 남쪽 개풍군에 소재)에서 일시 머물러 계시면서 홍건적의 침입으로 불탄 강안전(康安殿, 왕의 침전)이 수축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이에 공민왕은 서운관의 제의를 따랐다. 

2월 중순. 공민왕은 청주를 출발하여 진천, 죽주를 거쳐 봉성현(鳳城縣, 파주)에 머물렀다. 이때 개경에 있던 재추들이 임진강에 나와 영접하였다. 마침내 공민왕은 흥왕사에 들어갔다. 홍건적이 물러가고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공민왕은 행궁에서 신하들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백관들은 환도를 축하하고 재추들은 왕의 축수(祝壽)를 빌었다. 
공민왕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개경으로 돌아올 수 있을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것이 다 그대들의 공이다. 오늘은 마음껏 즐기고 취하도록 마시기 바란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연회가 끝난 후, 이제현은 공민왕에게 군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방법을 상주했다.
“전하, 안정적인 시대에는 부드럽게 다스려야 하나,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조정이 강해야 합니다. 왕의 권좌가 침범 당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해서 개경으로 환도하실 때는 보다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가셔야 하옵니다.”
“장인어른,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공민왕은 이제현의 경륜에 다시 한 번 고개가 숙여졌다. 공민왕과 헤어진 이제현은 노구를 이끌고 혜비 이씨가 기거하는 행궁의 처소를 찾아갔다. 혜비는 문밖까지 나와 반갑게 아버지 이제현을 맞이하였다.
“혜비마마, 난리 통에 얼마나 고초가 많았습니까? 어디 몸이 상한 데는 없습니까?”
혜비는 양손을 뻗어 아버지의 야윈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백발이 성성한 이제현의 흰 머리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님, 그동안 너무나 뵙고 싶었사옵니다.” 
“복주로 몽진을 가서 청량사(淸凉寺, 봉화군 명호면에 위치)에서 한동안 머무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 개경탈환에 대한 준비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후 금상과 노국공주, 그리고 저는 복주에서 보다 안전한 청량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나분들(광석廣石) 개울을 건너게 되었는데, 금상은 말을 타고 건너고 노국공주와 저는 인근 부녀자들의 등을 딛고 건넜사옵니다.
“금상께서는 청량사에서 ‘유리보전(琉璃寶殿)’의 현판을 쓰시고, 산성을 쌓는 등 홍건적의 침입에 대비했다면서요.” 
“예. 노국공주와 저는 유리보전에서 멀리 떨어진 응진전(應眞殿)에서 십육나한을 모시고 ‘홍건적을 무찔러 달라’는 기도를 함께 했사옵니다.” 
“참으로 장하십니다.”
“저는 청주에서 아버님과 헤어진 후 1년 남짓 하루 밤도 편안히 자지 못했사옵니다. 아버님, 많이 늙으셨어요. 얼굴도 수척해지시고…….”
“혜비마마, 늙은이가 얼굴에 살이 좀 빠진다고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그 난리 통에도 조정 일각에서는 권력투쟁이 계속되고 있어 앞날이 걱정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사옵니까?”
“작년 12월에 원 순제가 금상을 폐하고 덕흥군을 고려국왕에 임명한 후, 기삼보노를 원자로 삼고 김용을 판삼사사, 최유를 좌정승에 임명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부쩍 원나라에 있는 최유가 사자를 보내어 김용을 충동질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유는 고려 조정 내부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맞습니다. 덕흥군이 고려왕을 차지하려는 간계를 꾸미고 있어요. 금상께서 이에 잘 대응하셔야 할텐데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전하께 대비책을 주청드리는게 어떨까요.”
“조정에 원로 정승들이 즐비한데 은퇴한 늙은이가 나서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혜비마마께서 금상께 김용의 벼슬을 승차시켜 회유하도록 주청 드리시지요.”
“아버님의 뜻을 금상께 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배웅 나온 딸의 효심 가득한 모습을 뒤로하고 혜비의 처소를 나서는 이제현의 마음은 왠지 무겁기만 하였다.
“혼조야, 혼조…….”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