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사람의 일생과 마찬가지로 회사나 제품도 모두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이 있다. 소중한 생명을 잉태하듯이 회사 설립 전 단계에서 아이템에 대한 시장조사와 다각적인 검토 과정이 있고, 태어나서 걸음마하듯이 회사를 설립하고 조직을 꾸리고 각종 인프라를 구축하는 시간들이 있으며 사춘기를 거쳐 청장년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듯이 일정한 조건을 만나 폭발적으로 사업과 아이템이 성장하는 기간이 있다.

이후 중장년의 정점을 찍듯이 아이템이 정점을 찍고 하강 곡선을 그리면서 노년기를 맞이하며 서서히 쇠퇴해 간다. 정당이나 정치도 사람 및 회사의 일생과 마찬가지로 라이프 사이클을 당연히 가진다.

라이프 사이클은 사업의 진입과 퇴출(exit) 시점을 예측하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즉 주어진 시장에서 ‘시장의 총량(market cap)’을 추산하고 그 가운데 자신이 점유할 수 있는 최소치와 최대치를 산정하여 시장점유율 목표를 제시한 후 이를 달성했을 때에는 주저 없이 다음 단계로의 진화 및 분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게 회사와 아이템의 본능이다. 즉, 라이프 사이클에 대한 분석은 시장에의 진입과 퇴출을 알려주는 객관적 기준이자 신호등이 되는 것이다.

정당과 정치영역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각 정당의 기본 정체성(identity)을 판가름하는 ‘가치’를 출발점으로 끊임없이 현실에 적응하고 고쳐가면서 변형되다가 결국 포화상태에 이르면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다음 단계로 진화, 분화해 나가며 생존본능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과거 한나라당이 극심한 침체와 혼란에 빠지자 오랫동안 당연시해 오던 파란색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버리고 빨간색을 채택하면서 혁신의 모습으로 진화하며 총선 승리를 가져온 것이나, 2015년에 문재인 당시 대표가 문·안·박 연대가 실패하자 파격적으로 김종인 대표에게 전권을 넘기면서 읍참마속을 실현하여 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쥔 사례들이 정치 시장의 라이프 사이클을 잘 읽고 대응하여 이겨낸 대표적인 사례들이라고 할 것이다.

한편, 라이프 사이클 분석을 면밀하게 해도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사람들의 심리가 방어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불안감 속에 안정지향적 아이템과 실속 지향의 소비, 호경기 시절에 대한 향수에 따른 복고적 소비 등의 패턴을 보인다. 그러다보니 불황기에는 소위 ‘구관이 명관’이라는 식으로 일단 검증되고 안정적인 아이템을 물색하기 십상이다. 예를 들면 불황기에 퇴직하는 분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창업을 선호하는 현상 등이 대표다. 

그러나 여기서 한 번만 생각을 뒤집어보면 검증된 아이템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아이템이기에 시장이 금방 포화상태에 이를 수도 있고, ‘파격’없이 뻔히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한 아이템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거꾸로 불황의 어려움을 파격적인 혁신으로 돌파하고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내게 되면 곧 트렌드로 자리잡게 되고, 연이은 혁신은 어느 순간 메가트렌드로 대세를 굳히게 된다.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어떠한가? 과연 정치 소비자들이 원하는 시장에 이해와 라이프 사이클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대비 속에 총선과 대선,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비해 나가고 있는가? 특히 정치적 침체기와 불황기를 맞이하고 있는 야당들은 어떠한가?

자유한국당을 필두로 극심한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야당들은 ‘민심이 천심’이라는 정치시장에서 시장의 예상을 200% 뛰어넘어 소비자의 눈을 확 돌리게 만들 ‘파격’으로 난관을 돌파하고 있는가? 아니면 불황기에는 역시 검증된 아이템이 최고라며 여전히 ‘구관이 명관’을 외치며 방어적으로 난관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대한민국 야당은 이 극심한 정치적 불황기에 라이프 사이클상의 위치를 제대로 분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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