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때문에 탈북 청소년학교 안 돼…님비 현상 ‘극성’

여명학교 건물 [사진=황기현 기자]
여명학교 건물 [사진=황기현 기자]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북한이탈주민, 일명 ‘탈북자’들은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내려온 사람들이다. 통일부 등 관계기관은 이들을 위해 사회 적응 교육과 비용 등을 일부 지원하고 있는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혈혈단신으로 정착하기에는 넉넉하지 않은 액수라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에는 적응이 더욱 어렵다. 북한과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여명학교는 이러한 탈북 청소년들을 위해 제도화된 교육을 제공하는 특수 목적 대안 학교다.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학력 인정을 받아 여명학교를 졸업할 경우 고졸자가 된다. 현재 여명학교에서는 70여 명의 학생과 25명의 교직원들이 꿈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런데 학교의 발걸음에 제동이 걸렸다. 여명학교가 현재 사용하는 학교 건물 계약이 곧 만료되는 것이다. 학교 측은 서울 은평구에 새 부지를 마련해 이전을 추진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여명학교 교감 “무릎 꿇어줄 어머니 없는 탈북 청소년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지역 주민들 “여명학교 이전 예정지는 주민 위한 편익 시설 부지”

지난 6일 여명학교의 조명숙 교감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무릎 꿇어 줄 어머니마저 없는 우리 탈북청소년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는 글을 올렸다. 조 교감은 “얼마 전 강서 지역에 특수학교가 설립되려다 주민 반대로 장애 학생의 어머니들이 무릎 꿇고 호소하여 국민들의 동의를 얻은 적이 있다”면서 “그런데 우리 탈북청소년들은 그들을 위하여 무릎 꿇어 줄 어머니조차 없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우리 여명학교 교사들이 국민 여러분과 주민들께 무릎 꿇고 호소하오니 여명학교가 통일의 상상기지인 은평구로 이전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토로했다.
조 교감은 “여명학교는 자유를 향해 북한에서 탈북 한 북한이탈청소년들의 남한 사회 적응과 통일준비를 위해 2004년 개교한 뒤 2010년 전국최초,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학력 인정을 받은 북한이탈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라면서 “여명학교는 교사 및 후원자들의 헌신과 국민들의 사랑으로 운영돼 왔으며, 300여 명에 달하는 졸업생 중에는 평창 동계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동메달리스트와 방송인, 북한이탈청소년 최초의 임용교시 합격자, 다수의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등의 전문직 졸업생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육의 성과 등으로 2019년 포스코 청암교육상도 수상했는데 현재 세 들어 있는 남산동의 월세 건물 계약 기간이 만료돼 2021년까지는 학교가 이사를 해야만 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조 교감에 따르면 여명학교는 이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유지를 수의 계약할 수 있다는 북한이탈청소년학교 관련 법을 근거로 3년 동안 국·공유지나 서울시교육청의 학교 유휴 공간 등을 백방으로 알아봤다. 그러던 중 은평 뉴타운 내 유휴 편익시설을 매입해 학교를 건축하기로 했다. 이는 ‘통일의 상상기지’를 정책과제로 내걸고 ‘통일 박물관’ 등의 설립을 추진하던 은평구의 기치와 여명학교의 목적이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 교감은 “아름다운 북한산 자락에서 작지만 예쁜 통일 공간을 만들어 탈북청소년들이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여명학교 “주민 위해 최선 다하겠다”

조 교감의 바람은 첫 삽을 뜨기도 전부터 어그러졌다. 여명학교 이전 관련 공청회에서 은평구 주민들이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여명학교가 기숙사가 있는 탈북학교인데 주민들과 사전 동의가 없었고 은평구 내 일반학교가 부족한데 탈북학교가 들어온다”는 이유로 이전을 반대했다고 조 교감은 밝혔다. 조 교감은 “학교는 학교에 대한 수요가 있고, 적절한 부지가 있으면 환경영향평가를 통하여 신설할 수 있는데 지역 주민들의 사전 동의를 얻지 않아서 반대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라면서 “여명학교는 중·고등학교 전 학년 180명 규모의 소규모 학교이기에 기존의 규모가 큰 일반 학교 부지를 매입할 이유가 없고, 일반 학교 부지는 은평구민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로 사용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유휴 편익시설용지의 일부를 매입하고 건축도 여명학교 스스로 하고자 했다”고 토로했다.
조 교감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은평 뉴타운 내 학교와 주민 편익시설 지원도 함께 요청했다. 그는 “은평 뉴타운 주민들은 학교가 부족하고 학급이 과밀한 마당에 은평주민들을 위한 일반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가 들어오는 것이 불편한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서 “은평 뉴타운 주민들이 여명학교 이전에 반대하는 것은 탈북청소년 학교라서가 아니라 여명학교 때문에 일반학교나 주민 편익시설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은평주민들을 위한 일반학교와 편익시설을 세워주셔서 주민들이 여명학교가 은평주민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탈북청소년의 교육은 여명학교나 은평구만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사업이기 때문에 국가의 재정은 이런 수요에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조 교감은 마지막으로 “여명학교가 주민들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방학 때 MIT 공대에서 운영하는 영어 과학캠프와 원어민들이 함께 하는 영어캠프, 통일 프로그램 등을 은평 지역 학생들과 함께 운영하도록 하겠다. 학교의 도서관과 주차장을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 개방해 지역 친화적인 학교로 운영하겠다” 등 상생 방안도 내놨다. 그러면서 “부디 대통령님께서 우리 국민이 된 어린 탈북청소년들을 위해 은평구민들의 염원을 풀어주시고, 또 여명학교를 반대하지 않도록 제발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은평구 주민들의 생각은?

은평구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은평구 주민들이 모인 한 네이버 카페에서는 여명학교 이전에 결사반대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한 주민은 “조 교감이 ‘은평구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 하겠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뒤로는 청와대 청원에 감정에 호소해 동정 여론을 등에 업고 은뉴(은평 뉴타운) 주민을 님비로 몰아 강행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절대 여명학교 교감의 간사한 이간질과 여론몰이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명학교 교감의 거짓과 진실’이라는 글에서 “우리는 은뉴의 과밀 학생 수 해결은 하지 않고, 은뉴 아이들과 무관한 사립학교가 주민 동의도 없이 은근슬쩍 주민을 위한 편익용지를 학교 용지로 무단 변경해 건립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지, 여명학교가 학교용지를 뺏는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반박했다. 또 “정원 180명에 기숙사 시설이 들어가는 여명학교를 운동장을 지하로 설치하면서까지 굳이 서울 내 아파트 단지 안에 구겨 넣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며 “정말 탈북학생을 위한다면 넓은 부지 확보가 가능한 곳에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지역 주민의 반발이 극심해지자 은평구는 여명학교 건립 부지 확보를 위한 학교 용지 변경 안 보류를 결정한 상태다. 탈북 학생들의 교실이 없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이 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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