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계일학(群鷄一鶴). 여기서 닭은 물론 평범한 사물을, 학은 당연히 빼어난 사물을 말한다. 학을 돋보이게 할 양으로 무고한 닭을 애써 폄하시키는 저 사자성구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왔는지를 그의 닭 그림 30여 점은 웅변하고 있다. 2004년, 두 달 꼬박 작업해 완성했다는, 그가 가장 애착을 느낀다는 ‘황계도(黃鷄圖)’를 보자. 전통적 염색법에 따라 먹물로 한지를 먼저 물들인 다음 노란 물감으로 닭을, 옆으로는 까치들을 그려 넣은 작품이다. 닭에 저런 위엄이 있을 줄은 미처 생각 못 했다는 듯 관객들이 한참 머물다 가는 작품이다. 그림 그림마다 27년이라는 두터운 화력(畵歷)이 녹아 있다.

민화(民畵) 작가 서공임(45).“1998년 호랑이 그림 그렸던 게 출발점이 된 셈이네요.” 그 해 1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갤러리에서 ‘서공임 민화 호랑이전’을 가졌던 일이다. 빅 히트였다. IMF 외환위기 직후의 침울한 사회 분위기에서 시대의 의표를 찔렀던 것. 한 신문은 ‘호랑이 백 마리를 기르는 여자’라며 큰 제목을 뽑아 반겼고, 한 방송은 그를 출연시켜 그림 설명을 부탁했다. 또 두 달 뒤에는 부산에서 뜨거운 관심속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이어 2000년 용의 해 때는 용 그림으로 서울 광주 등지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다. “지금까지의 동물 그림 전시회는 12간지 중 마귀를 쫓는 의미를 가진 동물들로만 했어요. 이제 닭까지 했으니, 완성된 셈이죠.”그의 그림은 흔히들 관념적이고 비사실적이라고 이해되기 십상인 민화의 개념을 뒤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지독스레 대상을 파고드는 천석고황 같은 화풍 덕에 그가 그린 대상들은 금방이라도 화폭을 박차고 나올 것 같다. 아무에게도 팔지 않고 소장중인 8폭 병풍 ‘호피도(虎皮圖)’는 털 하나하나를 세묘하는 바람에 손가락이 휘는 등의 부작용으로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다.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의 작품 세계에 매료된다는 것은 그가 지닌 최대의 미덕일 것이다.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옥좌 뒤의 용 그림을 부조로 재현해 낸 작품은 전시회장에 구경 온 독일의 기업가가 즉석에서 구매했던 것은 그 일례다. 1996년 10월 백상기념관에서 ‘민화 전승 작업의 오늘과 내일’이란 제하로 열었던 전시회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가 그린 십장생 등 전통 민화와 해학적 창작 민화가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 당시 방한했던 스페인의 카를로스 국왕 내외가 알고는 자신의 인사동 작업실까지 찾아 왔던 것. 6자 길이의 ‘일월도’를 그리는 모습을 소피아 왕비가 무릎 꿇고 지켜보던 30분 동안의 사건을 어찌 잊으랴.그의 그림 인생 25년은 가난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빈한한 가정 형편으로 그토록 소원했던 미대에의 꿈은 접어야 했다. 착잡한 심정을 달래던 그에게 한 화방의 민화 수강생 모집 광고가 우연히 눈에 띄었다. “시골서 어쩌다 본 병풍 그림 정도로 생각하고, 우울한 심사도 달랠 겸 잠시 해 본다던 게 여기까지 왔다”고 그는 돌이켰다.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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