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역사 속에 세치 혀로 백만 명의 군사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했던 대목이 보인다. 유방이 천하를 제패하고 한(漢)나라를 건국한 것도 말솜씨가 뛰어난 장량이란 책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고려 역사에 서희 장군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반면 혀를 잘못 놀려 힘들게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패가망신한 예도 드물지 않다. 약 대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사회에 말을 주 무기로 한 사람들이 말로 흥했다가 말로 망한 경우가 없지 않다.

특히 호소력 있는 강력한 연설과 한마디 말 처신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정치인은 더욱 말책임이 크다. 부지불식간에 뱉은 말실수 하나로 정치를 접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릴 수 있다.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모진 상처가 된 경우 이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더 깊이 돌이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성인들은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 되고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 될 수 있다’라고 경계했다. 풍자를 빙자한 독설이나 막말은 결국 스스로를 해치는 부메랑이 되어온다는 뜻이다.

이 정부 들어 유독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듣기조차 민망한 수준의 독한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왜일까? 답은 아주 간단하고 선명해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를 거쳐 조기정권교체에 성공한 문재인 정권이 현 정부의 정체성을 ‘촛불 혁명 정권’으로 규정하면서 소위 진보와 보수 세력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극한 대립이 진영논리의 적개심을 키우고 증오심을 불사르게 만들었다.

이 결과가 기존의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뛰어넘어 세대간, 계층간 갈등을 통째로 삼킨 거대한 ‘진영감정’의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오직 진영논리에 갇혀있으니 정의가 사라지고, 상식이 무너지고 살모사의 독기서린 막말과 궤변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진영을 대변하는 대한민국 정치판은 오뉴월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이 말라 비틀어져 낭만이 사라졌다. 과거 정치의 당 대변인 역사에는 오랫동안 세인들의 사랑을 받고 우리 정치를 훈풍으로 이끈 명대변인들의 재기 넘친 어록이 아직까지 희미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나이든 사람들이 보수적인지 모른다. 낭만 깃든 그 옛날이 그리워서 말이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공정’과 ‘정의’를 그들 진영의 전유물처럼 내세워온 집권여당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비판 언론을 상대로 ‘쓰레기’를 표현하는 ‘기레기’ 운운하는 지경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제1야당 대표의 삭발 투쟁이나 목숨 걸고 단행한다는 혹한의 단식투쟁이 조금도 심각해 보일 리 없다. 조롱하고 비아냥 섞인 논평으로 여론 호도에 급급해할 뿐이다.

예의와 품격을 앞세우는 보수당의 대변인이라는 사람 또한 대통령의 해외출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한가한 냇가 물놀이에 빗댄 논평을 내서 여론의 비난을 받은 바도 있다. 이쯤 되면 ‘도긴 개긴’이다.

이를 개탄하는, 그래서 옛날의 정치 낭만을 회상(回想)하는 사람들을 ‘꼰대’로 비하하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옛 현인(賢人)의 말씀이 있다.
“독초를 가리는데 늙은 소의 눈을 보라”고 했다.

표 안 나게 들과 산에서 제 멋대로 섞여 자란 독초를 쉽게 구별해 뽑아내자면 늙은 소의 눈을 보면 가릴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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