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에 얼굴 찔려 얼굴 절반 마비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 4월 17일 경상남도 진주시의 한 아파트. 모두가 잠든 새벽 4시 25분경 이 아파트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화마를 피해 뛰쳐나오던 주민들에게 한 남성이 흉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려 5명이 죽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은 ‘안인득 사건’이었다. 그는 10대 여고생을 지속적으로 스토킹 하던 중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모두가 혼란에 빠져 지옥도(地獄道)가 벌어지던 그 순간, 안인득을 막아선 사람이 있었다. 범행 당시 근무 중이었던 아파트 관리직원 정연섭(30)씨였다. 정씨는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안인득을 제지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흉기에 찔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안인득의 끔찍한 범행이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무급휴가 내자 대체인력 채용
주민 지켰지만 돌아온 건 ‘실직자’ 현실

정씨는 ‘안인득 사건’ 발생 당시 근무 40일 차를 맞는 수습사원이었다. 소방벨 소리를 듣고 현장으로 달려간 그는 가득 찬 연기를 뚫고 현관문을 개방, 주민들의 대피를 도왔다. 그러던 정씨 앞에 양손에 흉기를 든 안인득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인득은 정씨에게 “관리사무소에서 뭘 했냐”고 따진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일한 지 얼마 안 돼 알아가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안인득은 불과 1m 거리에서 정씨를 향해 다짜고짜 흉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안인득의 흉기에 정씨는 얼굴을 맞았고, 옷을 적실 정도로 흥건한 피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정씨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주민들의 대피를 끝까지 도왔다. 그는 “저는 움직일 수 있었다”며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다친 걸 제 눈으로 봤기 때문에 (끝까지 남았다)”고 전했다. 정씨는 모든 주민이 대피하고서야 구급차에 올랐다. 정씨의 말과는 다르게 부상은 심각했다. 얼굴 광대뼈가 부러져 함몰됐고, 잇몸과 턱이 내려앉았다. 또 얼굴 신경 절반이 마비돼 전치 20주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6일 MBC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며 “흉기를 손에 들고 있는 게 보여서 그때는 많이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표창 받았지만…

정씨의 용기 있는 행동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해당 아파트를 소유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역시 지난 7월 정씨에게 표창을 수여하며 공로를 치하했다. 표창장에는 ‘진주 가좌 방화사건 발생 때 주민 인명 구조 등 재난 대응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표창한다’라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LH가 연말 등이 아닌 시기에 특정인을 선정해 표창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라고 LH관계자는 설명했다. 정씨는 “관리사무소 직원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표창을 받다니 얼떨떨하다”면서 “빨리 신체적·정신적으로 회복돼 다시 일을 하고 꿈을 키우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표창이 수여되기 전 정씨는 급한 외상 치료를 마치고 아파트로 복귀해 근무를 이어갔다. 그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트라우마가 발생한 탓에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 3개월 간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 사건 현장 근처만 가면 몸이 굳어버리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표창 수여 당시에도 정씨는 휴직 중이었는데, 문제는 그 사이 정씨의 빈자리에 대체 인력이 채용됐다는 점이다.
관리업체는 무급휴가를 낸 정씨를 대신해 다른 직원을 채용했다. 교대 근무가 많은 아파트 관리 업무 특성상 3개월이라는 공백을 기다리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정씨는 이 사실을 알고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MBC에 “당직 설 때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으로 인해 한순간에 실직자가 됐다는 것이 많이 섭섭했다”고 호소했다. 표창을 준 LH의 입장은 어떨까. LH 측은 특혜로 비칠 소지가 있어 특별채용이 힘들다는 입장이다. 정씨는 수술과 입원 등의 치료를 받으며 산업재해 휴업급여를 신청했다. 휴업급여는 부상이나 질병으로 취업하지 못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보장을 위해 휴업 기간을 산정, 임금 대신 지급하는 돈이다. 미취업기간에 대해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한다. 그러나 처음 근로복지공단이 준 돈은 하루치에 해당하는 6만6000원이었다. 얼굴만 다쳤기 때문에 일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실이 보도되며 논란이 일자 근로복지공단은 휴업급여를 다 지급했으나 이 돈만으로 노부모를 봉양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또 정씨는 앞으로도 몇 차례 성형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돈 역시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정씨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형’ 선고받고도…끝까지 ‘억울하다’는 안인득

이처럼 수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킨 ‘안인득 사건’이지만, 안인득은 끝내 반성하지 않았다. 안인득은 지난 27일 창원지방법원 형사4부(이헌 부장판사)에서 열린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난동을 피우며 항의했다. 이날 전 과정을 지켜본 시민 배심원 9명은 2시간 여에 걸친 평의 끝에 안인득이 유죄라는 데 전원 동의했다. 무기징역 의견을 낸 1명을 제외한 8명은 사형 의견을 냈다. 재판 내내 억울함을 주장하던 안인득은 사형이 선고되자 불만을 품고 큰소리를 지르다 결국 교도관들에게 끌려 나갔다. 안인득의 변호인이 최종변론 전 “저희 변호인도 이런 살인마를 변호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했다. 저도 인간이다”라고 호소했을 정도다. 안인득이 “누굴 위해 변호하느냐, 변호인이 그 역할을 모른다”고 항의하자 “저도 (변호) 하기 싫다”고 맞받아쳤다. 유가족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재판부는 “범행 경위와 피고인의 행동 등을 종합하면 범행 당시 피고인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미약한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며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안인득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가 많고 범행 정도가 심각한 점, 참혹한 범행에 대한 진정한 참회를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재범 우려가 있는 점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형에 처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안인득은 항소할 예정이다.
비록 안인득에게 법정 최고형이 선고됐지만, 대한민국은 사실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국가다. 이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는 살인마를 세금으로 평생 먹여 살리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며 의인(義人)은 생계를 걱정하고, 살인범은 편히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분도 일고 있다. 정씨에 대한 지원과 함께, 범죄자 처벌 강화에 대한 부분도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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