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둔 여의도에는 한창 출판기념회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너도 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여느라 준비하는 사람도 바쁘고, 참석 요청 받은 사람들도 겹치기 출연하느라 바쁩니다. 내년 총선에 나설 후보자들은 선거일 전 90일인 내년 1월16일까지만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수 있습니다.

선거에 나선 후보자의 선거운동에 시시콜콜 참견하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에서 신기하게도 출판기념회에 대해서는 딱 저 규정만 있습니다. 후보자들 입장에서 출판기념회는 선거에 쓸 ‘실탄’을 모을 좋은 기회입니다. 후보자들은 출판기념회를 선거운동에 쓸 ‘돈’을 모으고, 선거운동에 도움이 될 ‘사람’을 모을 기회로 활용합니다. 출판기념회를 기점으로 선거준비가 본격화됩니다.

출판기념회에서 가장 박대받는 것은 ‘책’입니다. 책의 저자인 정치인이나 출판기념회에 온 청중들, 내빈들 누구도 책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몇 명이 왔는가가 중요하고, 높으신 분 누가 와서 힘을 실어주고 갔는가에만 관심을 쏟습니다.

준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책은 뒷전입니다. 가끔 직접 책을 쓰는 후보자도 있지만, 보통은 전문작가에게 대필을 맡기고, 현직 국회의원인 경우에는 보좌진 가운데 글재주 있는 사람이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은 페이스북 같은 SNS에 올렸던 글을 묶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출판기념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날짜와 장소입니다. 다른 유력 인사의 출판기념회나 정치 일정과 겹치면 정치적 비중을 과시할 만한 내빈을 못 모시는 사태가 발생하고, 바로 지역에 소문이 돕니다. ‘그 후보는 사람도 별로 안 모였고, 유명인사는 아무도 안 왔더라’

장소를 잘못 잡아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력인사를 모시는 것만큼 구름 청중을 모으는 일이 중요합니다. 너무 넓은 곳을 잡아 천 명이 와도 휑한 장소를 고르거나,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을 골라 사람들이 올 엄두를 못 내고 발길을 돌렸다는 얘기가 돌면 그 행사는 망한 것입니다.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에게 출판기념회는 공개적으로 후원금을 모을 기회입니다. 출판기념회에서 얼마가 들어오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사고 치르는 책값은 결혼식 축의금과 같습니다. 성의껏 내고 얼마를 냈는지는 낸 사람과 받은 사람만 압니다.

지난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서는 출판기념회가 거의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전인 2014년경에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수뢰했다고 검찰이 수사를 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다들 출판기념회를 기피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시에 정치권에서는 출판기념회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었는데, 그대로 사라질 것 같았던 출판기념회는 2018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부활했습니다. 선거법이 금지하는 것이 너무 많아 유권자에게 홍보할 방법을 찾던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출판기념회를 되살렸습니다.

출판기념회에만 유독 관대한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은 후보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것으로 원성이 높습니다. 과거에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돈 선거, 조직선거의 병폐를 막기 위해 만든 법이라서 그렇습니다. 바뀐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들립니다.

선관위도 ‘돈은 묶고 입은 푸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바꿔가는 추세입니다. 여야가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개정을 논의할 때 연동형비례대표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후보자가 다양하게 유권자들을 만날 기회를 보장하되, 돈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는 제도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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