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조주형 기자] 총선까지 불과 12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지나 집권 후반기로 들어섰다. 레임덕을 사전에 차단하고 여당이 정권 재창출의 동력을 충전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오로지 총선 승리다. 야당도 다르지 않다. 정권 심판론을 앞세워 내년 총선에서 레임덕의 시발점을 마련, 그 여세를 몰아 정권교체도 노린다는 전략이다. 그야말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7월 공천 룰을 내놨다. 정치 신인 가산점 항목이 들어가 있어 공천 쇄신이라지만 일각에서는 청와대 출신들에게만 유리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청와대. [사진=뉴시스]
청와대. [사진=뉴시스]

-청와대 대거 출마에 최재성·양정철까지…당 ‘자제령’

지난 7월1일, 더불어민주당은 당중앙위원회에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후보자선출규정 특별당규 제정안'에 87.8%가 찬성함에 따라 최종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의결된 제정안의 핵심은 바로 ‘정치 신인’이 공천심사에서 최대 20%까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현직 시장·군수·구청장 및 지방의회 의원 등에 대해서는 25%까지 감점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중도사퇴 선출직 공직자 또한 25%를 감점한다. 윤호중 민주당 총선기획단장은 이 같은 내용의 제정안을 소개하면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당 체질을 개선하는 동시에,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공천 룰을 정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같은 룰에 따라 ‘이득’을 보게 되는 대상은 ‘정치 신인’이 아니라 오히려 ‘청문(靑文·청와대 참모 출신)’ 등 친문(親文) 인사가 될 공산이 크다는 관측도 있다. ‘정치 신인’에는 현직 지역위원장, 경선 출마 및 선관위 후보등록 유경험자가 제외된다.

이를 두고 당내 경선 등에는 참여한 적 없지만 ‘청년, 신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청와대 출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결국 ‘비문 인사 물갈이’, ‘친문 인사 띄우기’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견해다. 이런 우려 속에서 ‘文의 남자 3철’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최근 종편 방송사에서 “별다른 기여 없이 청와대 경력만 내세워 총선 나오려고 하면 국물도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어 청와대 출신이 나설 경우 “당내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친문 인사인 최재성 민주당 의원도 지난 20일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양 원장의 이 같은 역할에 대해 “잔가지, 거추장스러운 것 등을 썰어내는 의미에서 톱”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또한 “청와대 출신들, 소위 벼슬했다는 이유로(헌신해야지) 특혜 받을 생각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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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출신 인사들은 바쁘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지난 15일 文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총선 예비 후보로 하마평에 올라간 것을 두고 “문 대통령의 굉장한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청와대에서 내려와 (지역구를) 돌아다니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대통령이 한 말씀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박 의원은 “(민주)당에서 지금까지 고생한 사람들이 있다”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현재 文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 가운데 내년 총선에 대비해 예열하고 있는 인사는 줄잡아 최소 4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내년 총선과 관련, 당에서 요구하고 본인이 동의하신 분들은 놓아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히면서 청와대 참모 출신 인사들의 총선 출마설이 부각되고 있다. 박 의원이 쓴소리를 던진 직후인 지난 16일에는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충남 천안의 한 식당에서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 복기왕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조한기 전 대통령 비서실 제1부속비서관 등과 만찬을 가졌다.

양 지사 측 관계자는 청와대 참모 출신 인사들을 격려하는 자리라고 밝혔으나, 이들이 내년 총선에 출사표를 낼 유력 인사라는 것을 두고 ‘靑 출신자 총선 도전’에 더욱 비중이 쏠리게 됐다. 특히 양 지사는 이날 기자들에게 “좋은 얘기를 했다”고 짧게 언급했다. 이와 달리 복 전 비서관은 “대한민국의 중심에 충남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며 “실제 민주당의 중심에 우리가 있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겨 이목이 집중됐다. 이렇게 시작된 文 청와대 참모 인사의 출마설은 40명 이상으로 확대된 모양새다.

