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9일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 경선에서 심재철 의원이 다른 후보에 비해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데도 불구하고 결선까지 가는 접전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선출됐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선 친황(親黃·친황교안) 대 비황(非黃) 간 계파 대결에서 '비황'이 압승을 거둔 것 아니냐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날 한국당 원내대표 결선 결과, 심재철 의원이 재적의원 106명 중 과반에 가까운 52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강석호 의원과 김선동 의원은 각각 27표를 얻었다. 결선 전 1차 투표에서도 심 의원은 가장 많은 39표를 득표했고 강석호·김선동 의원은 각각 28, 유기준 의원은 10표로 심 의원이 네 후보 중 가장 많았다.

심 의원은 탄핵 정국 때 친박계 의원들과 함께 당에 남은 '잔류파'에 속한다. 그러나 중립 성향이 강해 굳이 계파를 나누자면 친박계보다는 비박계에 더 가깝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현재도 황 대표의 측근으로 보기에는 거리가 멀어 친황계 보다는 비황계로 분류되는 편이다.

비박계 출신 강석호 의원도 비황계로 분류되며 유기준 의원과 김선동 의원은 친황계로 나뉜다. 1차 투표에서 친황계는 38(유기준 10·김선동 28)인 반면, 비황계는 67(심재철 39·강석호 28)를 얻었다. 결선에서는 친황계인 김선동 의원이 27표인데 비해 비황계인 심재철 의원과 강석호 후보는 각각 52·27표로 둘이 합쳐 79표에 달한다. 한국당 의원 10명 중 7명 정도는 비황계를 택한 것과 같다.

이를 놓고 한국당의 계파 지형이 친박 대 비박의 옛 구도에서 친황 대 비황의 신() 구도로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비황계쪽 의원들이 황교안 당대표를 중심으로 한 '절대황정'(絶對黃政) 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집단 표출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른바 '황심'(黃心·황교안 대표의 마음)이 경선 변수로 떠오르면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할 것으로 점쳐졌으나 결과적으로 황심은 득이 아닌 독이 된 셈이다.

심 의원과 강 의원 둘 다 비황계로 결선에서 계파색이 겹치는 만큼 표가 분산될 확률이 큰 반면, 친황계 유일 후보인 김 의원은 어부지리로 득을 볼 수 있는 대결구도였음에도 김 의원이 결선에서 표를 더 긁어모으지 못한 것 자체가 '황심' 역효과를 반증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친황, 비황과 같은 계파 대신 선수가 표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의원과 강 의원의 1차 투표와 결선 투표 득표 차이는 각각 1(2827)에 불과해 양측 지지세력의 이탈자는 거의 없었다. 심 의원은 39표에서 52표로 득표수가 크게 늘어나 1차 투표 때 유기준 의원을 찍었던 의원들이 결선에서 심 의원에게 표를 준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총선과 맞물려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불가피한 시점에서 심 의원이 김 의원(재선)이나 강 의원(3)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수가 높은 만큼 중진들이 재선보다는 다선 의원에게 표를 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부에선 유기준 의원에게 투표했던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결선에 오르지 못한 유 의원 대신 친박계 핵심인사인 김재원 의원에게 표를 몰아준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김 의원은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대통령정무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한 친박계 핵심인사다. 황교안 대표와 전임 나경원 원내대표에게도 물밑에서 각종 전략을 조언하는 등 당 내에서 책사로 불릴 만큼 전략통이다. 심재철 의원이 계파색이 옅고 김 의원이 친박 색채가 뚜렷한 만큼 친박계 의원들의 거부감이 덜했을 수도 있다.

·재선들의 표심도 경선의 최대 변수였으나 결과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한국당의 현역 의원 108명 중 초재선 비율은 67.6%(73)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재선 의원들 사이에서 경선 막판 '재선 추대론'이 대두됐던 만큼 김선동 의원이 유력한 차기 원내대표로 점쳐졌으나 1차 투표와 결선 투표에서 각각 30표 미만을 얻는데 불과했다. 결국 초·재선 중 절반 이상은 김 의원에게 표를 주지 않고 다선 의원을 찍은 것으로 추측된다.

재선 의원들도 예상보다 적은 득표율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생각보다 (김선동 의원의) 표가 얼마 나오지 않았다"며 당혹스러워 했고 다른 재선 의원은 "같은 재선의원이 다른 재선 의원을 평가하는 건 좀 부담스럽다"며 선거결과에 대해 말을 아꼈다.

이 같은 결과는 황 대표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사무총장이 초선인 것을 비롯해 당의 굵직한 결정을 하는 자리에 초재선이 배치된 만큼 원내대표마저 재선에서 선출될 경우 황 대표의 독주를 막기 힘들지 않겠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공수처 등 중요 현안이 산적한 정국에서 재선은 중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당의 한 중진 의원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이번 원내대표 선거결과는 친황은 역풍을 맞았고 초·재선은 갈라졌다고 볼 수 있다""일각에서 황교안 대표를 들먹이며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친황이 안 통하는 걸 확실히 보여줬다. 황 대표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심재철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됨으로써 투쟁 일변도의 강경 투쟁과 쇄신 이미지가 약화될 수 있어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한국당을 평가할 때 좀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고 전했다.

다른 의원은 "현재 당 내 세력을 친황 대 비황으로만 보기에는 힘들다""이번 선거결과가 친황계 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지만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마다 생각이 복잡한 것 같다. 1차 투표만 보더라도 사실상 세 갈래로 나뉘어져 그만큼 의원들 마다 총선을 앞두고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비박계에서 지지하는 강석호 의원과 친박계 지지를 받는 김선동, 유기준 의원과 달리 심 의원은 중립 쇄신파로부터 지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초재선 중심으로 중진 살생부를 언론 흘리거나 최근 비박과 친박 간 공천 힘겨루기에 반발한 중진들이 심 의원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