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책 실패” vs“무리한 확장”… 끝나지 않는 싸움들

[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별세했다. 향년 83세다. 김 회장은 약 1년여간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11시 50분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

김 전 회장은 삼성·현대그룹 창업주인 이병철·정주영 회장과 함께 언급되는 인물로 `창업 신화`를 기록한 1세대 창업주로 꼽힌다.


 김 전 회장 "기획 해체 의혹"…. 분식 회계로 몰락 자처 평가도
 17조 원대 추징금 환수 불가…. 대우 前 임원들 연대 책임 물어

김우중 전 회장은 떠났지만 대우그룹 해제 과정에 대한 논란은 현재도 회자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이 2014년 대우그룹 전 임직원 500여 명이 참석한 ‘대우특별포럼’에서 “대우그룹은 방만한 경영을 하고도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쓰러진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 이제는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고 역사가 정당하게 평가해 주길 바란다”며 “김대중 정부 경제팀에 의한 기획 해체”라고 주장했다. 이후 이 발언이 회자하면서 책임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2014년 펴낸 인터뷰집 ‘김우중과의 대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그룹 해체 과정에서 당시 김대중 정부 경제팀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을 드러냈다. 당시 정부 경제팀이 삼성자동차를 인수하고 대우전자를 삼성에 내주는 방식의 빅딜을 강요하고는 법정관리 신청도 못 하도록 막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정부가) 나중에는 대우자동차를 제너럴모터스(GM)에 헐값에 넘겨 국가 경제에도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고인이 과도한 차입경영, 구조조정 실패, 41조 원 규모의 분식회계 등으로 몰락을 자처했다는 평가도 있다. 당시 부채 규모가 89조 원으로 자산총액(76조 원)보다 컸다. 무리한 확장 경영은 외환위기를 맞으며 치명상을 입게 됐다는 설명이다.

세계 경영신화→역대 최대 부도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김 전 대우그룹 회장은 1936년 대구 출생으로,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만 30세인 1967년 대우를 설립한 후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의 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1990년대 `세계경영`을 기치로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 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켰으며, 당시 대우의 수출규모는 한국 총 수출액의 약 10%에 달했다. 1998년에는 우리나라 총 수출액 1323억 달러 중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약 14%나 차지했다.

1963년 한성실업에 근무하면서 국내 최초로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켰으며, 창업 후 수출만으로 회사를 초고속으로 성장시켜 `대우신화`라는 신조어와 함께 샐러리맨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설립했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이후 김 회장이 이끈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가 됐다.

대우그룹은 1967년 대우실업에서 출발해 30여 년 만인 1998년 41개 계열사, 396개 외국 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 원에 달하는 재계 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당시 부채 규모가 89조 원에 달했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30조 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됐다. 대우그룹은 외환위기와 함께 유동성 위기를 맞은 후 1999년 8월 채권단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간 뒤 해체됐다.
한편 김 전 회장이 별세함에 따라 17조 원대 추징금 환수는 어려워졌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8년 6개월에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9253억 원을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과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고 해당 판결은 확정됐다. 김 전 회장은 다음 해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약 18조 원에 달하는 추징금은 유지됐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직접 추징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현재까지 집행된 금액은 약 892억 원에 불과하며, 집행률 0.498% 수준이다.

김 전 회장의 추징금이 환수되지 못한 이유는 본인 명의 재산이 없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가족의 재산이라도 본인 명의가 아닌 이상 추징할 수 없다.

다만 법원 2005년 당시 대우그룹 임원들에 대해 추징금 23조 원을 연대 부과하면서 미납금 자체가 소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법원은 지난 7월 서울보증보험 주식회사 김 전 회장 등 계열사 대표?임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260억 여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김우중의 대우 해체 이후…새 주인 찾아 각자도생

1998년 자산규모 76조 원으로 재계 순위 2위였던 대우그룹은 계열사 41개, 외국 법인 396개소를 보유한 회사였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기업개선작업,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해체됐고, 주력 계열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까지 사명에서 대우를 떼지 않은 곳은 대우조선해양·미래에셋대우·대우건설·위니아대우 정도다. 위니아대우를 제외한 3곳은 각각 조선·금융·건설 업종 톱3에 들어가는 규모 있는 기업이다. 뿔뿔이 흩어진 주요 계열사를 살펴보면 1975년 국내 첫 무역상사로 지정되며 세계 경영의 첨병 역할을 했던 대우는 대우인터내셔널로 개명했다가 2010년 포스코로 넘어갔다.

대우중공업은 기계 부분인 대우종합기계와 철도 차량 부분인 로템, 조선 부분인 대우조선해양으로 쪼개졌다. 대우종합기계는 2005년 두산그룹으로 넘어가 두산인프라코어로 거듭났고, 로템은 현대자동차 품으로,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과의 합병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우자동차는 2002년 미국 GM에 인수된 뒤 GM대우로 새 출발 했지만 2011년 대우를 빼고 한국GM으로 이름을 바꿨고, 대우전자는 2013년 동부그룹에 매각됐다가 지난해 대유위니아그룹로 재매각돼 현재는 위니아대우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2006년 금호그룹에 팔렸다가 2010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다시 산업은행 품으로 돌아왔고, 대우증권은 미래에셋과 통합하며 미래에셋대우로 간판을 바꿨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