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장면 하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한 해가 시작되어, 6월 민주항쟁으로 가장 뜨거운 여름을 맞이했으며, 10월의 새로운 헌법으로 6공화국을 열었지만, 12월 양김의 분열로 군사정권이 연장되었다.

1987년 또 다른 장면 하나, 풀무원 식품을 은퇴한 젊은 창업자 원혜영은 자신이 받은 퇴직금으로 박원순 현 서울시장 등과 함께 만든 역사문제연구소에 투자하여 『역사비평』이라는 잡지를 발행했으며,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분노하며 뜨거운 여름의 중심에 서 있었고, 12월의 분열에 기꺼이 정치의 세계로 나서기로 마음먹는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청년 원혜영은 평생을 환경운동, 생명운동, 교육운동 등 사회운동에 몸 바치신 아버지 원경선 선생에게 정치의 길로 나서겠다고 말씀드린다.

이에 아버님이 말씀하신다. “하나님 기준으로 바르게 할 수 있겠느냐” 원혜영이 당돌하게 대답한다. “하나님 기준으로 잘할 수 있다고 약속드릴 수 없지만, 사람의 기준으로는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정치인의 길로 나아갔다.

2019년 12월 11일, 전쟁과도 같았던 제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가 끝난 다음 날, 아마도 국회의원으로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국회 정론관에 그가 모습을 나타냈다. 1988년 6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30여 년 자신에게 맡겨졌던 정치적 소임을 끝내고, 70세가 되어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겠다는 선언이다. 소위 차기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총선불출마선언’이었다.

필자가 가까이에서 지켜본 원혜영 의원은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 있었으며, 나눔과 기부를 생활화하는 사람이었고, 누구에게나 감사와 존중의 마음을 가지고,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정치도 삶의 일부였던 그에게 정치행위조차도 상대를 존중하며 나누고 소박하게 실천하는 존경할 만한 정치인이었다.

그가 돌아가신 원경선 선생을 기리며 쓴 책 중에 『아버지, 참 좋았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그 안에는 그가 어렸을 때의 사진이 몇 장 실려 있는데, 빛바랜 사진 속에 유난히 검고, 유난히 작은 아이가 꼭 다문 입술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금도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이다.

원혜영, 그가 차기 총선 불출마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뇌와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정치를 30년 이상 하다보면 주위 사람들도 배려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세계에서의 그의 퇴장이 못내 아쉽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의 결정을 존중하고 보내줘야 한다. 대신 그에게 가장 큰 위로의 말로 보내고자 한다. “원혜영, 참 좋았다. 정치를 하려거든 원혜영처럼”

그건 그렇고 정치세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원혜영의 불출마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필자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원혜영과 같은 양질의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신인들을 많이 발굴하여 그들이 정치세계에서 맘껏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주체는 정당이며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이 전략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대한민국 정치의 선진화이며, 정당의 체질개선이다. 총선승리는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혜영처럼 21대 총선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이 함께 세를 규합하여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21대 총선에서 정치개혁을 주제로 기성정당정치와 한판 붙는 것이다. 정치는 잘 모른다는 공자의 후예가 말했다.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현역의원이 그렇게나 많았어요? 그렇다면 그런 좋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정치를 바꾸면 되잖아요?” 답이 있을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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