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장
엄경영 소장

온갖 호재가 줄을 섰다.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를 호언했지만 일본의 선제 조치 없이 슬그머니 연장했다. 비핵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북미관계는 일촉즉발의 위기다. ‘조국 정국’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으로 번졌다. 검찰의 칼날은 청와대는 물론 여권 전반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여야 5당의 ‘패스트트랙’ 4+1 공조도 저마다 입장이 달라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당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한국당은 물 만난 고기나 진배없다. 마침 황교안 대표의 단식으로 독이 잔뜩 올랐다. 청와대와 여권을 매섭게 몰아붙이고 있다. 검찰이 청와대 압수수색에 나서자 황 대표는 ‘검찰개혁 새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추미애 의원이 법무부장관에 내정되자 한국당은 ‘사법장악 선언’으로 규정하고 인사청문회를 벼르고 있다.

나름대로 ‘당 쇄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황 대표는 당직자 전원이 낸 사의를 수리하고 요직에 초·재선 의원들을 임명했다. 임기가 만료된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체도 밀어붙였다. 황 대표의 쇄신은 거센 역풍을 불렀다. 3선의 김영우 의원은 전면적인 쇄신을 요구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일부 언론은 쇄신파가 ‘친황 체제’에 불출마로 맞선다고 비꼬기도 했다.

호재 만발에도, 당 쇄신에도 한국당 지지율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총선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민주당과 격차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영남을 제외한 수도권, 충청권에선 승산이 희박하다. 쇄신파의 불출마는 이런 위기감의 발로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당은 한국갤럽에선 20% 초반, 리얼미터에선 30% 초반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 구체적인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민주당은 두 기관 모두 40% 전후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만 유독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명쾌하지 않다.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사이 어디쯤이 실제 한국당 지지율일 수 있다.

한국갤럽 12월 1주 ‘총선 투표 의향 비례대표 정당’ 조사에서 한국당은 26%를 획득했다. 정당지지율 21%보다 5%포인트 높다. 이는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한국당 지지율의 거의 중간이다. 한국당 비례대표 후보에 투표하겠다는 의사이므로 총선 실제 득표율과 근접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조사에서도 한국당은 지난 9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0월 29%까지 올랐지만 12월엔 26%로 떨어져 9월과 같아졌다. 민주당(38%)과 격차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정부여당의 겹 악재, 당 쇄신에도 한국당에 대한 국민신뢰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황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2000년 이회창 모델 도입을 시사했다. 대대적인 물갈이로 승리하겠다는 것이다. 불출마를 선언한 3선의 김영우 의원은 ‘황 대표가 국민과 동떨어진 나홀로 투쟁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또 ‘국민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아는데 우리만 모른다’고도 했다.

한국당이 직면한 문제는 물갈이로 해결할 수 없다. 김 의원은 이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근본원인은 한국당과 구성원들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우리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지 않는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제대로 된 진단이 한국당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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