지난 국정감사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격한 설전을 벌였던 강기정 정무수석도 현재 광주  북구갑에 출마할 것으로 점쳐진다. 윤건영 국정상황실장도 총선 출마설이 솔솔 피어오르는 상태다. 게다가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은 경기도 성남 중원구에 출마 의사를 밝히고 표밭을 일구고 있다. 윤 전 수석은 지난 5월부터 경기도 철도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한 바 있다.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과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은 각각 서울 양천을과 관악을 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 익산을은 강기정 정무수석의 전임자인 한병도 전 수석의 출마가 예상된다. 고민정 현 청와대 대변인의 전임자였던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도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새다. 
고민정 대변인도 출마설의 중심에 선 상태다. 고 대변인 역시 성남 분당구를 지역구로 내년 총선에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뒤따른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을 비롯해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 복기왕 전 정무비서관도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다만, 서울 종로구 출마가 유력했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3월7일 “(당에서)원하면 뭐든 헌신적으로 할 생각”이라고 밝히며 복당했지만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정세균 민주당 의원과의 지역구 다툼을 놓고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등장했다. 결국 출마설에 휩싸인 ‘文 청와대 출신 인사’ 40여 명 중 임 전 실장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은 각자 내년을 바라보며 물밑에서 뛰고 있는 추세다.
 

청와대 출신들, 출마 병(病) 들었나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왜 다들 '출마 병(病)'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마치 대통령이 출마하라고 시키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직언하며 당에서 (총선 출마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즉, 총선 출마설에 휩싸인 청문(靑文) 출신들을 향한 일침이다.

양 원장 또한 지난 21일 민주연구원의 공식 유튜브 방송에서 “친문, 비문, 반문은 없다”며 청와대 출신 인사들과 당내 인사들과의 ‘총선 출마’ 싸움의 불씨를 잠재웠다. 그러면서 그는 “갈등이나 분열 요소가 당의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양 원장은 文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대규모 출마 러시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두고 “(당에 대해) 별 기여도 없이 청와대에 좀 있었다는 것만 내세워 출마하려는 사람들도 있다”며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그는 “피도 눈물도 없이 무조건 이길 사람만 후보로 골라야 한다”고 했다는 발언도 전해졌다. 양 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민주당의 공천 과정에서 친문 스펙트럼에 따른 위치가 제각각인 여러 인사들의 반발을 잠재우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양 원장에 이어 최재성 민주당 의원도 文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총선 출마를 자제하라며 비판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을 하면서 ‘청문(靑文) 견제론’에 불을 붙였다. 그는 지난 13일 한 방송에 출연해 “文 청와대 출신 중 총선에 나올 분들은 60명을 넘어 70명 정도로 본다”며 “학생운동 출신으로 편향된 국회를 균형 있게 해야 한다는 본원적 문제의식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의원은 “총선은 스스로 뼈를 깎고 역대급 세대교체를 해야 하는데 (청문 인사들이) 정치적 특혜로 장애가 돼선 안 된다”며 “(외부) 인재들이 출전할 수 있는 영토를 부분적으로 잠식하는 것이어서 자제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는 앞서 양 원장이 총선 출마설에 휩싸인 청문 인사들의 열기를 진정시키겠다는 ‘당내 군기반장’ 역할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지난 20일 재차 방송을 통해 “(개인의)총선 출마는 자유지만 (당이) 승리하려면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며 “(당에서) 새로운 인물에 대한 요구가 크다. 文 청와대 출신이 장애가 돼선 안된다”고 다시금 자제령을 선포했다. 이어 “청와대 출신 출마자에게 다른 평가의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공천 시스템에 따른 여과 기능이 이미 확립돼 있다며 “86이든 중진이든 (공천)시스템으로 걸러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 의원은 또 “현역 의원들 또한 상당 부분 걸러질 것”이라며 대규모 물갈이를 예고하기도 했다.

한편 2020년 총선은 오는 4월15일에 치를 예정이다. 공직선거법 등에 따라 출마를 희망하는 공직자는 선거일로부터 90일 전에 사퇴해야 한다. 따라서 총선 출마 사퇴 시한인 오는 1월16일까지 청문(靑文) 인사들에 대한 민주당의 ‘자제령’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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