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모르고 사진 올렸다간 ‘지식재산권 침해’로 수백만 원 내야

지식재산권 분쟁 관련 글 [사진=네이버 지식인]
지식재산권 분쟁 관련 글 [사진=네이버 지식인]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언젠가부터 TV화면을 캡처한 사진은 ‘짤’이라는 별명으로 온라인을 떠돌기 시작했다. 이런 ‘짤’들은 대부분 시대를 풍미한 TV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MBC ‘무한도전’의 출연진이 우스갯소리를 내뱉는 장면이나, KBS ‘1박 2일’의 몸개그 장면 등이 대표적인 ‘짤’의 예다. 이외에도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 속 장면들도 ‘짤’로 만들어지곤 했는데, 이처럼 TV 프로그램 ‘짤’로 구성된 게시물은 블로그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방송사들이 이러한 ‘짤’ 사용에 대해 문제 삼고 나섰다. 대리인을 선임해 자사 프로그램 장면을 ‘짤’로 사용한 사람들에게 배상을 청구하고 있는 것이다.

TV화면 캡처 1장 당 20~30만 원 요구
지불 안 하면 형사 고발…울며 겨자먹기

직장인 A(38)씨의 처가는 작은 헬스장을 운영하고 있다. 개인 헬스장이 으레 그렇듯 처가 역시 블로그를 통해 헬스장 홍보를 한다. 블로그 관리는 직원이 담당 하는데, 이 직원은 과거 필라테스가 유행할 당시 모 종편 채널에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속 연예인들의 필라테스 장면을 캡처해 블로그에 실었다. ‘연예인들도 필라테스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직원이 사용한 캡처 사진은 총 7장이었다. 그러나 홍보는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해당 헬스장은 결국 필라테스 프로그램을 없애게 됐다. 그런데 얼마 후 헬스장에 방송국 대리인 측에서 보낸 서류가 도착했다. 서류에는 ‘당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영리 목적으로 사진을 사용했으니 사용료를 지불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방송국 대리인 측이 요구한 사용료는 캡처 사진 1장 당 20만 원, 총 140만 원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방송국 대리인 측은 ‘12월 9일까지 사용료를 입금하지 않으면 형사 고발하겠다’고 강조했다. 소식을 접한 A씨는 억울함을 느꼈다. 방송 캡처 사진을 온라인에 게재하는 것이 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에게 “영리적 목적이라고 하는데, 필라테스는 폐업했고 이득을 본 것도 없다”며 “장당 20만 원의 사용료는 과하지 않느냐. 멋모르고 사용한 소시민들만 죽어나는 격”이라고 호소했다.
꽃집을 운영하는 B씨 역시 비슷한 사례로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 1월 모 종편 채널에서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의 화면을 캡처해 블로그에 게재했다. TV로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B씨는 직접 핸드폰으로 사진을 촬영해 총 6장을 올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국 대리인 측에서 보낸 등기 우편물이 도착했다. 우편물 속 서류에는 캡처 사진 1장 당 30만 원, 총 180만 원의 사용료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무심코 올린 사진에 수십만 원 물어내야

A씨와 B씨 외에도 비슷한 사례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 포털 사이트에 ‘지식재산권 침해’만 검색해도 관련 글들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이는 최근 방송국들이 대리인을 선임해 방송 캡처 화면 온라인 게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A씨와 B씨의 행위는 ‘원칙적으로’ 판단했을 때 지식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 방송 프로그램 캡처 사진을 블로그에 게재하며 허가를 받지 않았을 경우 출처를 표기하더라도 위법이 된다. 저작권법에는 ▲ 학교 교육 ▲ 비영리 공연이나 방송 ▲ 시사보도 ▲ 도서관에서의 복제 등만 저작권 침해의 예외 사례로 두고 있다. A·B씨처럼 홍보 목적의 블로그 게재는 예외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경우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주장이 ‘저작권·지식재산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몰랐다’는 내용인데, 이는 정상 참작 사유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식재산권 침해와 관련해 ‘사용료’의 정확한 범위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A씨와 B씨의 경우에도 1장 당 사용료가 10만 원 수준의 차이를 보였다. 대리인 측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사용료이기 때문에 사용자 측이 ‘과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A씨는 “캡처 몇 장 사용했다고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내라는 것은 억울하지 않겠느냐”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정말 형사 고발을 하느냐”라고 반문했다.
A씨처럼 사용자 입장에서 가장 고민되는 것은 ‘형사 고발’의 실행 여부다. 일반인에게는 경찰서나 법원, 재판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형사 고발을 피하기 위해서는 방송국 대리인 측이 제시한 이용료를 그대로 지불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지식재산권 침해와 관련된 서류를 받을 경우 방송국 대리인 측에 연락해 사정을 설명한 뒤 협상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사용료는 방송국 대리인이 처음 제시한 액수보다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많게는 절반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금액이 크다고 느껴진다면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에서 다투는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국 대리인 “지식재산권 지켜져야”

방송국 대리인 측은 사용료 청구가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과거에는 방송사들이 알고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 저작권이나 지식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바뀌며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 방송국 대리인은 “정식 계약을 맺고 사용료를 지불하며 콘텐츠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있다”며 “무단으로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놔두게 되면 계약을 맺은 사람들만 억울해지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이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우리가 제시하는 사용료 역시 정식 계약 금액을 고려해 산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송국 대리인 측은 또 “방송국의 콘텐츠를 이용한 홍보를 통해 블로그 유입이 늘었다면 사용자는 분명히 이득을 본 것”이라며 “이득은 보고 싶고 사용료는 지불하기 싫다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처음부터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를 통해 사용료를 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지식재산권 침해와 관련된 분쟁은 방송국 대리인과 사용자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지식재산권은 법으로 보장되는 권리이기에 분명히 지켜져야 하지만, 사용료를 청구 받은 입장에서는 액수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관련 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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