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소문으로만 돌던 자유한국당 살생부 명단이 존재하는 게 본지 취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당초 영남권을 중심으로 횡행하던 살생부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국당 국회의원중 60 여명이 포함된 대규모 살생부 명단이었다.

이름, 지역, 사유, 물갈이 여부(○, X) 네 항목으로 이뤄진 이번 살생부 명단에 포함된 의원들은 상당한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공천배제 사유가 구체적인데다 보좌진 채용문제까지 거론될 정도로 은밀한 부분까지 적시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명단에는 탄핵 찬성파 반대파나 친박 비박, 초선, 중진 등 가리질 않고 포함돼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막말, 도덕성, 재판, 중진, 고령에 탈당전력, 지방선거 성적까지 문제가 있는 의원들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모두 열거해, 명단에 포함된 의원들조차 크게 반발을 못할 정도로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됐다는 점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무엇보다 누가 작성했느냐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정 계파나 특정 지역, 중진들이 대거 포함됐을 경우 상대 진영에서 작성했다는 의혹을 보낼 수 있지만 한국당 현역 의원중 절반을 훌쩍 넘는 인사들이 포함된 만큼 작성자의 의도나 배경을 짐작하지 못하도록 했다. 

단지 취재과정에서 접한 한국당 인사들은 황교안 단식->당직자 교체->나경원 퇴출 등 일련의 흐름에서 친황계측에서 작성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고 있다. 황교안 대표나 최측근 입장에서는 친박 등에 타 당 대표에 오르고 당을 운영해왔지만 당을 완전하게 장악해 친황체제를 구축하기위해선 총선을 통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당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보다 가점을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항목이 인적 쇄신 폭이다. 민주당은 현역의원 의정활동 평가에서 하위 20%를 불출마하도록 유도하겠다며 인적교체에 돌입했다. 최대 40여 명으로 현역 의원 129명의 중 4분의 1 정도로 교체율이 25% 수준이다. 물갈이율이 그닥 높지 않다.

오히려 민주당은 ‘현역의원 경선원칙’을 내세워 막상 중진들이 출마를 고집할 경우 인위적인 물갈이를 할 수 없는 처지다. 정치 신인들이 가점을 받아도 경선에서 두 자릿수 이상 차이가 벌어질 경우 본선 진출은 어렵다. 또한 불출마한 인사들 다수가 입각이나 청와대 차출론에 따른 것이고 그 지역에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리 바꾸기’식 물갈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국민들에게 감흥을 줄 리 만무하다.

그러나 한국당이 당 쇄신과 보수통합을 위해 대폭 물갈이를 단행할 경우는 다르다. 참신한 인사들을 전진 배치시키고 박근혜 탄핵에 책임있는 인사들, 막말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드러난 인사들, 비위에 걸려 있는 인사들을 대거 교체할 경우 점수를 딸 수 있는 유일무이한 항목이다.

결국 한국당 살생부 존재 여부보다 더 관심사는 앞으로 공천과정에서 황 대표가 대폭적인 물갈이를 할 수 있느냐다. 최근 실시한 원내대표 경선에서 심재철 원내대표-김재원 정책위의장 조합의 탄생은 황 대표의 '친황(친황교안)' 위주의 당직 인사 등 친정체제 구축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살생부 명단이 과연 한국당 인적쇄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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